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연출가는 '예술인 증명' 못했는데, AI는 증명… AI 시대의 착오
2026.05.04 13:33
예술인 예술활동증명 논란
증명 위해 과도한 서류 요구
AI로 만든 작품 쉽게 통과해
예술활동 정량적 증명의 착오예술활동증명 절차를 20년차 연출가가 통과하지 못했다. 며칠 뒤 인공지능(AI)이 만든 음원은 통과했다. 올봄 예술활동증명이 빚은 풍경이다. 무엇이 이들을 갈랐을까. '직업 활동 확인' 절차이던 서류 한 장이 복지ㆍ보험ㆍ공모 자격까지 가르는 관문 노릇을 떠맡은 탓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학생을 거르거나 받지 않은 적은 없다. 상담에서 알려줄 뿐이다. 진짜 판정은 그 뒤 3개월이 한다. 3개월이면 학생도 나도 알게 된다. 이 친구가 글을 계속 쓸지 말지는, 대개 그 안에 정해진다. 책상에는 세 시간을 버틴 원고가 쌓여 있고, 천장 LED 불빛에 종이가 번들거린다. 종이컵에 식어가는 커피, 키보드 위에 얹어 둔 손,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사월 밤공기….
나는 이들의 걸음에 어떤 판단도 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행정은 다르다. 한정된 재정이 있고, 그것을 나누려면 심사는 불가피하다. 그 점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지금의 심사 방식에는 분명히 고쳐야 할 지점이 있다.
■ 예술인과 예술활동증명 = 올해 봄, 내 타임라인에는 예술활동증명 후기가 쏟아졌다. 한 소설가는 여섯번의 재신청 끝에 1년 반만에 완료를 받았다고 적었고, 십수년 활동한 음악가는 반려 사실을 올렸다.
며칠 뒤에는 인공지능(AI)가 만든 음원이 통과했다는 인증이 돌았다. 한쪽에서는 "문턱이 너무 낮다"는 분노가 터졌고, 다른 쪽에서는 "이들이 안 되면 누가 되느냐"는 탄식이 터졌다. 두 감정이 같은 제도를 향하고 있었다. 이 풍경의 출발점을 보려면 십수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2011년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한국 법은 '예술'은 오래 다뤘지만 '예술인' 자체를 독립된 권리주체로 세운 적이 없었다.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은 문학과 미술을 지원 대상으로 적었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을 법의 주체로 부르지 않았다. 사회보험은 근로계약을 전제했고, 예술활동은 그 전제 바깥에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이 차가운 방에서 세상을 떠난 2011년 초의 사건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해 11월 예술인복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은 선량한 마음에서 출발했다. 예술인을 "예술 활동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법문에 새겼고, 국가가 이들의 복지와 권리를 책임진다고 선언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문을 열었고, 산재보험 임의가입 특례가 생겼으며, 2020년에는 고용보험도 예술인에게 길을 열었다. 2021년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예술 활동의 범위를 기획과 비평, 연습과 훈련까지 넓혔다.
증명은 본래 '예술인임을 승인'하는 제도가 아니라 '직업 활동의 존재'를 확인하는 행정 절차다. 재단도 그렇게 공지한다. 그러나 한번 만든 증명서는 자기 몫보다 훨씬 많은 일을 떠맡기 시작했다.
증명서는 어느새 예술활동준비금, 생활안정자금 융자, 산재보험 보험료 지원, 고용보험 특례,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예술인패스, 중앙ㆍ지자체 공모사업의 선행 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2026년 예술활동준비금 공고만 보더라도, 유효한 증명이 없으면 중위소득 요건을 만족해도 신청조차 할 수 없다. 공식적으로 "예술인 인증이 아니다"라고 밝히는 문서가, 실제로는 예술인의 생활과 권리 전체를 가르는 관문이 됐다.
■ 본질 사라진 증빙들 =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2023년 개정은 이 문제를 풀려는 시도였다. 법은 '예술인'과 '예술활동증명 예술인'을 분리했고, 활동증명 사항을 정의에서 덜어냈다. 예술인임은 증명 이전에도 성립한다는 쪽으로 이야기를 돌린 것이다.
그러나 실무는 움직이지 않았다. 2026년 준비금 공고는 여전히 유효한 증명서를 요구했고, 신진예술인 증명 완료자는 오히려 핵심 현금성 지원에서 빠졌다. 법문은 바뀌었지만, 운용은 그대로다.
올해 초 신청 건수는 전년의 세 배로 늘었다. 행정은 버티지 못했다. 재단은 보완기한을 2주에서 1주로 줄였고, 필수자료가 부족하면 보완 요청 없이 미완료로 처리했다. 한 연출가는 20년 경력으로도 떨어졌고, 같은 시기 AI가 만든 음원은 증명을 통과했다.
한쪽에서는 "취미생활 지원이 아니냐"는 비난이, 다른 쪽에서는 "직업 예술인도 떨어뜨린다"는 탄식이 동시에 쏟아졌다. 지난해에는 스스로 취미라고 밝힌 이들이 지원금으로 산 취미용품을 온라인에 올려 논란이 된 일도 있었다. 두 비판이 동일한 제도를 향한다. 하나의 서류가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판정하려고 하면, 어느 기준을 맞춰도 다른 쪽에서 비판이 나온다.
■ 증빙 못하는 사람과 잘하는 AI = 여기서 짚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증명이 요구하는 것은 결국 횟수다. 시 5편, 단편 3편, 연재 100화. 발표물의 숫자, 공연 회차, 전시 참여 횟수. 이런 정량 기준은 인쇄와 오프라인 발표가 지배하던 시절의 설계다. 그 세계에서는 '많이 쓰거나 많이 공연하거나 많이 전시한 사람'이 대체로 '직업 예술가'였다.
지금은 그 전제가 무너졌다. 누구나 AI 도구를 보조로 써서 음원 수십곡, 단편 수십편, 일러스트 수백장을 한달 안에 뽑아낸다. 올해 AI가 만든 음원이 증명을 통과한 사건은 제도 허점의 문제가 아니라, 정량 기준 자체의 무의미성을 드러낸 신호다.
첫 단편을 막 끝낸 학생은 등단을 향해 한 해, 두 해를 더 쓸 것이다. 등단한 학생은 다음 청탁을 기다리며 다른 일로 생활을 꾸릴 것이다. 실태조사를 보면 예술인 두명 중 한명은 부업을 하고, 평균 연소득은 1000만원 남짓이다. 작품이 세상에 나오는 시점, 첫 인세를 받는 시점, 마지막 연재를 접는 시점이 모두 다르다.
그런 삶을 한 장의 증명서로 자르려 하면, 잘린 사람의 자리가 곧 복지 사각지대가 된다.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이 사람은 예술 활동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가.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가는 이 질문의 답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를 출판문학계에 속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 정체성에 서류가 먼저 동의해 줄 필요는 없다.
■ 세계 각국이 택한 것들 = 해외는 어떻게 다룰까. 독일은 예술가 사회보험기금을 통해 프리랜서 예술가와 저술가를 법정 사회보험에 편입한다. 본인은 보험료의 약 절반만 내고, 나머지는 사업주 부담금과 연방 보조로 채운다. 프랑스는 '예술가-저자' 사회보장 지위와 공연예술 간헐종사자 체계를 병렬로 운영한다. 영국과 미국은 별도의 국가 인증이 없고 일반 자영업 판정과 지원사업 자격심사로 가른다.
국가마다 답은 다르지만, 하나의 서류가 예술인 판정과 복지 적격과 공공지원 자격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구조는 어디에도 없다. 정량 횟수 하나로 예술인 여부를 가리는 나라도 많지 않다. 독일은 주된 직업성과 소득 기준을, 프랑스는 활동 유형과 사회기여금 납부 이력을 본다. 한국만 두 문제를 하나의 증명서에 몰아넣었다.
심사 자체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길은 결국 분리다. 예술활동증명은 '직업적 활동의 확인'이라는 본래 목적에 한정하고, 복지ㆍ보험ㆍ공모는 각각의 목적에 맞는 요건과 심사를 따로 둬야 한다. 동시에 증명의 기준도 재설계가 필요하다. 횟수와 편수 중심의 정량 기준은 참고 자료로 내리고, 계약 유형, 활동의 맥락, 동료 심사를 함께 본다면 AI 생산성이 왜곡하는 부분을 상당히 걷어낼 수 있다.
내일 또 다른 학생이 책상 앞에 앉을 것이다. 나는 그 아이가 첫 테스트에서 어떻게 보이든 그걸로 들어올지 말지를 정하지 않는다. 일단 받고, 3개월의 시간이 답하게 둔다. 학생도 나도 그 안에서 알게 된다.
예술인 증명도 다르지 않다. 사전 심사가 어떤 사람을 어떻게 보이게 하든, 그것으로 최종 판정을 내리지 말자는 것이다. 지원을 먼저 하고, 그해의 활동이 답하게 두면 된다. 이 사람은 정말로 그해 지원을 받고 활동을 했는가. 사전의 엄격한 문턱보다, 이들을 지켜보는 시선이 필요할 시기다.
이민우 문학전문기자 | 더스쿠프
문학플랫폼 뉴스페이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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