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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신형 미사일 공습 두려움 커지자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축소 

2026.05.04 15:09

미국산 ‘러스티 대거’ 등 장거리 미사일 전력 대폭 강화… 크렘린 정밀 타격 가능

미국 공군 F-16 전투기가 신형 사거리연장공격탄(ERAM) AGM-188A ‘러스티 대거’를 시험 투하하고 있다. 미국 공군 제공
지난해 6월 14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D.C.에 난데없는 전차와 장갑차 행렬이 등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육군 창설 25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열병식이었다. 7000여 명의 병력과 수십 대의 전차, 장갑차, 야포, 헬기 등이 등장한 열병식을 본 시민들 대부분은 ‘실망’이란 반응을 보였다. 군악대와 의장대 등 행사를 전문으로 하는 부대는 오와 열을 맞춰 이른바 ‘각’ 잡힌 모습을 보여줬지만 일반 부대 병사들은 마치 산책을 나온 것처럼 터벅터벅 걸어갔기 때문이다. 전차와 장갑차에 탄 승무원들도 단상을 향해 절도 있게 경례하는 대신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박수를 유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미군의 모습은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의 열병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질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축소된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2021년 5월 9일(현지 시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리 76주년 열병식에서 러시아 국기와 전쟁 당시 나치 독일 국회의사당을 점령한 ‘제150소총사단’(현 제150근위차량화소총사단)의 깃발을 든 장병들이 행진하고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후 해당 사단을 포함한 러시아 육군 부대 다수가 전멸하는 등 병력 및 장비 손해가 커지자 러시아는 열병식 규모를 축소했다. 위키피디아 
그런데 우리가 TV를 통해 봐온 중국·러시아·북한의 웅장하고 절도 있는 열병식은 장병들의 피와 눈물, 고름을 쥐어짠 인권 유린의 결과물이다. 이들 나라의 열병식 준비 과정을 들여다보면 충격적이다. 군인들의 등에 T자형 각목을 붙여 ‘거위걸음’을 하는 동안 상체를 꼿꼿하게 유지시키는 것은 보통이다. 심지어 목 주변 옷깃에 여러 개의 바늘을 꽂아 고개를 숙이면 찔리도록 한다. 특히 거위걸음은 다리 각도와 보폭을 완벽하게 통일하며 걸음마다 발바닥으로 땅을 내리찍으며 ‘척척’ 소리를 내야 한다. 이 때문에 훈련 과정에서 관절과 연골이 닳아 없어지거나 주요 장기에 손상을 입는 부상자들이 속출한다.

권위주의 국가 중에서도 열병식에 특히 진심이었던 게 옛 소련이다. 매년 5월 9일 제2차 세계대전 전승절 등 국경일에 수만 명의 병력을 동원한 대규모 열병식을 열어 전 세계에 선전했다. 군국주의가 싹튼 프로이센에서 처음 시작된 각 잡힌 열병식은 소련을 거쳐 중국, 북한 등지로 퍼지며 ‘발전’했다. 소련 붕괴 후 국가 운영이 어려웠던 러시아는 1994년까지 열병식을 쉬었다. 이후에도 전승절 열병식마저 국가 재정을 고려해 소련 시절보다 작은 규모로 치렀다. 하지만 ‘강한 러시아’를 내세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집권 후 러시아는 열병식 규모를 다시 키우기 시작했다. 푸틴 대통령은 매년 열병식에 1만4000명 이상의 병력과 200대 이상의 차량, 각종 최신 무기로 붉은광장을 가득 채웠다.

그러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의 전승절 열병식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개전 2개월 후 치러진 2022년 5월 열병식은 전년보다 참여 병력이 3000여 명 줄었다.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저항과 반격으로 러시아군의 병력·장비 손실이 컸던 2023년 5월 열병식은 참여 인원이 8000명으로 줄고 전투기와 헬기 에어쇼도 사라졌다. 당시 행사에는 신형 전차가 1대도 나오지 않았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썼던 T-34 전차 1대가 열병 부대를 이끌었다. 2024년 열병식은 참여 병력이 1000명 정도 늘었지만 행사 규모는 여전히 전쟁 발발 이전보다 작았다.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을 맞은 지난해 열병식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13개 우방의 정상급 인사, 각국에서 파견한 부대까지 동원해 행사 규모를 대폭 키웠다. 다만 열병식 규모는 여전히 전쟁 이전 수준에 미치지 못했고 투입된 신형 무기도 많지 않았다.

3월 열병식 리허설 돌연 취소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쏜 이스칸데르의 잔해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개발한 신형 미사일을 곧 공개할 예정이다. 위키피디아
그런데 올해 전승절을 앞둔 4월 28일 러시아 국방부가 의미심장한 발표를 했다. 열병식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지상 장비를 투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공지에서 “러시아 연방군 각 병과 및 개별 군종의 고등군사교육기관 소속 군인들이 도보 행렬 일원으로 열병식에 참가한다”며 “현재 작전 상황으로 인해 수보로프 및 나히모프 군사학교 학생과 생도단, 군사장비들은 열병식에 불참한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열병식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대신 우크라이나 파병 장병과 각 군종 대표의 활약상이나 인사말을 담은 영상을 방송할 예정이다. 여러 최신 전투기와 헬기가 대규모도 동원되던 에어쇼 역시 곡예비행팀인 ‘러시안 나이츠’와 구식 Su-25 공격기 몇 대만 참여하는 것으로 축소됐다. 무엇보다 열병식의 핵심으로 꼽히는 핵미사일 등 첨단 무기는 아예 등장하지 않을 예정이다.

사실 4월부터 러시아에선 열병식 자체가 취소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초 올해 열병식은 지난해에 준하는 규모로 치러질 예정이었고 이를 위해 3월 모스크바 외곽 알라비노 훈련장에 장병들과 각종 장비가 모여 연습 중이었다. 그런데 알라비노에서 4월 5일 치러질 예정이었던 1차 종합 리허설이 돌연 취소됐다. 훈련장에 파견된 부대에는 원대 복귀 명령이 하달됐다. 이 사건을 두고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받은 자료로 선전 활동을 해온 친크렘린 성향 ‘밀블로거’ 사이에서 “올해 열병식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4월 8일에는 현지 언론이 “러시아군이 열병식 취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러시아 국방부가 열병식을 취소에 가까운 수준으로 축소하면서 든 명분은 ‘현재 작전 상황’이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어 보인다. 바로 우크라이나가 열병식 행사장을 공습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다. 4월 29일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전승절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즘에 맞서 우리가 함께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라며 당일 하루 우크라이나와 휴전하겠다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제안을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우크라이나는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러시아가 전승절 하루라도 휴전하겠다고 요청한 것은 최근 우크라이나가 크렘린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데 따른 불안감 때문이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무기고를 새로 채울 강력한 장거리 타격 무기가 완성됐다. 미국은 4월 13일 AGM-188A ‘러스티 대거(Rusty Dagger)’로 명명된 신형 사거리연장공격탄(ERAM)을 F-16 전투기에 통합하는 작업을 마쳤다. 이 무기는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군사력 강화를 위해 미국산 무기를 사서 제공하는 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개발된 저비용 장거리 순항미사일이다. 이에 따라 8억2500만 달러(약 1조2200억 원)어치 장거리 미사일 3350발이 우크라이나에 인도된다. 당초 ERAM은 500km 이내 사정거리를 갖는 무기로 계획됐지만 러스티 대거는 930km에 이르는 긴 사거리를 가진 무기로 완성됐다. 미군도 러스티 대거를 대량 도입할 예정이다.

사거리 930km 신형 미사일 3350발 확보
시아의 S-400 지대공미사일 시스템. 최근 러시아의 방공망은 우크라이나의 저속 자폭 드론조차 제대로 잡아내지 못할 정도로 무력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이 미사일은 미군의 현용 주력 장거리 미사일 JASSM과 유사한 스텔스 디자인이 도입됐다. 발사 중량을 500파운드(225㎏)로 억제해 F-16 전투기 1대에 4발 이상을 탑재할 수 있다. 스텔스 기능과 긴 사거리 덕에 우크라이나 중부의 안전 공역에서 발사해도 모스크바를 정밀 타격할 수 있다. 최근 러시아 방공망은 레이더에 잘 잡히는 저속 자폭 드론조차 제대로 막지 못할 정도로 무력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신형 미사일의 등장은 러시아에 매우 심각한 위협이다.

최근 우크라이나는 러스티 대거 말고도 미사일 전력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5월 실물을 첫 공개할 예정인 FP-9 탄도미사일도 러시아에 대단히 치명적인 무기다. FP-9의 모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수백 발을 날린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이다. 우크라이나가 수거한 이스칸데르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위력과 사거리를 키운 게 FP-9다. FP-9은 사거리 855km, 비행속도 마하(음속) 6~7, 탄두중량 800kg의 고위력 미사일이다. 이 미사일로도 우크라이나 영토 안전지대에서 모스크바를 타격할 수 있다. 러시아의 S-400 방공시스템이 간신히 요격하는 ATACMS 미사일보다 2배 이상 빨라 현용 방공망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니히우 인근에서 발사하면 붉은광장까지 5~6분이면 도달할 수 있어 조기경보·대피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탄두 위력도 강해서 자탄을 탑재한 한 두발만 행사장에 떨어져도 단상 위 러시아 지도부는 물론 열병식 참여 병력 대부분이 죽거나 다칠 수 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드론 공습이 격화되는 가운데 자국 방공망이 제 구실을 못하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푸틴 대통령은 이미 집무실을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북동쪽으로 약 360km 떨어진 발다이 별장으로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발다이 별장은 푸틴의 내연녀로 알려진 전 체조선수 알리나 카바예바가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4㎢ 면적의 발다이 별장을 지키기 위해 판치르 타워(판치르-S1/S2 방공시스템을 높이 설치된 구조물에 얹은 시설)가 무려 27개, S-400 방공포대도 1개 배치됐다. 모스크바주(4만5900㎢)에 배치된 판치르가 47개, S-400 포대가 20개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본래 판치르는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자폭 드론 공격으로부터 공군·해군기지나 탄약창, 에너지 시설을 보호하는 데 쓰였다. 그런데 푸틴 대통령이 작동 가능한 판치르 상당수를 발다이 별장으로 재배치하면서 러시아의 주요 전략 시설이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습에 파괴되고 있다.

푸틴 후방 집무실에 방공망 집중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쟁 발발 후 러시아의 미사일 공습과 특수부대 공격 등 수십 차례의 살해 시도를 겪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서방 고위 인사들과 만나는 공식 일정이 있을 때는 제외하곤 집무실과 숙소를 수시로 옮겨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4년 넘는 시간 동안 러시아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살해 수단으로부터 살아남으며 생존법을 터득해 왔다. 반면 푸틴 대통령에게는 그런 ‘노하우’가 없다. 그래서인지 그는 집무실을 후방으로 옮기고, 열병식을 축소하고, 이제 열병식 하루만이라도 휴전하게 해달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매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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