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두려움을 잃지 않는 것
2026.05.06 00:07
돌이켜보면 나의 증권사 생활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사회생활 경력을 시작해 2000년 닷컴 버블, 2003년 카드 대란 등 크고 작은 고비를 쉼 없이 거쳤다. 카드 대란 당시 자금이 묶인 거래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을 뛰어다녔던 기억, 투자 손실로 힘들어하는 고객 앞에서 쉽게 돌아서지 못했던 시간들.
그 과정에서 분명히 깨달은 것이 있다. 위기를 함께 견뎌낸 고객과의 관계는 더욱 단단해진 신뢰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몸에 깊이 새겨진 감각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혹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리스크가 없을까’를 먼저 떠올리는 것이다.
금융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잘 풀릴 때다. 수익이 쌓이고, 고객이 몰리고, 시장이 우호적일수록 리스크에 대한 감각은 무뎌지고 자만이 스며든다. 돌아보면 대형 사고는 대부분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설마 문제없겠지’라는 무감각이 만연해진다. 작은 방심이 쌓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래서 시장이 우호적일수록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바로 두려움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금융인의 감각이다.
이런 두려움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자신을 점검하는 체크 리스트이기도 하다. 익숙한 방식과 관행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당연하게 여기던 판단을 한 번 더 의심하게 한다. 이런 태도는 특별한 상황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일상의 작은 판단과 선택의 순간마다 반복해야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결국 두려움은 위험을 피하기 위한 감정이 아니라, 위험을 정확히 바라보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 차이는 거창한 결단에서 생기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쌓이는 태도에서 나온다.
금융인에게 두려움은 나약함이 아니다. 리스크를 관리하고 고객을 지키는 감각이다. 자본시장의 신뢰는 화려한 수익률이 아니라 그 감각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치열하게 유지하는지에서 비롯한다. 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환경이 복잡해질수록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단 하나다. 두려움을 잃지 않는 태도. 그것이 금융회사의 진짜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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