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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속 그가 카메라 켠 순간 돈이 되고… 누군가는 먹잇감이 됐다[가짜 정의 ‘온라인 분노 비즈니스’ 실태 추적]

2026.05.04 10:24

■ 가짜 정의 ‘온라인 분노 비즈니스’ 실태 추적
(1) 분노 유발, 웃는 자와 우는 자

배달업체 운영하며 ‘사이버렉카’ 채널 열었지만
‘밀양 성폭행범’ 확인도 않고 신상공개… 구독자 42배로

경쟁 안 밀리려 공무원 아내까지 거리낌없이 ‘신상털이’
“와이프 사업장 발견 대박사건… 가족 다 털어줘 엄마까지”

첫 영상 60일 뒤 부부 차례로 체포… 782만원 벌어
구속뒤 변호사비 모금 게시물… “선의” 운운하며 앵벌이


‘전투토끼’ 범행 60일 재구성

특별취재팀 = 노지운·노수빈·이현웅·김혜웅·이은주 기자



“사장님, 요즘 시끄러운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있어요.”

파산 직전의 배달 업체 사장이었던 30대 노모 씨의 또 다른 직업은 바로 ‘사이버렉카’. 유튜브는 돈이 된다는 말만 믿고 4년 전부터 부업으로 유튜버가 됐지만 구독자 수는 천 명 대에서 좀처럼 늘지 않았다. 그런 노 씨에게 직원의 한 마디는 현 상황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줄 동아줄이었다.

성공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또 다른 사이버렉카 유튜버인 ‘나락보관소’가 “밀양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를 공개한다”는 영상을 올리면서 조회 수와 구독자 수가 폭증하고 있었고, 세간의 모든 이목도 그에게 쏠린 상황이었다.

“이건 기회다”. 노 씨는 곧바로 직원으로부터 A 씨의 이름과 얼굴 사진, 직장은 물론 아이와 부인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가족사진까지 전달받았다.

예상대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동안 노 씨가 쏟아부은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틀 만에 노 씨의 유튜브 채널 ‘전투토끼’의 구독자 수는 1만 명을 돌파했다. 해당 영상 내용을 보도하는 기사들이 포털에도 쏟아졌고, 전투토끼를 찬양하는 댓글들도 쏟아졌다.

그러나 노 씨에게 ‘한 줄기 희망’과도 같았던 A 씨는 밀양 성폭행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는 인물이었다. 나아가 당시 직원이 A 씨에 대한 악감정을 품고 노 씨에게 그를 허위 제보했음이 밝혀진 것은 이미 시간이 한참 흐른 뒤였다. 하지만 여전히 진실은 묻혀 있다. 지금까지도 A 씨의 이름과 사진은 온라인을 떠돌고 있는 상태다.

2024년 6월 ‘밀양 성폭행 가해자 신상 공개’ 릴레이에 동참하며 사이버렉카가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뒤 2년이 지났다. 그들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도록 만든 이른바 ‘무능한 수사·사법 기관’을 대신해 가해자들에게 단죄를 내리겠다고 당당히 외쳤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원한 것은 정의가 아닌 돈이었다. 문화일보는 ‘밀양 성폭행 사건’ 신상공개에 앞장선 유튜버 ‘전투토끼’의 경찰 수사보고서, 진술 조서, 카카오톡 대화 내역은 물론 계좌 사용 내역까지 담긴 2800쪽짜리 자료를 입수해 분석했다. 이를 통해 전투토끼가 밀양 성폭행 가해자라며 신상공개 영상을 올린 2024년 6월 5일부터 그가 경찰에 체포된 8월 5일까지 이어진 ‘60일의 인간 사냥 일대기’를 재구성했다.



◇“이제 유튜브로 월 1000만 원씩 벌겠다”= 영상 공개 전 노 씨 부부에겐 4억 원 상당의 빚이 있었다. 노 씨는 배달 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었지만 통신 요금조차 낼 수 없어 친구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사이버 금융 사기로 5000만 원을 잃었던 그의 휴대전화에는 매순간 채권자들의 독촉 전화가 쏟아졌다. 그런 노 씨에게 유튜브는 삶을 바꿀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실제 본보가 확보한 검찰 신문 조서에서도 노 씨는 아내에게 “여보, 이제 저거(유튜브)로 월 1000만 원씩 벌 거다”라고 말한 내용이 적시돼있었다.

하지만 이른바 ‘단독 경쟁’은 녹록지 않았다. 우후죽순 밀양 성폭행 가해자의 신상을 올리는 유튜버가 난무한 상태였다. 이들이 현재 어디서 살고 있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결혼 여부와 자식 여부 등을 먼저 알아내는 유튜버가 ‘승자’였다. 노 씨에겐 치열한 단독 경쟁에서 이길 자신만의 무기가 있었다. 바로 공무원인 아내 김 씨의 신분. 실제 경찰 조사 과정에서 김 씨는 “남편과 나락보관소가 같은 영상을 올렸는데도 조회 수가 차이가 났다”며 “나락보관소와 조회 수 경쟁을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고 진술했다.

◇아내의 가담과 더 대범해진 ‘인간 사냥’= 6월 7일 충북 괴산군의 한 면사무소, 노 씨의 아내 김 씨는 모두가 자리를 비운 사무실에서 홀로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9년 차 공무원이었던 그에게 지방세시스템을 통해 특정인의 이름으로 주민등록번호와 거주지, 동거인의 정보를 빼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김 씨는 다른 직원의 계정까지 훔쳐 남편의 ‘인간 사냥’을 도왔다. “이 XX 연봉 보소, 10억 원짜리 아파트 살고 개킹받네(많이 열받네)”라며 분노하던 이들 부부에겐 당장 부유한 삶을 누리는 가해자들은 콘텐츠였다. 그럴수록 ‘인간 사냥’은 더욱 성역 없이 이뤄졌다.

이들은 리스트에 적힌 이들의 개인정보뿐 아니라 그들의 부모, 배우자, 배우자의 사업장, 직장까지 주고받았다. “마누라까지 공개하기가 좀 그렇다”라는 노 씨의 만류에도 오히려 김 씨는 “그냥 가족들 다 털어줘. 엄마까지 시원하게. 그런 거에 자살할 사람이면 자기 새끼 강간범 됐을 때 자살했어”라고 말하며 범행을 지속했다.

하지만 이들이 ‘강간범의 아내가 운영하는 사업장’이라며 정보를 퍼뜨렸던 이는 밀양 성폭행 사건에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 처리돼 사건과 무관한 사람인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해당 사업장은 폐업하고 사라진 상태다.

이처럼 그들에게 사실 확인은 사치였다. 전투토끼가 제작한 한 영상에는 2005년에 찍힌 고등학생들의 사진이 삽입됐다. 노 씨는 영상에 “이놈들 몽타주 한 번씩들 더 보시고 아주 똑똑히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라는 자막을 달았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사진에 나와 있던 이들은 가해자들로 지목된 사람들과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뿐이었다. 노 씨는 경찰 신문에서 “인터넷에 떠돌던 것들이라 그 당시에는 가해자들의 사진인 줄로만 알았다”며 “다른 여러 채널에 올라와 있길래 사실 관계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검찰 조사 결과 같은 해 6월부터 7월까지, 68회에 걸쳐 55명의 개인정보가 노 씨에게 흘러들어 갔다



◇60일, 이른바 ‘정의의 사도’가 이뤄낸 것= 지난해 8월 5일, 경남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개인정보보호법위반 등의 혐의로 노 씨에 대한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 첫 영상을 올린지 60일 만이다. 그리고 5일 뒤, 아내 김 씨도 경찰에 체포됐다. 구독자 42배 폭증, 782만 원의 수익, 533만 회의 조회 수(2024년 8월 11일 기준). 영상 단 10개로 이뤄낸 결과다.

전투토끼가 밀양 사건 첫 영상을 올린 6월 5일 기준 4200명이었던 구독자는 하루만인 6일에는 1만4800명, 7일 2만100명, 11일 8만1000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노 씨가 경찰에 체포될 당시에는 구독자 수가 11만 명을 상회했다. 경찰이 전투토끼 유튜브 채널의 수익을 분석한 결과 영상의 조회 수 수익만 782만3256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투토끼의 유튜브 수익이 흘러들어 간 계좌 사용 내역을 살펴보면 식자재마트, 국밥집, 카페 등 대부분 생활비로 쓰였다. 타인의 삶을 망가뜨린 무덤 위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꾸리고 있었다.

부부가 체포된 뒤에도 ‘돈벌이’는 멈추지 않았다. 전투토끼 유튜브 채널에는 변호사 비용을 모금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전투토끼 가족입니다”라고 시작하는 해당 게시글에서는 “전투토끼 부부가 선의의 목적과 의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은 사실”이라며 “죄송하고 또 죄송하지만 여러분께 도움을 요청드리고자 합니다”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탄원서를 보낼 수 있는 메일 주소와 후원계좌를 명시했다. 이들에게 흘러간 후원 규모는 현재로써는 추산할 수 없다.

◇“제 신변은 노출되는 게 싫었습니다”= 지난 2024년 8월 30일 창원지검은 전투토끼 부부를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명예훼손)과 개인정보보호법위반, 강요, 업무방해, 협박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창원지법은 이듬해 5월 23일 노 씨에게 징역 2년 6월과 782만3256원 추징, 아내 김 씨에게는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의 주요 목적은 ‘사적 제재를 통한 정의 구현’으로 유튜브 수익 추구라는 경제적 동기를 차치하고서라도 그 자체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명예 침해 정도는 본인뿐 아니라 일가족까지도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다”며 “피고인들이 유튜브를 이용한 사건 범행을 통해 짧은 기간 동안 적지 않은 수익을 얻었고 경제적 유인 또한 범행 동기가 됐다”고 했다. 이들의 형은 2심에서도 그대로 유지됐다.

돈을 벌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에게 사실상 ‘사망 선고’를 내린 이들에게 내려진 솜방망이 처벌은 곧 끝을 앞두고 있다. 노 씨는 경찰 조사에서 가면을 쓴 이유에 대해 본인의 신변을 감추고 싶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신상공개 피해자들의 이름과 직장, 집 주소, 얼굴 사진은 아직도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터넷상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가해자들은 가면 뒤에 숨고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날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마스크에 얼굴을 가리며 숨죽여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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