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임대 뒤 분양’ 홍보했지만…인허가도 안 받은 장기민간임대 피해 확산
2026.01.14 14:20
13일 찾은 경기 양평군의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10년 살아보고 결정하세요”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실내 곳곳에는 ‘10년 후 분양전환 우선권’, ‘청약통장·주택 소유와 상관없이 내 집 마련 가능’ 등 장기 임대를 강조하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이 아파트 분양 관계자는 “59㎡ 경우 2억원가량의 전세금만 내고 신축 아파트에 10년간 거주한 뒤 2억9000만원 수준에서 분양 받을 수 있다”며 “중간에 시세 차익을 보고 권리를 팔 수도 있고, 분양 받을 권리를 증여해도 증여세가 없는 임대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양평군에 따르면 해당 사업은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은 물론 임차인 모집 신고도 접수되지 않은 상태였다. 양평군청 관계자는 “지자체의 관리·감독을 받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계약금을 내도 법적인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서민층의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해 도입된 장기민간임대 아파트를 둘러싸고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장기민간임대는 민간 사업자가 아파트를 지어 10년 이상 임대로 운영하는 대신 정부가 세제·금융 혜택을 주는 제도다. 임차인은 전세금을 내고 안정적으로 거주하다가 10년이 지나면 해당 아파트를 분양받을지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업자는 토지를 확보한 뒤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과 임차인 모집 신고 등 법적 절차를 거쳐야 임차인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임의조합이나 사업자가 ‘장기민간임대’를 내세워 계약자를 모집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홍보 단계에서는 정상적인 임대 사업처럼 보이지만, 토지 확보나 인허가가 지연되면서 착공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결국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했다.
문제는 현행법상 이런 행위를 직접적으로 금지하거나 처벌하는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자체 인허가를 완료하지 않은 채 예비 임차인을 모집해도 이를 직접적으로 제재할 법적 근거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자체도 해당 사실을 알고도 적극적으로 관리·감독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이 때문에 지역주택조합 사업을 하던 사람들이 비교적 규제가 적은 민간임대주택 사업으로 넘어오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고 했다. 최정환 법무법인 랜드로 변호사는 “홍보는 임대 계약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투자 계약에 가깝기 때문에 사업이 중단돼도 변제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장기민간임대주택을 내세운 피해는 전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경기 화성시에서는 3년 전 장기민간임대를 내세운 한 사업자가 수백 명의 계약자를 모집했지만, 지금까지도 착공조차 하지 못한 채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이 아파트에 3000만원의 계약금을 넣은 이모 씨는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신축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는 말에 덜컥 계약한 사람이 많다”며 “현재 피해자들을 모아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런 피해는 용인·수원·화성 등 수도권을 넘어 광주·울산·대전·포항 등 지방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용인시는 관련 피해가 이어지자 최근 피해 사례집을 제작해 직접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계약 전 지자체에 직접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해당 사업자나 조합이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을 받았는지, 임차인 모집 신고를 완료했는지 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세보다 지나치게 저렴한 조건으로 계약을 유도하거나, 회원가입·조합 가입 형태로 임차인을 모집하는 경우도 주의가 필요하다.
피해가 계속되자 국회에서도 법적 보완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임의단체나 사업자가 지자체 승인 없이 예비 임차인을 모집하거나 자금을 모으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민간임대주택특별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장기민간임대라는 제도를 악용해 사실상 투자금을 모집하는 행태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청약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