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유권자 우습게 아는 것도 유분수지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2026.05.06 07:02
“여러분들이 정국 전체를 보기 때문에 쉽게 던지는 말 한마디, 여러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법안 하나, 여기서 이 고생하면서 뛰고 있는 동지들을 버릴 셈이 아니라면, 신중해달라고 요청드리고 싶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지난 3일 대구시당 필승 전진대회에서 지난달 30일 문제의 특검법을 대표 발의한 천준호 민주당 원내대표 권한대행 등 원내지도부에게 한 말이다.더불어민주당 내에서 김 후보가 처음으로 공소취소특검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그렇다고 취소하라고 요구한 것은 아니다. “법안을 ‘신중히’ 처리해달라”고 부탁한 게 고작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모든 범죄 혐의를 아예 없었던 것으로 지워줄 ‘윤석열 정권 조작기소 특검법’에 대해 다른 소리를 내다니! “그것만으로도 어딘가” 할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놓고 할 말 못하면서 끙끙 앓는 소리나 하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대구시민의 민주당 지지세가 지속적으로 크게 높아져 온 만큼 그들을 자극하는 일은 조심하는 게 좋겠다는 뜻일 터이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대구가 앞장서서 국민의힘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 정치의 진짜 보수가 살아난다”며 아예 야당의 명줄을 끊어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기세를 올렸다. 후보로서야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만 놀부 심보가 따로 없다. 타 지역의 극단적 표 쏠림현상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런 게 ‘김부겸 류 민주당 내 온건 세력’의 한계다. 아니라고 하고 싶은가?
“대구에서 민주당 간판을 달고 정치를 하는 이 고생스러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정의감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던데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갖고 그런 말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호남에서 국민의힘 간판을 달고 정치하는 사람들의 고생은 어느 정도일까? 김 후보가 강조한 ‘정의감’은 어떤 건가? 혹시라도 ‘특검 포기’와 같은 의미로 한 말인지 귀가 번쩍 뜨여 물어보는 것이다.
김 후보가 정말로 진정성을 가지고 중앙당에 권고하고자 한다면 ‘신중’이 아니라 ‘철회’나 ‘포기’여야 맞다. 민주당이 발의한 특검법은 12개 사건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기소된 사건들 뿐만 아니라 그의 측근에다 문재인 정부 관련 사건까지 포함시켰다.
3대 특검이라는 것을 강행했다가 그게 미진하다고 해서 종합특검이라는 것을 밀어붙였던 민주당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 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를 벌이고 당내에는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 모임’이라는 퇴로차단 방벽까지 쌓았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검찰이 얼마나 썩고 정치화됐기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모조리 ‘조작 기소’했다는 것인 지부터 조리 있게, 근거를 가지고 설명해 줄 일인데 그걸 들은 기억은 없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가 “조작!”이라고 낙인찍으면 조작이 되는 분위기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 때부터 윤석열 정부를 넘어 이재명 정부 초기까지의 검찰은 범죄 집단이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그런 거악을 국가가 수많은 인재, 막강한 권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유지해왔다니, 이런 나라가 세상에 또 있을까?
한 가지 더 궁금하다. 대체 어느 시절에, 그렇게 많은 범법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형사피고인이 기어이 대통령에 출마해 그 직을 차지한 예가 있으며, 집권당이 대통령의 취임전 혐의를 지우겠다고 입법 폭주, 릴레이 특검, 국정조사에다 일괄 공소취소까지 시도한 적이 있었는가.
이 대통령은 과거 성남시장 시절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체포해 강제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법 앞에 평등함을 증명하기 위해 불법적 수사 불응에는 국민과 동일하게 체포영장을 발부해 강제수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2016년 11월 29일). “우리의 손으로 그를 잡아 역사 속으로, 박정희 유해 옆으로 보내주자”는 주장도 했었다(2016년 12월 3일, 더불어민주당 주최 집회에서).
당시 박 대통령을 수사한 검사들은 조작을 하지 않았는데 자신을 수사한 검사들만 혐의를 조작해서 기소했다는 것인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재임 시) 체포영장 집행 저지(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것은 또 어떻고?
사람과 혐의 내용이 다르더라도 현직 대통령에 대한 법 적용과 집행은 평등해야 한다. 이 대통령도 일단 재판에 넘겨진 이상 재판을 받아 자신의 결백을 인정받는 게 당연한 도리다. 그런데 민주당이 억지를 쓰다 쓰다 이제는 ‘공소 취소’ 특검법안까지 발의했다. 특별검사에게 공소를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이다. 법안대로라면 이미 대법원의 유죄 판단까지 난 혐의에 대해서도 취소가 가능하다고 한다.
당내에서도 그건 심하다는 분위기가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온다. 그러려면 형사소송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모양인데 강경파는 그렇게 해서라도 대통령의 혐의를 지워버려야 한다고 떠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야말로 입법권에 의한 사법 테러일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 내 일부 강경파는 ‘머릿수의 신화’를 신봉하는 듯 말에 거침이 없다. 무리 속에 들어 있는 동안엔 두려움이 없어지기 때문일까?
선거 현장의 분위기 변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청와대가 처방을 내놨는데 그게 또 희한하다. 이 대통령은 4일 조작 기소 특검법 처리와 관련, “구체적 시기와 절차에 대해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적 의견 수렴과 숙의 과정을 거쳐서 판단해 달라”고 했다. 주문인지 지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뜻을 밝혔다. “특검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맞다. 다만 시기와 절차를 잘 판단해 결정하라”는 것이다.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정조사를 통해 윤석열 정권과 정치검찰에 의해 자행된 불법 행위와 부당한 수사 등이 상당 부분 밝혀졌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한 특검 수사 필요성에 대해서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불법행위와 부당한 수사’가 상당 부분 밝혀졌다는 주장부터 황당하다. 공개된 영상으로는 민주당 측 국조위원들(특히 서영교 특위 위원장)만 그렇게 우겨대는 인상이던데?
홍 수석의 결론은 “이를 바로잡기 위한 특검 수사 필요성에 대해서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에 귀착됐다. ‘국민적 공감대’라니? ‘어떤’ 국민, ‘어느’ 국민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분명히 해야 하지 않나?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는데 왜 대통령이 ‘속도 조절’을 주문하고 나서야 했는지도 해명할 일이다. 민주당이나 좌파 정치단체들의 집회 안에서 형성된 공감대라는 인상이 짙은데 그러면 그렇다고 밝히는 게 정직한 태도 아닐까?
‘Nemo iudex in causa sua(누구도 자기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법격언이 요즘 자주 부각되니까 아예 기소단계에서 종식시키겠다는 뜻인 듯한데 법률가인 대통령이 이를 정당화하고 나서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으랴. 이미 사법부도 순치시켰다고 할 만한데 이왕이면 거기에 맡겨 깔끔하게 정리할 일이지 중간에 사건을 낚아채서 뭉개버리려 하다니!
특검법은 대통령이 재가하고 특별검사도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 특검이 만약 공소취소를 하면 그게 바로 (대통령이) 자기사건에서 재판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선거일 때까지 입법을 유예해 주겠다는 것을 당근 삼아서 흩어질 우려가 있는 표를 지키겠다는 의도인가. 그 때문에 민심이 흔들리는 것을 감지했다면 민심에 따르는 게 맞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법을 강행하는 게 국민주주권정부(와 여당)의 도리인가. 선거결과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이기면 입법 폭주·전횡도 전부 용인되고 정당화될 수 있다는 생각인 듯도 하다. 이 ‘머릿수의 신화’는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있을까?
대중적 인기는 시간에 약하다. 여론조사상의 지지율 그래프는 초기에 쉽게 올라가지만 금방 꺾이고 만다. 찬사가 조소로 바뀌는 기간이 별로 길지 않다. “그러니까 ‘개헌’을 통해 대통령직을 민주당 쪽에 고정시키려는 것 아니냐”고 할 것인가? 하긴 지금의 민주당 기세라면 무슨 일을 못 벌이겠는가.
설령 그렇게 해서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자리를 헌법 위에 마련하는 식의 개헌이 이뤄진다고 해도 그게 끝은 아니다. 역사는 멈춰 서지 않는다. 변하고 또 변하면서 정상 상태로 회귀하려 한다. 혁명을 revolution이라고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단순한 회전‧순환이 아니라 정상으로의 회귀를 뜻한다.
이 참에 김부겸 같은 후보는 이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해 무리(無理)·억지와의 단절과 순리에의 회귀를 주문하시라. 잠시만 국민의 눈을 속이겠다는 얕은 꾀에 부화뇌동해서 얻을 것은 없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도 계속 질주를 거듭하면 절벽이나 낭떠러지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는 세상사의 이치를 깨달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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