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에이피알 제품 받으려 줄 서… 한국 화장품 미국 이어 유럽 수출 급증세”
2026.05.05 07:02
18년 동안 화장품산업을 분석해 증권가에서 ‘화장품 구루’로 꼽히는 박종대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4월 24일 인터뷰에서 한국 화장품산업 성장세를 이같이 설명했다. 박 연구위원은 “한국 화장품은 미국 오프라인 소매점 시장에 진출해 국내 소비재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박 연구위원에게 국내 화장품산업 전망과 관련주 투자전략을 물었다.
지난 20년간 한국 화장품 위상이 어떻게 변했나.
“과거 설화수 같은 브랜드는 한국에서만 인기가 있었고 해외에 나가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설화수가 해외 면세점에 입점이 안 됐던 게 이를 증명한다. 미국 뷰티 전문 유통 채널 ‘울타 뷰티(Ulta Beauty)’나 ‘세포라(Sephora)’의 상품기획자(MD)들은 한국 화장품 기업을 변방의 이름 모르는 브랜드로 취급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글로벌 유통 채널에서 너도나도 한국 화장품을 입점하려고 든다. 지금 에이피알 제품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다.”
위상이 달라진 계기는.
“색조가 아닌 기초 화장품에 내재돼 있던 역량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시장에서 발휘되기 시작했다. 팬데믹 시기 미국인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서 넷플릭스로 ‘K-드라마’와 ‘K팝’을 많이 접하게 됐다. ‘글라스 스킨(glass skin)’으로 불릴 만큼 좋은 한국 연예인들 피부를 보면서 원래 색조 제품을 주로 소비하던 미국인들이 기초 제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동시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플랫폼 ‘틱톡’이 유행하면서 마케팅 창구로 작용했고, 온라인 소비시장이 커지면서 아마존을 통해 한국 화장품이 유통될 수 있었다.”
한국 기초 화장품이 뛰어난가.
“중저가 기초 제품을 한국만큼 가성비 좋게 혁신적으로 만드는 나라가 없다. 해외 기초 화장품은 중고가나 하이엔드가 많다. 기초 제품에는 회사 기술의 정수가 녹아 있어 이를 외부로 유출하지 않으려고 브랜드 업체들이 자체 생산한다. 그런데 한국 기초 화장품 산업은 특이하게 유통과 생산이 분리돼 있다.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가 생산하고 브랜드 업체가 유통한다. ODM 업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중저가 기초 제품 기술이 발전했다.”
미국 인기에 유럽도 한국 화장품 찾아
최근 유럽시장 확장세가 대단하다던데.“2024년 한국의 최대 화장품 수출국은 중국이었다. 지난해엔 미국이 1등이었다. 올해는 유럽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에서는 실용주의가 강해 유통 채널 MD들이 좋은 제품이 있으면 빠르게 수입하지만 유럽은 보수적이라 한국 화장품의 확장이 이렇게 빠를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미국 아마존에서 한국 화장품이 판매 1위를 한 것이 유럽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일사천리로 만들었다. 뭐든지 글로벌 1위를 하려면 미국 뉴욕에서 성공하라는 말도 있지 않나. 실리콘투 같은 국내 화장품 무역 유통사들의 뛰어난 역량도 큰 몫을 했다.”
유럽에서 한국 제품 인기는 계속 이어질까.
“3월 대(對)유럽 수출은 전년 대비 77% 증가한 1억7000만 달러(약 2500억 원)에 달하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개별 업체들 움직임을 봐서는 4~5월에도 성장세가 이어질 것 같다. 에이피알 생산물량은 전분기 대비 20%씩 계속 늘어나고 있고 ‘제로 모공 패드’는 4~5월까지 없어서 못 파는 수준이다. 실리콘투는 올해 2분기 폴란드에 있는 물류센터 규모를 50% 이상 늘릴 계획이다. 유럽 해상 무역 중심지인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거래하는 브랜드 업체들도 거래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대미(對美) 수출도 더 증가할 수 있을까.
“미국 화장품 소비의 70%가 오프라인에서 이뤄진다. 한국 화장품이 미국에서 성공했다지만 온라인시장에 한정돼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코스트코, 타켓 등 미국 메이저 오프라인 소매점에 한국 화장품이 입점하고 있다. 미국 소매점의 큰 매대 한 면을 차지할 만큼 전방위적으로 깔리는 건 한국 소비재 중 최초다. 미국에서 한국 라면이 인기를 끌었지만 이는 식품의 한 카테고리였을 뿐이다. 하지만 화장품은 색조, 보디, 헤어, 향수 등 다양한 카테고리가 하나의 군단처럼 오프라인 매장에 들어가고 있다. 따라서 오프라인시장 진출의 성과는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클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소비자가 특정 제품을 반복 구매하기도 하나.
“그렇진 않다. 틱톡에서 그때그때 유행하는 제품을 한 번 사서 써볼 뿐이다. 그런데 시장이 워낙 커 인당 하나씩만 사도 1억 개가 팔린다. 따라서 국내 업체가 매출을 유지하려면 새로운 제품을 계속 개발해 출시해야 하는데, 실력이 뛰어난 한국 ODM 업체들 덕에 신제품이 끊임없이 나온다.”
중국 MZ도 아마존 1등 제품 산다
올해 전체 화장품 수출 규모는 어떻게 될까.“지난해 수출 증가율이 10%였는데, 현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는 20%가 넘을 수도 있다. 현재 대미수출량이 40%, 대유럽 수출량이 50% 넘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수출량이 줄었던 중국에서도 다시 반등 조짐이 보인다. 중국 MZ세대는 애국 소비에 관심이 없고 아마존에서 1등 한 걸 사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아직 대중(對中) 전체 수출은 20% 이상 감소하고 있지만 미국에서 대박 난 브랜드의 대중 매출은 20~30% 증가했다.”
한국 화장품 업체들의 틱톡 마케팅 역량이 뛰어난 이유는.
“국내 최고 인재들이 화장품 창업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졸업생들은 실리콘밸리로 가지 화장품 업계로 오지 않는다. 그런데 서울대나 연고대 화학공학과 출신들은 코스맥스, 한국콜마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매출이 50억 원에서 한번에 500억, 3000억으로 뛰어오를 수 있는 유일한 시장이 화장품이기 때문이다. 패션이나 음식산업은 인기를 끌어도 제품을 생산할 공장이 부족해 매출이 즉각 크게 오를 수 없다.”
요즘 반도체주가 잘 오른다. 화장품주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는.
“지난해 하반기 화장품 기업 실적이 좋았음에도 주가가 크게 상승하지 못했다. 삼성전자로 투자금이 몰렸기 때문이다. 만약 올해 삼성전자가 지난해 같은 좋은 실적을 낸다면 화장품주가 오를 리는 없다. 하지만 삼성전자 주가가 숨 고르기를 하고 개별 업체들 실적만을 바탕으로 주가가 움직이는 순환매 시기가 오면 화장품주가 국내 제조업 테마 가운데 가장 많이 오를 것이다. 조선, 방산, 로봇 모두 미래가 창창하지만 실적이 수출 지표로 바로바로 찍히는 산업은 화장품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산업이 정보기술(IT) 다음으로 화장품이다.”
시기별로 화장품 기업 주가는 어떻게 움직일까.
“3년 전부터 계절성이 강해지고 있다. 최대 수출 대상국이 미국과 유럽이다 보니 3개월 이상 배로 운반하는 데 걸리는 시간, 블랙 프라이데이 등 최대 소비 시기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에이피알 같은 브랜드 업체는 4분기가 성수기다. 실리콘투 등 무역 유통사는 3분기, 한국콜마 등 ODM 업체는 2분기에 실적이 좋다. 지난해 6~7월 화장품 기업들 주가가 고점을 찍고 하락한 만큼 올해도 비슷한 시기에 매도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후로는 주가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렵다. 지난해처럼 계속 하락할 수도 있고, 계절성을 보일 수도 있다. 3~4분기 업황이 예상보다 좋다면 주가가 계속 상승하는 새로운 모습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에이피알은 짧은 호흡으로 투자해야
에이피알은 상장 후 주가가 꾸준히 오르고 있다(그래프 참조). 장기투자해도 되나.“아니다. 브랜드 업체에 투자할 때는 실적을 짧은 호흡으로 자주 확인해야 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해외 소비자는 틱톡에서 유행하는 제품 하나를 산다. 에이피알이라는 브랜드를 알고 좋아해서 관련 제품을 꾸준히 구매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언제 매출이나 주가가 고점을 찍고 하락할지 모른다. 에이피알 같은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업체는 단기간에 매출이나 주가가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지만 그만큼 변동성도 크다. 반면 B2B(기업 간 거래)가 주인 ODM 업체는 거래처가 많아 안정적이고 변동성이 작다. K-뷰티 산업 전반이 건재해도 에이피알은 망할 수 있지만, K-뷰티가 무너지지 않는 한 코스맥스, 한국콜마, 코스메카코리아가 망할 리는 없는 것이다. 다만 ODM 업체는 매출 상단이 정해져 있고 마진도 제한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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