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때 교통사고 당한 게 참자아 대면 계기, 감사 원동력”
2026.05.07 03:09
새벽 5시, 1619일째 변함없이 성경과 소설을 펴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개그맨 고명환(54)의 하루는 기도로 시작된다.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식당에서 국민일보 ‘감사챌린지’를 위해 만난 고 작가는 인생에서 가장 감사한 일로 30대 중반에 당한 대형 교통사고를 꼽았다. “할 줄 아는 기도는 ‘감사합니다’밖에 없다”는 고백과 함께였다. 고 작가는 아나운서 김주하 MBN 특임상무의 지목을 받아 이번 인터뷰에 참여했다.
“날 구하는 길, 남 구하는 것”
월수입 수천만원을 벌던 인기 개그맨 시절, 그의 통장은 밑빠진 독처럼 비어갔고 열정은 차갑게 식었지만 자아만큼은 한없이 비대했다. 모든 성공이 오롯이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 믿었던 맹목적인 오만은 “사흘 안에 죽을 수 있다”는 의사의 서늘한 선고 앞에서 산산조각 났다. 그제야 타인의 기준에 34년을 무기력하게 끌려다녔을 뿐, 진짜 자신은 꺼내보지도 못하고 죽는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원통했다고 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은 경험은 매일 아침 마음을 다잡는 가장 강력한 감사의 원동력이 됐다. “지나고 보니 모든 고통은 기회였습니다. 불평하는 순간 그 기회로 전환될 가능성은 날아가 버리죠. 책 3000권을 읽어야 깨달을 수 있는 진리를 그 사고를 통해서 배울 기회를 얻었습니다.”
병실에서 생명줄처럼 쥐었던 책은 20년간 3000권의 독서로 이어졌다. 수많은 활자를 뚫고 도달한 한 문장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속 “나를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과도 맞닿아 있다.
타인을 도울 때 인간은 비로소 진짜 행복을 느끼며 이웃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 진심으로 고민할 때 창의성과 부가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이 역설을 그는 ‘극도의 이기주의’라 명명했다.
“내 돈을 벌자고 작정하면 얄팍한 요령만 떠오릅니다. 하지만 진짜로 남을 위해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할 때 하늘에서 창의가 내려오죠. 1000원짜리 유리잔으로 손님에게 청량감을 선물하겠다며 매출 3조원 회사를 일군 다이소 박정부 회장의 사례처럼요. 돈을 좇지 말라는 건 무욕을 권하는 게 아니라, 돈을 더 잘 버는 본질적인 길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나를 구원하는 길과 이웃을 사랑하는 길이 하나라는 깨달음은 현실의 실천으로 이어졌다. 이달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간판도, 정해진 메뉴와 가격도 없는 예약제 식당을 열었다. 당일 아침 시장에서 구한 신선한 식재료로 요리를 대접하고 손님은 본인이 얻은 가치만큼 밥값을 자율적으로 지불하는 공간이다. 이윤 창출보다 타인에게 더 나은 경험을 주겠다는 일념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1189일의 통독, 하루 5분의 독서
신앙은 고 작가가 매일의 깨달음을 삶에 새기는 통로다. 하루 한 장씩 1189일이 걸리는 성경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읽어내 지난 3월 말 통독을 마쳤다. 짐 무게를 줄여야 하는 해외 출장길에도 두꺼운 영한대조 성경만큼은 반드시 챙겼다.
“독서가들이 끝에는 다 성경만 읽는다는 말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비유와 상징이 한 번 읽을 때마다 한 꺼풀씩 벗겨지죠. 1200여일 동안 마음이 크게 흔들려도 아침에 성경 한 장 읽으면 원래 자리로 리셋됐습니다.”
6세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머리로만 알던 신앙이 가슴으로 내려온 것은 사고 이후였다. 이제 그에게 성경은 매일 아침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굳건한 감사의 토대다.
두꺼운 책 앞에서 번번이 좌절하는 이들에게는 “하루 5분이면 충분하다”고 조언한다. 5시간씩 읽겠다는 무리한 결심보다 하루 5분씩 1년에 300일을 반복하는 작은 실천이, 매일 책을 펴는 ‘새로운 나’를 만나게 하는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반복하면 리듬이 생기고 감동이 오며 결국 삶이 변한다”는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양보다 횟수와 꾸준함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머리로만 훑는 게 아니라 심장이 뒤집어지는 독서를 해야 삶이 바뀐다”고 덧붙였다.
“감당할 수 있는가” 설렘으로 바뀐 걱정
생각의 단순함은 12년간 배달 음식 한번 없이 제철 재료로 직접 요리해 먹는 정갈한 밥상으로도 보여진다. 55년 살면서 가장 잘한 일로 ‘요리를 배운 것’을 꼽을 만큼, 습관은 그의 삶을 단단하게 채우고 있다. 청년 시절의 자신을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말은 명확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가짜 욕망이 아니라 네 안에서 솟아나오는 진짜를 찾아 나답게 살아라.”
인터뷰 당일 새벽, 가장 감사했던 일도 활자 속에 있었다. 메뉴와 가격 없는 식당 오픈을 앞두고 안고 있던 막연한 걱정이 책장에서 건져 올린 질문 하나 덕분에 기분 좋은 설렘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성경 전체가 결국 하나의 거대한 질문이더군요. 책이 정답을 주는 게 아닙니다. 더 좋은 태도와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질문을 던져줄 뿐이죠.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오늘 아침 마주한 이 질문 하나가 제 마음의 무거운 짐을 설렘으로 바꿔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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