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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상의 하이퍼 파라미터]우리가 20년간 놓친 것

2026.05.06 19:58

| 황경상 기획취재팀장

고향 풍경은 20여년 전이나 거의 변한 게 없다. 더 쇠락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활기 넘쳤던 역 앞 거리에는 공실이 넘쳐난다. 시내 나가는 버스는 여전히 1시간에 1~2대가 전부다. 단편적인 인상일 수 있지만, 이 도시가 고향 사람인 박정희 대통령을 기념하는 사업에 지금까지 1200억원을 쏟아부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지역 주민들도 호의적이지 않은 대통령 기념사업은 지방선거를 맞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재선을 꿈꾸는 시장 후보는 역사관 건립에 또 200억원을 쓰겠다고 밝혔다.

비슷한 일은 도처에 흔하다. 383억원을 투입한 새만금 잼버리 글로벌청소년리더센터는 2년 가까이 방치돼 잡초만 무성하다. 한 해 2억6000만원의 유지관리비가 또 들어간다. 676억원이 든다는 여수 섬박람회는 주 행사장이 간척지인 데다 기반시설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아 ‘제2의 잼버리 사태’가 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부터 “여수엑스포 전시장을 두고 굳이 거액의 예산을 투입해 재난에 취약한 전시장을 만들려 한다”(강제윤 섬연구소장)는 비판이 나왔다.

지자체들, 지방소멸 위기 심각한데
건물 만들고 축제 여는 데만 ‘급급’
사람 간 연대 강화·공동체 회복 등
‘사회적 자본’ 두껍게 하는 게 중요

경남도가 2010년 거제시에 16억원을 들여 만든 거북선은 목재가 썩고 뒤틀려서 보수작업이 어려워지자 결국 3년 전 뜯어냈고 철근은 고물상에 팔았다. 344억원이 들어간 창원시의 인공나무 전망대 ‘빅트리’는 흉물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행진은 계속된다. 대전시는 고향사랑기부금으로 모은 7억원을 들여 엑스포 공원에 ‘과학자 시계탑’을 만든다고 한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지역 축제는 1214개로 2019년 대비 37.3% 증가했다. 10억원 이상 대형 축제가 75개에서 149개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이런데도 지방소멸의 위기의식은 더 심화되고 있다. 건물을 만들고 축제를 연다고 사람이 머물지는 않는다. 누구와 어떻게 살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콘크리트에는 수백억원도 척척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의 끈을 유지하는 비용은 낭비로 치부한다. 육아, 돌봄, 환경 등의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하도록 도왔던 경기도 마을공동체지원센터 사업비는 2022년 25억원에서 올해 8억원으로 급감했다. 서울시의회도 2022년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 조례를 폐지했다.

사람들 사이 연결을 강화하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일은 단순히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드는 의미를 넘어선다.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20여년 전 쓴 <나 홀로 볼링>에서 미국이 공동체를 중시하는 나라에서 고독을 즐기는 나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고립된 개인을 ‘마가(MAGA)’ 운동이 파고들었고, 트럼프 대통령을 낳았다. 트럼프 정부 탄생의 주역인 스티브 배넌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퍼트넘의 책을 읽고 “고립된 사람은 권위주의, 포퓰리즘적인 호소에 쉽게 넘어간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퍼트넘은 최근 한 강연에서 “고립을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른 트럼프들’을 계속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국가데이터처의 ‘한국의 사회동향 2025’를 보면 한국 상황도 좋지 않다. 기부나 자원봉사 참여 비율은 지속해서 감소 추세다. 사회통합과 연대의 기반이 취약해짐을 의미한다. 외로움 등 사회적 고립을 느끼는 비율도 최근 증가하는 모양새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믿을 수 있다는 비율도 2013년 72.2%에서 2024년에는 55.6%까지 낮아졌다. 공적 신뢰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공동체가 활기를 찾는 데는 작은 손길이면 충분하다. 농번기 마을 공동급식 같은 사업도 그렇다. 바쁜 모내기 철에 조리원 인건비나 도시락 비용을 지원해서 주민들이 마을회관 등에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게 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식사 준비 부담을 줄이는 등의 본래 취지를 넘어서 혼자 먹는 외로움을 해소하고 마을 주민끼리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효과를 낳았다.

퍼트넘은 사람들 사이 신뢰와 네트워크를 ‘사회적 자본’이라 표현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도 비슷한 의미의 ‘사회적 자본’을 강조했다. “원칙과 신뢰, 통합과 같은 사회적 자본은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중략) 대화와 타협으로 서로 설득하고, 의견을 모으고 양보와 타협을 통해 이익을 서로 교환할 줄 알아야 합니다.” 2007년 4월30일, 이것도 거의 20년 전이다.
황경상 기획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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