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는 사표, 400억 못갚아 부도…"개미도 묶였다" 제이알 사태 일파만파
2026.05.04 05:00
제이알글로벌리츠를 실질적으로 경영했던 자산관리회사(제이알투자운용)의 설립자 겸 대표가 제이알글로벌리츠의 핵심 자본조달 계획이 무산된 직후 대표이사직을 사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는 제이알글로벌리츠가 기업회생 신청에 따라 재무 악화에 이르기까지 경영진 등의 책임소재에 대한 추적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특히 이번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 충격이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산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국토교통부에 이어 한국은행이 외환시장 관련 상황 파악 차원에서 제이알글로벌리츠를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 자산운용사 창업자 대표직 사임→사채 연쇄 발행→기업회생…제이알투자운용 "고령에 따른 사임"
3일 채권시장에 따르면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위탁관리형 부동산투자회사(리츠)이며 위탁관리형 리츠는 회사 자체에 자산운용 인력을 두지 않고, 자산관리회사(AMC·Asset Management Company)에 자산 취득·운용·매각 업무를 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제이알글로벌리츠 자산을 관리했던 AMC는 제이알투자운용이다.
제이알투자운용을 지난 2008년 11월 설립한 이방주 회장은 2026년 2월10일 대표이사 보직에서 사임했으며 회장 직함과 등기임원으로서의 법적 지위는 유지하고 있다. 이 회장이 대표에서 사임한 직후 제이알투자운용 대표이사는 공동 설립자인 김관영 부회장과 장현석 사장 2명이 맡고 있다. 이 회장은 올해 83세(1943년생)이며 현대산업개발에서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이 회장의 대표 사임 시점은 제이알글로벌리츠가 구상했던 유상증자가 불발된 직후였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1200억원 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1월23일)했다가 철회(2월5일)했고 계획 철회에 따라 한국거래소는 제이알글로벌리츠를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2월9일)했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벨기에 오피스 자산의 감정평가서 수령 지연을 이유로 유증 계획을 철회했다고 설명해 왔다. 해당 자산의 담보 감정평가액이 회사 추정치를 크게 밑돌면서 유증을 진행하기 어려워졌는 것이다.
이 대표 사임 나흘 뒤인 2월 13일에 제이알글로벌리츠는 만기 1년6개월 짜리 160억원 규모 사모 무보증사채를 발행했다. 이달 17일엔 만기가 열흘에 불과한 400억원 규모 초단기 전자단기사채를 발행했다. 제이알글로벌리츠가 원리금 미상환 발생을 공시(27일)한 대상이 바로 해당 전자단기사채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원리금 미지급을 공시한 당일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이에 따라 제이알투자운용 경영진이 자금경색 수위 등을 사전에 어떻게 인지했는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 제이알투자운용 측은 "이 대표의 사임은 고령인데다경영진을 보강하여 회사의 지속가능한 조직 운영을 도모하자는 취지로 최근 상황과는 무관하게 진행된 것"이라며 "향후 리츠 정상화를 통해 주주와 채권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남은 부채 1.7조…외환시장 포지션에 한은도 촉각
제이알글로벌리츠의 기업회생 신청 직전 시가총액은 2333억원 수준이지만 잔존 차입부채는 1조7006억원으로 추산된다. 주식시장에서는 배당상품으로 거래됐지만 회생절차에 들어간 뒤에는 자산 매각과 채무조정 과정에서 주주가 손실을 부담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연말 기준 5% 이상 주주는 미래에셋자산운용 (지분율 8.51%)와 삼성자산운용 (5.05%)다. 두 운용사가 운용하는 ETF(상장지수펀드) 등에 제이알글로벌리츠 주식이 포함돼 있다는 의미다. 무보증사채·단기사채 등 시장성 차입부채와 금융기관 일반대출 거래정지로 동결된 주식 시가총액을 합산하면 약 7000억원이 시장이 잠재적으로 떠안은 손실 규모로 추정된다.
제이알글로벌리츠에서 회사 설립일인 2019년 10월 18일부터 단독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인물은 오남수 대표다. 제이알글로벌리츠 대표이사는 설립 시점(2019년10월18일)부터 오남수 전 금호그룹 전략경영본부장이 맡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오 대표가 전략경영본부장을 맡던 시기인 2006년 대우건설을 6조4255억원에 2008년 대한통운을 4조1040억원에 인수했다. 이후 2009년 12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구조조정)에 들어갔고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자율협약 대상이 됐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홈페이지 공지에서 "회생절차 개시신청으로 심려를 끼쳐드리게 됐다"고 했다. 이어 "운영자금 확보와 신용등급 하락 방지를 위한 재무 안정성 제고를 목적으로 2026년 초 보통주 신주 발행을 통해 1200억원을 조달하는 방안을 선제적으로 추진했다"며 "조달 자금은 자회사 제이알제26호리츠의 환헤지 계약 정산금 보충, 벨기에 파이낸스타워의 시설투자 재원 확보, 차입금 상환 등에 활용하고자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럽 현지 대주단 일부가 감정평가 과정에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해 자본조달에 장애를 유발하고, 납득할 수 없는 감정평가를 근거로 파이낸스타워가 현금유보 사유에 해당한다고 일방적으로 통지했다"고 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유럽 현지 대주단의 부당한 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영국 상업법원(Commercial Court of England)에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의 지도하에 채권단과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ARS(자율구조조정지원) 절차를 병행해 가능한 한 신속하고 질서 있는 정상화를 추진하고자 한다"고 했다.
아울러 지난달 30일 한국은행은 제이알글로벌리츠 환 헤지(위험회피) 포지션 등을 파악하기 위해 경영진과 면담하고 상황을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10년 전 당국의 제도개선에도…신평사 '뒷북평가' 제재 한계
제이알글로벌리츠의 기업회생을 계기로 국내 신용평가사들의 뒷북 평가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금융당국이 10년 전 제도개선에 나섰으나 신평사의 늑장 대응 문제는 반복되고 있어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신평사의 뒷북 평가에 대해 금융당국이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은 사실상 없다. 평가에 대한 독립성이 보장돼야 하는 신평사의 특성상 평가 시기와 평가 결과에 대해 간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신평사의 신용평가 방법론에 따라 평가했는지, 등급 산정 과정에서 불공정행위가 있었는지 등 법적 위반 사항에 대해서만 지적할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제때 신용등급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사회적 비판은 가능하지만 법적 위반 여부는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제이알글로벌리츠가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하기 하루 전까지도 신용등급을 투자적격 등급으로 유지해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회사가 주기적으로 자산가치 하락을 밝힌 점, 지난달 14일 벨기에 자산 담보대출 약정상 캐시트랩(현금유보) 사유 발생 가능성을 공시한 점, 올초 유상증자 철회로 투자자 민원이 빗발친 점 등을 보면 재무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홈플러스 사태에서도 신용평가사가 회사의 영업·현금상황을 고려하면 미리 신용등급을 낮췄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고 이에 금융감독원이 신용평가사 2곳에 대해 검사했다. 하지만 결국 경영유의사항 통보에 그쳤다. 경영유의사항은 행정지도의 성격으로 제재에 속하지 않는다.
금융당국은 동양사태 등을 시작으로 신평사가 기업에 대한 사전경보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2016년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기업의 독자적 채무상환능력을 평가하는 자체신용도 제도 도입과 함께 등급 담합·평가관련 재산상 이익 교환 등 불건전 영업행위에 대해 인가취소 제재까지 내릴 수 있도록 했다. 평가관련 내부심의절차, 내부통제 정책 등을 담은 투명성보고서 제출 의무화와 신용평가 비교·공시 확대 등도 마련했다.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고 신평사 감시 기능을 강화해 시장의 신뢰를 높이겠다는 목표였다.
다만 당시 거론됐던 제4 신평사 추진은 무산됐다. 국내 신용평가 업계의 3사 독과점 체제 역시 신평사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제4 신평사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금융당국은 오히려 과당 경쟁으로 등급장사가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법적 제재로 접근하기 보다는 시장의 사정기능이 작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제재 이슈로만 접근하면 답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과점체재로 시장 평가에 따라 도태되는 등 자정기능이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측면 등을 고려해 제4 신평가 등 다양한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장리츠 위험성 이미 경고…"시장 신뢰 우려"
제이알글로벌리츠의 기업회생이 논란인 가운데 이미 지난해 상장리츠의 위험성을 지적한 보고서가 발간된 것으로 확인됐다. 상장리츠의 주가 하락세가 투자자 신뢰 하락으로 이어져 상장리츠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해 7월 '상장리츠 시장의 현황과 개선과제'에서 상장리츠 주가가 상장 공모가를 밑도는 저조한 실적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기존 상장리츠의 규모 확대를 제한하고 신규상장을 어렵게 해 장기적으로 리츠시장 활성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20년 8월7일 상장 당시 제이알글로벌리츠 주가는 4825원(종가 기준)이었으나 거래정지가 결정된 지난 27일 1182원으로 4분의 1 토막이 났다. 미래에셋글로벌리츠도 2021년 12월3일 상장일 5230원이었으나 현재 2190원(30일 종가)으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디앤디플랫폼리츠도 상장일 5000원대에서 현재 3000원대로, 마스턴프리미어리츠는 6000원대에서 1000원대 등으로 하락한 상태다.
상장리츠는 일반투자자의 부동산 간접투자를 위해 한국거래소에 상장하는 리츠를 말한다. 자본시장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상장리츠 평균 주가는 2022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금리 상승에 따른 부동산 시장 침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금리가 낮으면 상장리츠의 핵심 매력 중 하나인 배상수익률 매력도가 커져 수요가 증가한다. 반대로 금리가 상승하는 경우에는 배당 수익률의 매력도가 낮아지고 리츠의 차입비용 증가로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2024년 말 기준 국내 상장리츠 평균 부채비율은 89%다.
상장리츠의 주가 하락세는 투자자 신뢰를 떨어트려 투자기반이 무너지고 결국 시장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장리츠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상장리츠의 특성을 반영한 투자보고서 양식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자산의 특성과 운용성과에 대한 적정한 사후 공시 제도도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필규 자본지상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리츠 자산관리회사는 투자자에게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소통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정보제공 확대와 함께 자산편입에 대한 정보, 배당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 등을 시장에 적극 공유해 시장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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