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Aview 로고

VIEW

마사회
마사회
왜소함의 미학…2249승 ‘경마 대통령’ 박태종 “‘타는 즐거움’은 계속”[이헌재의 인생홈런]

2026.05.03 12:23

‘경마 대통령’이라 불렸던 박태종 한국마사회 심판 자문위원(61)은 어릴 때부터 ‘타는 것’이라면 뭐든지 좋아했다. 그 시작은 콤바인이었다. 그는 1965년 충북 진천의 작은 시골에서 태어났다. 농사철이 되면 그도 논으로 나와 일을 돕곤 했는데 어른들의 허락을 받아 간간이 콤바인을 몰곤 했다. 박태종은 “작은아버지가 한번 운전을 해보라고 해서 콤바인을 처음 몰았는데 너무 재미있었던 기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고교 졸업 후 상경한 뒤 그는 서울 마포구 이모부의 야채가게에서 배달 일을 도왔다. 그의 꿈은 택시기사나 포클레인 기사가 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내비게이션이 보급되지 않았을 때다. 배달 일을 마치면 이모부의 배달용 차량을 몰고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택시를 몰 때를 대비해 지리를 익힌 것이다.

틈틈이 포크레인 학원도 다녔다. 서울 곳곳에선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역시 서울 4호선 사당역 인근에서 포크레인 조수로 일하기도 했다. 뭔가를 타면서 돈을 벌고 먹고 사는 그의 꿈이 서서히 현실이 되는 듯했다.
‘경마 대통령’으로 군림한 박태종 기수가 한국경마 최초 2000승을 달성했던 당시의 모습. 한국마사회 제공

하지만 여기서 인생을 바꾼 일이 벌어졌다. 포크레인 기사 시험을 보러 혼자 강원도 춘천까지 갔다. 그런데 감독관이 수험표를 살펴보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나이가 모자라 시험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접수비까지 다 냈는데 무슨 소리냐”고 묻자 “시험을 볼 순 없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실습이나 한번 하고 가라”고 했다. 박태종은 “너무 황당해서 할 말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낙심하진 않았다. 그는 “성격이 원래 단순한 편이라 있는 상황을 그대로 잘 받아들이는 편”이라고 했다.

운명은 그렇게 그를 ‘말의 세계’로 이끌었다. 때마침 이모부가 배달 차 한국마사회 마포 지점에 갔다가 경마 기수 후보생 모집 공고를 보고 왔다. 모집 공고에 써있는 조건은 키 163㎝ 이하였다.

박태종은 어릴 때 키가 작고 왜소했다. 특수 부대에 가고 싶었지만 체중 미달로 병역도 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키 147cm, 몸무게 46kg다. 박태종은 키가 작아야 우대받는 직업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기쁨이 교차했다.

준비 없이 치른 첫해 시험에서 낙방했다. 오기가 생겼다. 1년 더 준비해 기수 후보생 13기로 정식 기수가 됐다. ‘경마 대통령’의 시작이었다.

박태종 기수가 청담도끼를 타고 2000m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한국마사회 제공

처음부터 그가 승승장구했던 건 아니다. 30명의 동기 훈련생 중 27명이 기수로 데뷔했는데 동기들이 모두 1승, 2승씩을 거둘 때 그만 우승하지 못했다. 어떤 선배가 “말도 많이 타면서 어떻게 1등을 하지 못하냐”고 놀리기도 했다.

박태종이 할 수 있는 건 노력밖에 없었다. 말 모양 동상에 고무줄을 달고 연습했다. 그러다 1992년 가장 큰 대회 중 하나인 무궁화배에서 우승했다. 생애 첫 대상경주 우승이었다. 꾸준한 노력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때부터 박태종 천하가 시작됐다. 작년을 끝으로 말에서 내려올 때까지 1만6016번의 경주에 출전해 2249번 우승했다. 한국 근대 경마 104년 역사에서 누구도 넘보지 못할 기록이다. 2016년 2000승을 달성했을 땐 한국조폐공사에서 순금 기념 메달을 제작했다. 조폐공사가 금메달을 제작한 역대 스포츠 스타는 박찬호, 김연아, 손흥민, 페이커(이상혁) 정도다.

왜소한 체격은 축복이었다. 그는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었다. 모든 기수들은 경기일엔 극도의 감량 스트레스를 받는다. 체중이 가벼워야 말에게 전해지는 하중이 줄어들고, 좀 더 빠른 레이스를 펼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삼시세끼를 꼬박 챙겨 먹었다. 중간중간 간식까지 먹고 말을 탔다. 박태종은 “말을 잘 다루려면 기수가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내가 훨씬 유리했던 셈”이라며 웃었다.

박태종이 렛츠런파크 서울에 있는 황금상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동아일보 DB

그는 평생 술 담배를 하지 않았다. 술을 전혀 못 마시는 어머니를 닮아 선천적으로 술이 안 받는 체질이다. 기수들에게 술은 무척 위험하다. 건강은 차치하고 술자리에서 무심코 뱉은 말이 승부 조작 등으로 연결될 수 있다. 적지 않는 기수들이 불상사에 휘말려 옷을 벗었다. 그이 동기 중에도 여러 명이 술과 연관된 불상사로 경마판을 떠나야 했다. 그는 “아마 술을 마셨다면 정년까지 말을 타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수십 년간 ‘대통령’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가장 큰 이유는 철저한 자기관리였다. 새벽형 동물인 말은 오전 일찍 훈련 시켜야 한다. 박태종은 선수로 뛴 39년간 한 번도 새벽 조교에 늦은 적이 없다. 박태종은 “항상 9시 이전에 잠들었다. 그래서 9시 뉴스를 본 적이 없다. 세상 돌아가는 건 8시 뉴스를 통해 접했다”고 했다. 절제된 생활 속에 후배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운동도 꾸준히 했다. 몸에 나쁘다는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반대로 몸에 좋은 음식은 꼬박 챙겨 먹었다.

무릎이 좋지 않은 박태종은 꾸준한 근력운동으로 통증을 완화한다. 한국마사회 제공

39년간 탄 말에서 내려왔지만 아쉬움은 전혀 없다고 했다. 천하의 박태종도 부상은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번 낙마했고, 20여 차례 수술과 입원을 반복했다. 1999년에는 말발굽에 짓밟혀 척추를 크게 다치기도 했다. 박태종은 “은퇴 후 가장 좋은 건 부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역시 마음이 편한 게 최고”라고 했다.

한국마사회는 올해 초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가진 그를 심판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그는 요즘 기수복 대신 양복을 입고 출근한다. 처음엔 어색했던 양복도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 박태종은 “처음엔 걱정이 많았지만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잘 적응하고 있다”라며 “막상 선수를 할 때는 심판분들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지 몰랐다. 조교사, 마주들과 꾸준히 소통해 더욱 공정한 레이스가 되도록 힘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심판이 된 요즘도 그는 하루 한 시간 반~두 시간 운동은 여전히 거르지 않는다. 건강 관리 측면도 있지만 살기 위해 한다. 39년간 말을 탄 후 그의 양쪽 무릎은 정상이 아니다. 하중이 무릎에 쏠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왼쪽 무릎은 골절을 당했고, 오른쪽 무릎엔 인공 인대를 삽입한 상태다. 근력이 떨어지면 어김없이 통증이 찾아온다.

꾸준히 운동하는 그의 상체에는 여전히 식스팩이 뚜렷하다. 출근일에는 한두 시간 체력단련장에서 근력 운동을 한다.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동네 피트니스센터를 찾는다.

박태종은 올해부터 한국마사회 심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마사회 제공

평생을 바른 생활 사나이로 살아온 그에게 ‘타는 것’은 여전히 즐거움이다. 더이상 말을 타진 않지만 그는 시간만 나면 자전거 안장에 오른다. 집이 있는 경기 의왕에서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까지 라이딩을 한다. 어떤 날은 하루 9시간 동안 자전거를 탄 적도 있다. 몇 해 전까지는 오토바이도 탔지만 “너무 위험하다”는 주변의 만류에 이제 오토바이는 떠나보냈다.

자동차 운전도 좋아한다. 혼자서 트레일러 면허도 땄다. 언젠가 캠핑카를 몰고 세계 어딘가를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태종은 “지금도 스타리아를 개조한 캠핑카를 갖고 있다. 함께 고생한 아내와 함께 언젠가는 캠핑카로 유럽 횡단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태종이 말을 쓰다듬고 있다. 한국마사회 제공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

댓글 (0)

0 / 100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마사회의 다른 소식

예방 접종
예방 접종
10시간 전
[지선 D-30]정읍시장, '수성' 이학수…'설욕' 김민영 2파전
마사회
마사회
11시간 전
제주 '붉은 말의 해' 맞아 승마대회 10개 연다… 국산마·유소년 육성 속도
마사회
마사회
11시간 전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개막 첫날 30만명 찾아…서울시 "안전 최우선"
마사회
마사회
13시간 전
2026년 상반기 제주마 경매…최고가 5000만원 기록
마사회
마사회
13시간 전
한국마사회, 2025년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 '우수' 등급
마사회
마사회
13시간 전
한국마사회, 2025년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 ‘우수’ 등급
마사회
마사회
13시간 전
한국마사회 말박물관 특별전 ‘편자, 말의 신발에서 행운의 상징으로’ 개막
마사회
마사회
13시간 전
한국마사회 말박물관 특별전 '편자, 말의 신발에서 행운의 상징으로' 개막
재사용
재사용
1일 전
‘편자의 모든 것’ 말 박물관 기획전시…기동력 높인 말의 신발
서울숲 포켓몬
서울숲 포켓몬
2일 전
서울숲 넘어 성수·한강까지 "걷다 보니 정원"…'정원도시 서울' 열린다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