[세계포럼] 北 선수단 ‘訪南’인가 ‘訪韓’인가
2026.05.06 22:58
남북 국가인식 확산 현실 보여줘
호칭 문제, 도식적 대결 논리 넘어
평화공존 길 여는 열린 논의 필요
일본 NHK방송이 냉전 시대인 1980년대 초 한글 강좌를 시작하려다 곤욕을 치렀다. 강좌 이름을 ‘조선어’로 하려다가 ‘한국어’로 해야 한다는 한국 측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NHK 측은 한국·조선이란 호칭은 정치적 문제이나, 해당 강좌는 정치와 무관한 언어, 문화를 소개하기에 조선반도처럼 예로부터 일본에서 통념적으로 사용되고 정착된 조선어가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중국,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선 조선이란 단어가 역사·지리·문화적으로 한반도 전체를 지칭한다. 반면 우리 정부와 민단은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조선이라고 자칭하는 상황에서 공영방송이 조선어 강좌라고 하면 수교국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이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NHK는 1960년대부터 한글강좌를 구상했으나 이 명칭 대립 문제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진통 끝에 강좌명에서 결국 한국어·조선어를 모두 빼버리는 묘수가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한글강좌’라는 이름으로 1984년 4월 1일 방송을 시작했다. 격렬한 대립 속에서 쟁점을 뛰어넘어 무력화하는 창조적, 실용적 해법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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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청중 논설위원 |
호칭 문제가 새로운 분기점을 맞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론 제기(2023년 12월) 후 2024년 5월부터 남북관계를 조선과 한국, 조·한 관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한국이란 호칭도 수시로 나온다. 민족·국가 관계가 중첩되는 이중적 관계에서 민족은 배제하고 국가 관계로만 상대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준다. 휴전선을 ‘남쪽 국경선’이라고 칭하고, 반도 전체가 아닌 압록·두만강 이남과 ‘남쪽 국경선’ 이북 사이만 영역으로 표시한 지도가 등장했다. 북한 헌법에 두 국가론을 제도화한 영토 조항이 신설된 만큼 이런 경향이 가속할 것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을 조선, 남북관계를 한·조 관계라 부르며 화두를 던졌다. 야권은 헌법 제3조(영토 조항), 4조(통일 조항) 위반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남북은 노태우정부 때였던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 이래 대다수 합의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정식 국호로 체결하고 있다. 이런 특수한 현실에서 호칭 문제를 바로 위헌 문제로 치환하기엔 한계가 있다.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을 따르더라도 북한을 조선이라고 규정한 법률이 제정되거나 조선 호칭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가 입증되기 전엔 헌재에서 위헌 판단이 나올지도 미지수다.
특히 현실 변화는 도식적 논쟁을 이미 넘어섰다. 일례로 북한 여자축구팀이 남쪽 땅을 밟는다는 내용을 보도한 5월 5일자 9개 주요 조간신문을 보자. 성향 불문 모두 본문, 제목에서 한국 방문, 방한, 입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부산·광주에서 서울 오는 것이 ‘한국 방문’, ‘방한’, ‘입국’이 될 수 없다. 헌법적 관점에선 방남(訪南), 입경(入境), 도착이라고 해야 마땅하고 과거엔 그렇게 했다. 일반 국민은 물론 여론을 반영하고 선도한다는 보도 매체도 부지불식간에 국가관계 인식이 확산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윤석열 일당은 비상계엄 명분을 만들기 위해 북한을 자극해 무력 충돌을 유발하려 한 혐의를 받는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 질서와 경제 번영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있는지 보여준다. 상투적인 대결 논리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어렵더라도 실질적인 평화공존의 길을 가야 하는 이유다. 포탄과 총탄의 전화(戰禍)는 선인(善人)과 악인(惡人)을 구분하지 않는다. 통일부가 조선 호칭과 관련해 공론화를 진행한다고 한다. 꿩 잡는 게 매라고 했다. 통일을 지향하면서도 남북 화해협력과 북한인권·납북자 문제 등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창의적, 실용적 방안이 나올 수 있도록 열린 논의가 이뤄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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