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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호흡기 낀 환자의 구수증서 유언... 대법 "효력 있어"

2026.05.04 14:27

폐암 걸려 녹화 영상으로 유언 남겨
1·2심 "녹음도 가능했을 것" 원고 패소
대법 "산소호흡기로 정상 발음 어려워"
구수유언 효력 인정 취지로 파기환송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가족이 병상에서 남긴 구수유언의 효력을 두고 은행과 법적 다툼을 해 온 유족이 4년 만에 대법원에서 승소 취지 판결을 받았다. 구수유언은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를 구술하고 이를 다른 사람이 필기, 낭독해 내용을 재확인하는 방식을 말한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김모씨가 은행을 상대로 낸 예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지난달 2일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김씨의 이부형제(어머니는 같고 아버지는 다른 형제)인 박모씨는 2021년 4월 폐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로 "김씨에게 예금채권과 주거지 전세보증금 반환채권 등 재산 전부를 증여한다"는 내용의 구수증서 유언을 남겼다. 옆에 있던 증인이 이 내용을 필기한 다음 낭독했고, 박씨의 변호사가 유언 과정을 녹화했다.

박씨는 당시 호흡곤란으로 계좌번호 일부를 겨우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일부 재산 내역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기억해내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박씨는 유언 사흘 뒤 숨졌다. 김씨는 유언대로 박씨의 예금채권에 예치된 9,600만 원을 받으려했지만 은행이 지급을 거부해 2022년 8월 소송을 냈다. 민법에 따르면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은 질병 등 급박한 사정으로 녹음, 자필 증서 등 일반적인 방식의 유언이 불가능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1·2심은 은행 측 손을 들어줬다. 박씨가 재산 상태와 유언의 의미를 이해하고 말할 수 있었던 만큼 녹음 방식의 유언도 가능했을 것으로 보여 구수증서 유언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녹화 영상에 유언한 날짜와 망인의 성명 등이 포함되지 않아 유언으로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박씨가 일부 계좌번호를 기억해 말할 수 있었던 건 유언을 위한 의사 능력의 존재를 보여줄 뿐, 녹음 방식의 유언이 가능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아니라고 봤다. 대법원은 "유언 당시 망인은 산소호흡기를 낀 상태로, 정상적인 발음에 장애가 있었다"며 "제3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유언 취지를 자필증서로 작성하거나 육성을 녹음해 주도적으로 유언 취지를 구술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건 상당히 어려웠다"고 판단했다.

이어 "유언 당시 증인이 망인의 구수 과정을 녹화한 건 법적 효력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원심 판단에는 구수증서의 보충성 내지 유언의 효력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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