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말해야 한다” 미군 위안부의 생애 마지막 소송
2026.05.03 10:01
■ 미군 위안부의 '죽으면 끝나는 소송'
"이 사건은 피해자가 재판 도중 사망하면, 소송을 취하하기로 하고 시작했습니다."
미군 위안부 피해자 117명은 지난해 주한미군의 책임을 묻는 2차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대리인단 단장을 맡은 하주희 변호사는 이 사건을 '생애 마지막 순간에 하는 소송'이라고 말했다.
재판 도중 원고가 사망해도 소송을 계속할 방법은 있다. 후손들이 원고 자격을 이어받아 판결을 받고, 승소하면 손해배상금도 수령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모든 원고는 세상을 떠나면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하 변호사는 전했다.
"기지촌 사건은 (후손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어요."
이들은 주한미군 인근에 조성된 상업지구,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던 여성들이다. 정부는 주한미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기지촌 여성들을 '위안부'로 지칭하며 영어를 교육하고 성병 검진을 강제하는 등 조직적으로 관리했다. 대법원은 2022년 정부가 주도적으로 기지촌을 운영하며 성매매를 정당화하거나 조장했다며, 중대한 인권 침해라고 판결했다.
국가 폭력의 피해자로 뒤늦게 인정됐지만 오랜 시간 낙인과 편견 속에 숨죽이며 살아온 이들은 대부분 평범한 가정을 꾸리지 못했다. 가족을 만든 이들은 가족에게도 과거가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이 소송은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주한미군에 대한 소송은 민사특별법에 따라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해야 하고,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의 입장을 재판부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난해 9월 소송을 제기해 이달 말 첫 재판이 다가오고 있지만, 한국 정부와 주한미군 모두 법원에 아무런 입장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 2014년 시작한 미군 위안부의 1차 소송은 대법원 판결까지 8년이 걸렸다. 그사이 소송에 나선 피해자 122명 가운데 24명이 세상을 떠났다. 2차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들은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죽기 전에 말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살아생전 판결을 받지 못하더라도, 승소해서 손해배상금을 수령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이 소송의 의미는 소장에 적힌 청구 취지를 넘어선다. 하 변호사는 기지촌 여성의 소송은 "생존한 피해자들이 자신의 존재와 존엄성과 인생의 의미를 평가받기 위한 소송"이라고 말했다.
■ 일본식에서 미국식으로…위안부 성병 통제에 투영된 현대사
미군 주둔지에서 일어난 여성 인권 침해는 한국만의 역사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일본, (일본 반환 전의) 오키나와, 필리핀 등 동아시아의 미군 주둔지에서 성매매가 이뤄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행해진 미군 위안부에 대한 성병 통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관리했던 방식과 연속성이 있다.
1차 소송에 전문가 증인으로 참여했던 박정미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군 위안부에 대한 1950년대 성병 통제는 일제강점기 공창제와 운영 방식이 동일했다고 설명한다. 당시 성매매 여성은 정부에 허가를 신청하고 등록한 뒤 주기적으로 성병 검진을 받아야 했다. 실제로 당사자들은 검진증을 발급받아 1주일에 2번 성병 검진을 받았다고 증언한다. 검진을 받은 뒤에는 검진증에 확인 도장을 받아야 했고, 검진증을 소지하지 않거나 검사를 누락하면 단속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미군은 이런 방식의 성병 관리가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성매매를 합법화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여성을 등록시켜 정기 검진하는 방식으로 성병을 관리하는 제도가 없었다. 대신 미국 정부는 성병 감염자의 여성 접촉자를 찾아 검진과 격리 치료를 권유하는 '접촉자 추적' 방식으로 자국의 성병을 관리해 왔다. 미군은 1960년대 중반, 한국 정부에 이러한 '접촉자 추적' 방식과 격리 치료 시설의 설치를 제안한다.
한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1965년부터 전국에서 40여 개의 성병 관리소를 세웠다. 성병에 걸린 미군이 접촉자로 지목하면, 위안부는 의사의 진료 없이 성병 관리소로 끌려가 고농도의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7일간 강제 수용됐다. 미군은 1970년대에는 위안부에게 명찰을 부착시키고 위안부의 사진을 포함한 개인정보를 부대에서 직접 관리하기도 했다.
"기지촌 성병 통제 정책은 미군이 구상하고 한국 정부가 실행했습니다."
박 교수는 한미 양국의 정부 문서를 발굴해, 기지촌 성병 통제의 역사를 연구해 왔다. 당시 문건에 따르면 미군은 의료품과 검사 기구 등을 원조 형태로 지원했고, 한국의 지방정부는 성병 관리소를 직접 운영했다. 성병 검진을 명분으로 한국 경찰과 미군은 위안부를 합동 단속하기도 했다. 위안부의 검진증을 확인하는 불시 단속을 뜻하는 '토벌'과 미군이 여성을 감염자로 지목하는 '컨택(contact)'이 수시로 이뤄졌다. 그리고 성병을 이유로 기지촌 여성들을 불법 감금했다. 일제와 미국의 위안부 관리 방식이 뒤섞인 것이다. 미군 위안부에 대한 성병 통제에는 한국 현대사의 질곡이 반영되어 있다.
■ 지자체 지원 한계… "국가가 지원해야"
위안부라는 공식 표현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미군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유산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일제에 강제로 동원돼 전선에서 성적 학대를 받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미군 위안부 피해자는 권위주의 정부의 국가 폭력과 군사주의 성 착취의 피해자라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 하지만 현재 이들에 대한 국가 정책은 차이가 크다.
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 또는 연구가 이뤄진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미군 위안부 피해자는 그 규모조차 알 수 없다. 미군기지가 가장 많았던 경기도에서는 1968년 한 해 5만 4천여 명의 여성이 성병 관리소에 수용됐다는 정부 기록이 있다. 여성 한 명이 여러 차례 수용당한 점을 고려해서, 연구자들은 당시 경기도 미군 위안부를 1만 명 규모로 추정한다.
경기도는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유일하게 기지촌 여성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경기도는 이재명 대통령이 도지사였던 2020년 기지촌 여성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동두천 옛 성병 관리소를 보존하기 위해 매입도 검토했다. 하지만 상위법이 없어 조례는 시행되지 못했고, 미군 위안부의 1차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듬해인 2023년 4분기부터 월 10만 원의 생활안정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대상자 92명 가운데 실제 지급받는 사람은 24명에 불과하다. 피해자 상당수가 기초생활수급자인데, 지원금을 받으면 생계급여가 그만큼 삭감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경기도 지원금을 신청조차 하지 않는 이유다.
미군 위안부에 대한 연구와 기록 작업도 지자체의 역량을 넘어선다. 지난해 경기도는 기지촌 여성 인권 기록 아카이브 사업을 통해 4,200여 건의 기록물을 수집했다. 피해자를 포함해 기지촌 주민 30여 명의 구술을 채록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당초 계획은 1,000여 건을 디지털로 전환해 일반에게 공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올해 예산이 삭감되면서 사업은 전면 중단됐다. 경기도메모리(memory.library.kr)에 실제 공개된 기지촌 여성 자료는 10여 건에 불과하다.
아카이브를 담당했던 임혜경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단년도 사업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8개월간 수집한 기지촌 여성 관련 자료를 해제하기 위해서는 3년 정도가 더 필요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자료의 의미와 역사적 맥락을 분석하고, 이를 연구자와 일반인이 볼 수 있도록 정리하려면 전문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다. 임 연구위원은 국가 폭력 피해자에 대한 명예 회복과 인식 개선을 위한 연구와 사업 등을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중장기 사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록이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그 기록들이 파편화됐더라도 연구자에게 권한을 주면 다 수집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그걸 못하고 있어요."
기지촌 여성 지원 단체들은 10여 년 전부터 국회부터 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법 제정을 요구해 왔다. 미군 위안부에 대한 진상을 국가 차원에서 조사하고, 피해자를 지원하자는 취지다.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공동대표인 안김정애 박사는 "아직 미군 위안부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이 파악되지 못한 상태인데, 1차 소송 과정에서 정부는 해당 자료가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지원법을 제정해 정부가 관련 문서를 제출하도록 법적 의무를 부여하고 연구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군 측에도 분류가 안 된 관련 문서가 상당하다며, 정부 차원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80대 미군 위안부 피해자가 증언하는 이유
2차 소송에는 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세상에 처음 밝히고, 기지촌 여성과 혼혈 아동의 인권 운동을 펼쳐온 83살의 당사자도 참여했다. 판결이 나오기 전에 세상을 떠나게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자신의 증언이 비슷한 처지의 세계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미군에 책임을 묻는 소송에 참여했다.
"한마디라도 증언을 할 수 있으면, 강대한 나라에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은가"
이어 "2000년 유엔 안보리 1325호"를 언급했다. 1325호는 2000년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여성, 평화와 안보를 위한 결의'로, 분쟁지역 성폭력 근절과 분쟁 해결 과정에서 여성 참여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그녀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지속되는 갈등과 분쟁 속에서 벌어지는 여성과 아동에 대한 폭력이 세상에 드러나서, 이런 인권 침해가 후손에게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미군 위안부에게 지워진 낙인과 차별을 지우려는 여성들의 연대 활동에서 희망을 본다며, "이제 승소를 못 하더라도 희망을 갖고 눈을 감을 수가 있겠다"라고 미소를 지었다.
더 보다 <미군 위안부의 마지막 바람>
KBS 1TV, 5월 3일 밤 10시 20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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