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요? 그냥 학원 가는 날이에요”
2026.05.06 00:47
어린이날인 5일.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이모(12)군은 평소처럼 아침 7시에 눈을 떴다. 전날 다 끝내지 못한 수학 학원 숙제 때문이다. 숙제를 마친 이군은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 오전 9시 집을 나섰다. 이군이 향한 곳은 놀이공원이 아니라 집 근처 학원. 3시간짜리 보충 강의를 들으러 학원을 찾은 이군은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어린이날에 학원을 갔다”고 했다. 이날 같은 지역에서 만난 초등학교 6학년 임모(12)군도 오전부터 7시간 동안 이어진 ‘어린이날 특강’을 들었다. 오후가 돼서야 수업을 마치고 학원을 나온 임군은 스터디 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운동회와 소풍 등 즐거운 행사로 가득해야 할 5월, 어린이들이 학원으로 내몰리고 있다. 본지가 어린이날을 맞아 서울 강남구 대치동과 양천구 목동 학원가 인근에 사는 초등학생 38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더니 22명이 어린이날 학원을 갔다고 답했다. 학원가임을 감안해도 초등생 2명 중 1명이 어린이날 학원에 매여 있었다는 얘기다.
올해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이 ‘노동절’로 이름이 바뀌며 법정 공휴일로 처음 지정됐다. 전국 초등학교 대부분이 5월 4일을 ‘학교장 재량 휴업일’로 지정해 어린이날까지 닷새 연휴가 이어졌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학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본지가 만난 초등학생 38명 가운데 노동절과 어린이날 중 하루라도 학원에 간 학생은 28명(74%)이었다.
서울 주요 학원가에선 5월 연휴를 겨냥한 ‘반짝 특강’ 마케팅을 벌였다. 대치동의 한 수학 학원은 연휴를 맞아 5일짜리 특강을 열었다. 이 학원은 “입시라는 냉정한 현실 앞에서 이번 5일은 단순한 연휴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5월 연휴는 학업 역전의 기회”라고 홍보했다. 대치동 학원가에선 포털 사이트 등에 ‘어린이날 정상 수업’ 공지를 올린 학원도 적잖았다.
목동 학원가 인근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학부모 한모(47)씨는 “아이가 학원을 하루만 쉬어도 옆집 아이와 격차가 벌어질 것 같아 불안하다”고 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초등학생 고학년은 어린이날에 꼭 쉴 필요는 없지 않으냐”며 “어떤 엄마들은 아이를 매주 토요일엔 목동, 일요일엔 대치동 학원에 보내는데 어린이날 학원에 보내는 건 평범한 편”이라고 했다.
전인 교육을 해야 할 학교 현장에선 소풍과 수학여행, 운동회가 사라지고 있다. 서울 지역 초·중·고교 1331곳 가운데 소풍을 포함한 ‘1일형 현장 체험 학습’을 운영한 학교는 2023년 1150곳(86%)에서 2024년 984곳(74%), 2025년 773곳(58%)으로 매년 줄어들고 있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학교도 2023년 609곳(46%), 2024년 550곳(41%), 2025년 562곳(42%)에 그쳤다. 서울 지역 학교 두 곳 중 한 곳꼴로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아예 가지 않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안전사고 책임에 대한 학교 측의 부담이 커진 탓이 크다. 초등교사노동조합이 지난달 전국 초등 교사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0.5%가 현장 체험 학습 추진에 ‘매우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체험 학습 추진 시 가장 어려운 점으로는 ‘안전사고 발생 시 교사의 법적 책임에 대한 불안감(49.8%)’과 ‘학부모 민원 대응에 대한 스트레스(37%)’를 꼽았다.
운동회는 “시끄럽다”는 인근 주민들의 민원에 발목이 잡혔다. 서울시교육청이 서울 시내 초등학교 609곳에 접수된 민원을 분석한 결과, 운동회 관련 소음 민원은 2018년 77건에서 2024년 214건으로 늘었다. 지난해 서울 지역 초등학교 중에서 106곳은 아예 운동회를 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관련,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안전사고 우려 때문에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기피하는 학교 현장을 언급하며,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학생들에게서 좋은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며 교육부에 시정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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