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하기 일보 직전’ MZ세대의 연애는?···고선경 “현실 견디게 해주는 게 사랑”
2026.05.05 15:02
시인 고선경을 만났다. 집 얘기를 한참 했다. 최근 전세 대출을 알아보고 있는데 매물이 없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서울 안에 있고 싶은데 가격을 맞추려면 지금보다 더 외곽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집에 절약 스티커도 있다며 고정 수입이 없어 월세보다는 전세가 낫다는 고민을 풀어놓는 그를 보자니, 그가 최근 낸 시집 <러브 온 더 락>의 이야기가 조금 더 가깝게 와닿았다.
“너에게 구체적인 사랑을 들려주고 싶다”(‘고백’)고 시작하는 시집엔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 희망보다는 성장의 끝자락에 걸쳐 위태로운 존재들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는 “내 또래의 감수성은 언제나 자신을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 생각하는 것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온 더 락’(on the rocks). 마치 술에 천천히 녹아가는 얼음처럼.
지난달 29일 서울 강서구의 한 카페에서 고선경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현실 감각은 떨어지는데 세속적인 사람”이라며 웃었다. ‘세속’은 이번 시집을 읽는 하나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케이크를 먹고 헤어지고요/ 남은 마음은 포장하고요” (‘Guilty Favorite’)
“새하얀 이불 속에서 천사랑 뒹굴었다 산발이 된 금빛 머리카락에서는 러쉬 수퍼 밀크 향이 났다… 보증금이 삼천이야 삼천은 어떤 액수인 것 같니? 관리비 포함 월세 오십, 그럼 삼천은 몇달 치 월세인지 계산기 두드려봐”(‘엔젤 오브 시티’ )
“너를 만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너를 위해 돈을 벌고 싶다 타이베이에 간다면 얼마를 벌 수 있을까 지루한 얼굴로 화면 속 커서가 깜빡이는 것을 바라볼 때, 밀린 방세 납부를 독촉하는 전화가 걸려온다”(‘눈 내리는 3월에 떠오른 좋은 생각’)
이번 시집을 출판한 창비 편집자는 <러브 온 더 락>에 대해서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가 건넬 수 있는 애틋하고 숭고한 고백’을 적은 시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내 현실 기반으로 한 시들도 많아서, 그렇게 읽어주시는 것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세속적인 시대의 사랑’은 그에게 궁금증이다. 그는 “이번 시집은 연애 시집으로 생각하고 구상했다. 사랑은 비논리적이고,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에게 져주기도 하는 일인데, 효율을 따지는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연애하고 사랑을 하는지, 무엇이 우리를 특정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쓰게 하는지 궁금했다”고 했다.
흔히 진짜 사랑이 없는 시대라고 부른다. 기성 세대는 젊은 세대가 조건을 따지고 편리한 것만 좇느라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그가 보기에 사랑은 넘쳐흐른다.
“주변을 보면 연애 정말 많이 해요. 제도적인 울타리 안에서 이성애 규범에 맞게 연애하는 게 아니더라도, 결혼 생각이 없어도 하고요.” 그래서 책에 실린 ‘시인의 말’도 “진짜 사랑으로 바글거리는 것 같았다” 단 한 문장이다.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샤워젤과 소다수>,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등의 시집에서 독특하면서도 감각적인 시어와 문장으로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대변한 그에겐 ‘MZ 시인’, ‘문단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는 최근 23쇄를 넘겼다.
등단 이후 쉬지 않고 작업했고, 성과도 있었다. 누군가는 ‘너무 빨리 소진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왜 마음대로 내가 소진될 거라고 판단하지? 보여줘야겠다라는 오기가 있었다”면서도 “최근엔 내가 시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기대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 ‘나한테 돈 벌어다 줘. 성취감 줘. 인정욕구 줘.’ 요구사항을 늘려왔던 것 같아서 이제는 시와 사이좋게 지내려면 그 짐을 내려줘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생존을 위해 겸업을 해야 하나 생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선경은 마지막까지 시라는 감각적 예술과 현실의 생활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거다. “진짜 현실적인 고민을 많이 하는데, 그 현실을 좀 견디게 해주는 게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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