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 경제’ 이젠 기업의 명운 가른다
2026.05.04 17:05
AI 시대 ‘디지털 원유’
오픈AI에서는 최근 한 엔지니어가 일주일 동안 2100억개 ‘토큰(Token)’을 써 사내 소비 1위에 올랐다(뉴욕타임스). 토큰은 AI가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본 단위로, 토큰 사용량은 AI 활용도를 가늠하는 지표다. 2100억개 토큰은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전체 문서를 33번 채울 수 있는 분량이다. 앤트로픽 코딩 도구 ‘클로드 코드’에서도 한 사용자가 한 달 만에 15만달러, 우리 돈 약 2억원어치 토큰을 써 화제가 됐다.
에이전트 여러 개를 동시에 쓰는 ‘멀티 AI 시대’, 사용자가 잠든 사이에도 AI가 스스로 일하는 ‘에이전틱 AI’가 확산하면서 ‘토크노믹스(Tokenomics·토큰 경제)’가 IT 업계 화두로 떠올랐다.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엔지니어들에게 토큰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며 토큰 경제에 불을 지폈다. 토큰은 단순한 데이터 단위를 넘어 전력·클라우드·반도체 비용을 빨아들이는 새로운 경제 단위가 됐다는 진단이다. 모델 경쟁에 국한됐던 AI 경쟁 승패도 앞으로는 토큰 비용 최적화 전략에서 갈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바라본다.
IT 구루 “AI 시대 핵심 인프라”
토큰은 거대언어모델(LLM)이 문장을 처리할 때 잘게 쪼개 인식하는 최소 단위 데이터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은 각각 공식 문서에서 토큰을 텍스트를 구성하는 조각, 즉 단어나 어절·문장부호까지 포함한 모델 처리 단위로 설명한다.
‘토크노믹스’는 ‘토큰(Token)’과 ‘이코노믹스(Economics)’를 합친 조어다. 당초 블록체인 업계에서 토큰의 발행·유통·인센티브 구조를 뜻하던 표현으로 널리 쓰였다. 생성형 AI 확산 이후 토큰 사용량과 비용 효율을 따지는 의미로 재해석되고 있단 분석이다.
IT 업계에서 토큰 경제를 전면에 부각한 대표 인물로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에런 레비 박스(클라우드 기반 협업 플랫폼) CEO 등이 꼽힌다. 올트먼은 지난해 2월 “일정 수준 AI를 쓰는 비용이 12개월마다 10배씩 떨어지고 가격 하락은 더 많은 사용을 부른다”고 말했다. 즉, 토큰 단가 하락과 수요 폭증 선순환이 맞물려 ‘AI의 제번스 역설’이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제번스 역설은 효율이 높아져 자원 사용 비용이 낮아지면, 총수요와 총사용량이 더 늘어나는 현상을 뜻한다.
토큰 경제가 화두로 떠오른 배경으로 크게 2가지가 지목된다.
첫째, AI의 급속한 확산으로 토큰 사용량이 기업 비용 구조를 흔드는 단계로 급팽창했다. 사용자가 자는 동안에도 AI가 스스로 코딩·검색·추론을 반복 수행하는 ‘에이전틱 AI’ 확산으로 토큰은 데이터 단위를 넘어 AI 서비스 가동을 위한 ‘디지털 원유’로 재평가됐다는 진단이다.
특히, 토큰 사용량 증가는 기업 비용 구조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에이전틱 AI처럼 긴 문맥과 반복 호출이 많은 업무가 붙으면 호출 횟수와 출력 토큰이 함께 늘어나 청구액이 급증한다. 이 때문에 토큰 관련 비용이 커질수록 기업은 토큰을 생산성 대비 수익률(ROI) 관점에서 관리하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둘째, AI 활용 방식 변화다. 최근 AI 활용 행태가 단일 모델에서 복수의 에이전트가 협업·경쟁하는 ‘멀티 에이전트’ 구조로 빠르게 진화했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토큰 수요는 한 번의 질문·응답을 넘어 다층적 호출 구조로 급증한다.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이 단일 에이전트보다 조사·분석·보고서 작성의 완성도와 속도 면에서 더 높은 성과를 보인다는 결과가 나오자 AWS와 구글 클라우드 등도 관련 플랫폼과 협업 기능을 속속 내놓는다.
조직 운영 관리 지표로 부상
국내 기업도 AI 인프라 최적화 사활
사정이 이렇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토큰 사용량이 단순한 기술 지표를 넘어 조직 운영 핵심 관리 항목으로 떠올랐다. 한때 토큰을 많이 쓰는 엔지니어가 AI를 적극 활용하는 인재로 평가받았다면,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기업들은 토큰 사용량 대시보드까지 만들어 직원별 소비를 추적한다. 가령, 같은 보고서를 만들고 같은 코드를 짜더라도 더 적은 토큰으로 더 높은 품질을 내는 조직이 비용·생산성 모두 우위를 점한다는 평가다. 이는 달리 말해, AI 경쟁 기준이 모델 성능 자체에서 토큰당 산출물의 질, 토큰 효율로 옮겨가고 있다는 의미다.
한종목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AI 산업의 화두는 ‘누가 더 빠른 GPU를 가졌는가’에서 ‘데이터의 이동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로 옮겨갔다”고 진단했다. 토큰 경제의 승부처가 연산량 자체보다 데이터 이동과 메모리 효율, 전력 소모를 포함한 총소유비용 관리로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토큰 경제는 기업 보상 체계까지 영향을 미친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올 3월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회의 GTC에서 엔지니어들에게 연봉 외 별도 ‘연간 토큰 예산’을 주는 방안을 거론했다. 젠슨 황 CEO는 그 규모를 기본급 절반 수준으로 제시했다. 이를 적용하면 상위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한 명에게 연간 수억원대 토큰 사용 예산이 투입된다. 토큰이 현금 보너스·주식 보상처럼 인재 유치와 생산성 제고를 위한 새로운 기업 자원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국내 주요 IT 기업도 토큰 비용 최적화를 기업용 AI 사업 척도로 삼는 분위기다. 기업 고객 입장에서는 생성형 AI 도입이 늘수록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응용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 호출, 추론 연산, 보안 통제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삼성SDS는 AI 플랫폼 패브릭스(FabriX)로 여러 대형언어모델과 기존 업무 시스템을 연결하되, 기업 환경에 맞게 안전하고 확장 가능한 구조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뒀다. LG CNS도 올해 ‘AI Tech Summit 2026’에서 기업형 AI 도입 핵심 과제로 인프라 효율화와 거버넌스, 소버린 AI를 전면에 내세웠다. SK AX는 멀티 에이전트 플랫폼 ‘엑스젠틱와이어’를 공개했다. 여러 AI 에이전트가 협업하되 기업 운영 전반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해 의사결정과 실행을 최적화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국가 차원의 AI 인프라 전략도 토큰 생산성과 비용 사이에서 최적 균형점을 찾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AI 데이터센터 전력·입지·인허가 규제를 일괄 정비해 토큰 처리 인프라를 신속히 정비해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산업 현장에서 생성되는 고품질 데이터를 공동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데이터 활용을 가로막는 법적·기술적 허들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하다. 배순민 전 KT AI퓨처랩장은 “한국이 AI 모델부터 반도체까지 풀스택을 자체 구성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지만, 데이터 공동 활용 플랫폼과 법적 불확실성 해소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8호(2026.05.06~05.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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