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모두를 위한 획기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2026.05.04 20:14
노동절을 되찾은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오랜만에 여유를 누리는 것 같다. 해가 밝은 오후에 동네를 산책하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사람들이 잠시 멈춰가며 느긋해진 모습을 보는 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다. 노동절의 기원이 빈곤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 요구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풍경은 노동절과 꽤 잘 어울린다.
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 뛰어노는 걸 보고 싶다면 모두에게 이런 날들이 더 자주 와야 할 것이다. 더욱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다가오는 인공지능(AI) 시대 전방위적인 고용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산업을 가리지 않고 나오고 있는 가운데 노동시간을 큰 폭으로 줄이지 않고서는 일자리와 노동의 존엄을 지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나아가 서로를 방치하지 않고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돌볼 수 있으려면 역시 보통의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삶의 여유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8시간 노동’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노동시간 단축’이 상상을 넘어 정책으로 본격화될 때가 온 것이다. 아니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노동시간 단축은 단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생존할 수 있게 만들고, 사회가 유지되도록 만드는 방편이다. 하지만 노동절을 되찾았단 소식에도, 광장에서 노동절을 기념하는 모습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획기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고도의 기술 발전 국면에서 사회의 주도권은 자본과 금융시장에 넘어갔다는 비관적인 전망 때문일까?
케인스는 1930년 ‘우리의 손자세대를 위한 경제적 가능성’이란 짧은 글에서 낙관적인 미래 전망을 한 바 있다. 사실 그때에도 세계는 비관적인 전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파시즘이 퍼져나가고, 대공황이 시작된 시점에 그는 꾸준한 생산력 발전으로 인해 결국 100년 후에는 인류가 경제적 결핍으로부터 해방되고, 하루 3시간 노동이면 충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전망했다. 물론 전쟁, 인구구조, 과학의 쓰임새 등 여러 변수가 있지만 어쨌든 그는 인류가 생존을 위해 삶을 노동에 전적으로 투여하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단계에 대한 희망을 펼쳐놓았다. 어쩌면 그의 천재적인 재능 중 하나는 ‘희망’이라는 동력을 놓지 않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100년 후인 2030년이 몇년 남지 않은 지금, 성장과 노동시간에 관한 그의 예측이 정확했는지의 판단은 관점에 따라 다를 터인데 그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아 보인다. 이미 21세기 기술 변화와 생산 변화는 또 한 번 인류 문명을 바꿔놓고 있으며, AI는 이제 인간의 속성과 존재 방식까지 바꿔내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과거의 전망에 가두기엔 너무 광대하다. 19세기의 마르크스, 20세기의 케인스에게서 가져올 것은 예측의 내용보다는 진보의 목적이 인간의 삶을 향해야 한다는 뚜렷한 방향성과 희망, 그리고 이론에 바탕을 둔 실천인 듯하다.
여러 이론가들이 ‘노동중독’과 ‘과로사회’를 벗어날 것을 주장했고, 한국의 노동시간도 줄어들어왔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 속도는 기술 변화 속도에 비하면 너무 느리다. 부문 간 불균형이 도드라진다. 돌봄 등 다양한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여전히 길고,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수많은 특고, 플랫폼 노동자들은 그나마 노동법의 노동시간 제한을 받지 않으며, 유급휴일이란 없다.
모두의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다 같이 멈춤, 다 같이 느리게’의 사회적 리듬을 찾고, 새로운 고용 질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시간과 고용의 문제가 생존의 문제인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때, 사회적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바꾸고, 삶과 노동을 진짜 바꿔낼 수 있다. 미래로 떠밀려가기보다는 희망을 품고 변화를 도모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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