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는 잠들지 않는다”… CNN 세운 ‘성공한 반항아’ 테드 터너 별세
2026.05.07 04:42
스포츠와 미디어 잇는 ‘슈퍼스테이션’ 개척, 케이블TV 지평 넓혀
“CIA보다 더 정확한 정보력, 걸프전 생중계로 입증한 언론의 힘”
10억달러의 약속과 200만 에이커의 자연 기부, 자선가로 마침표
세계 최초의 24시간 뉴스 채널 CNN을 설립하며 미디어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테드 터너가 향년 87세로 생을 마감했다.
CNN과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6일(현지시간) 그가 플로리다주 탤러해시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2018년 루이체구 치매 진단을 받은 이후 투병 생활을 이어온 그는 최근 폐렴 증세가 겹치며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인생은 시작부터 한 편의 드라마였다. 24세의 나이에 부친이 운영하던 대형 옥외광고 회사 ‘터너 아웃도어 애드버타이징’을 물려받으며 미디어 업계에 발을 들였지만 상황은 처참했다. 아버지는 우울증과 약물 오남용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회사는 막대한 부채에 시탈리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파산을 피하기 위해 회사를 매각하라고 종용했지만 터너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나는 항상 사업가라기보다는 모험가에 가까웠다”고 회고하며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증명해 보였다.
터너의 가장 위대한 유산인 CNN은 사소한 불편함에서 시작됐다. 그는 당시 방송 환경에 대해 “저녁 7시까지 일하고 집에 오면 뉴스가 이미 끝나있었다”며 “나처럼 저녁 TV 뉴스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설립 배경을 밝혔다. 1980년 6월1일,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비웃던 ‘24시간 뉴스 방송’이 첫 송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시청자는 200만명에 불과했다. 매달 200만달러의 적자가 쌓였고 백악관 출입기자단 지위를 얻기 위해 레이건 행정부와 법정 싸움까지 벌여야 했다.
그러나 1990년 걸프전쟁은 CNN을 단숨에 세계 최고의 언론사로 격상시켰다. 역사상 최초로 전쟁이 안방에 생중계됐고, 오직 CNN만이 바그다드 현지의 폭격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각국 정부 부처조차 정보 수집을 위해 CNN을 켜놓을 정도였다.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은 “미국 중앙정보국(CIA)보다 CNN에서 더 많이 배운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를 기점으로 CNN은 베를린 장벽 붕괴, 톈안먼 시위 등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며 전 세계 5000만가구에 송출되는 미디어 공룡으로 성장했다.
터너는 단순히 뉴스에만 머물지 않고 콘텐츠와 플랫폼의 결합을 선도했다. 1970년 애틀랜타의 채널 17을 인수했을 당시 그는 시청자를 모으기 위해 적자투성이 야구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사들였다. 50만달러의 현금과 800만달러의 융자를 쏟아부어 팀을 인수한 뒤, 시즌 162경기를 모두 중계하는 파격적인 편성을 단행했다. 이는 스포츠 중계가 방송국의 핵심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선구적인 사례였다.
1976년에는 채널17을 위성을 통해 전국 케이블 가입자에게 송출하며 이른바 ‘슈퍼스테이션’ 시대를 열었다. 지역 방송의 한계를 넘어 전국구 미디어로 도약한 것이다. 이후 그는 CNN2(현 헤드라인 뉴스), CNN 인터내셔널, 카툰 네트워크 등 장르별 전문 채널을 잇달아 론칭하며 현대 케이블 TV의 기틀을 닦았다. 1996년 타임 워너에 자신의 네트워크를 75억달러(약 11조원)에 매각한 뒤에도 부회장직을 수행하며 미디어 산업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터너의 개인적인 삶은 찬사와 비판이 교차하는 모순의 연속이었다. 거침없는 독설과 소리를 지르는 버릇 때문에 ‘남부의 입’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배우 제인 폰더를 포함해 세 차례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사생활 면에서도 끊임없이 회자됐다. 스스로를 극우 공화당원이라 칭하면서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 절친하게 지내고 중국 공산당의 정책을 옹호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내뱉은 사회적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켰다. 1997년 유엔(UN)에 10억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세간은 반신반의했다. 특히 2001년 닷컴 버블로 재산의 대부분을 잃었을 때조차 그는 기부를 멈추지 않았고, 2015년 마지막 기부금을 전달하며 15년에 걸친 약속을 완수했다. 사냥을 즐기던 청년기를 지나 노년에는 200만 에이커의 대지를 구매해 자연 보호구역으로 만드는 환경론자로 변모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의 별세 소식에 “방송 역사의 거장이자 내 친구였다”며 애도를 표했다. 비록 논란과 화제의 중심에 늘 서 있었지만, 테드 터너는 끝내 ‘성공한 반항아’로서 자신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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