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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누 문화의 계승자 중에 조선인이 있다’

2026.05.03 11:14

『조선인과 아이누 민족의 역사적 유대』 저자 석순희
석순희(石純姫) 도쿄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5세. 홋카이도에서는 3살부터 18살 때까지 살았고, 그리고 홋카이도 도마코마이의 고마자와대학에서 18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구마모토현 거주. 저서로 『조선인과 아이누 민족의 역사적 유대』, 공저로 『홋카이도를 여는 평화학』 외. (인터뷰이 제공 사진)    


작년 출간된 『홋카이도를 여는 평화학』이라는 책을 읽다가, 석순희(石純姫) 씨가 집필한 챕터에 눈길이 머물렀다.
 
태평양전쟁 시기(1941~1945년. 일제는 전쟁 물자 및 노동력 확보를 위해 ‘국가총동원법’을 시행, 탄광‧토목‧건설 현장에 대대적으로 조선인을 강제동원함) 홋카이도에서 탄광 노동 등을 강요당했던 조선인 남성이 혹독한 노동을 견디다 못해 도망을 치자, 아이누(홋카이도 선주민) 사람들이 집에 숨겨주었다. 그가 돌아갈 곳이 없다고 하자, 아이누 공동체 안에서 세대를 이루어 정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조선인도, 아이누(홋카이도 선주민)도 일본의 식민지배에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던 존재였는데, 홋카이도에서는 그들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일제로부터 착취당한 조선인과 아이누 민족의 연결
 
석순희 씨는 홋카이도 도마코마이(苫小牧)의 고마자와대학 내 ‘환태평양‧아이누문화연구소’에서 공동연구를 하던 때, 동료 교수로부터 “아이누 문화의 계승자 중 조선인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후에 인터뷰를 통해 강제노동으로부터 도망친 조선인을 아이누 사람이 숨겨준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도 홋카이도의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셨지만, (아버지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은 없었어요.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잘 알려진 사실이라, 오히려 금기였던 것 같습니다. 2005년경부터 아이누와 조선 양쪽의 혈통을 가진 사람들을 소개받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현재의 재일조선인의 선조가 일본으로 이주해온 경로는 ‘강제동원에 의한 것’이라는 연구가 많았지만, 홋카이도에는 그보다 더 앞선 에도시대(1603~1868년)부터 이주가 진행되고 있었다. 조선에서 조세에 불만을 가진 농민과 농촌의 만성적 피폐로 인해 민중의 봉기가 일어나, (조선 농민들의) 러시아 연해주로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그곳에서 다시 홋카이도로 이주한 것.
 
석 씨는 조선인의 홋카이도 이주와 관련된 자료를 도립문서관 등에서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대부분은 입으로 전해진 것들이었다.
 
“2006년에 비라토리초(平取町) 후레나이(振内) 마을의 향토사 집필을 의뢰받았을 때의 일이에요. 의뢰받는 내용에 맞춰 전쟁 중 탄광 등에서 가혹한 노동에 희생되어 시신이 화장·매장되었다는 사실을 적었는데, 마을의 향토사 편찬 담당자가 ‘유골을 둘러싼 국제 문제가 생기면 골치 아프니 적지 말아달라’ 하더군요. ‘골치 아프다’라니, 어쩌면 그렇게 가볍고 냉정하게 말을 할 수 있는지. 결국 조선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사실만 간신히 게재되었습니다.”
 
2018년 펴낸 책 『조선인과 아이누 민족의 역사적 유대』에 자세한 내용이 실려 있다.
 
“연구자로서 그렇게 공식화되지 않았던 사실을 이야기해주신 내용을 책에 적어 제 업적으로 삼아도 될지, 갈등했습니다. 하지만, 식민지 지배에 의한 국가적 폭력은 역사의 기록으로서 후세에 남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화해’를 말하기 이전에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부터…

석순희 씨의 단행본 『조선인과 아이누 민족의 역사적 유대 - 제국의 선주민·식민지 지배의 중층성(重層性)』 한국어판. (이상복 역, 어문학사, 2019)    


천황제가 전쟁과 식민지주의를 정당화하는 자들을 살아남게 해
 
조선인 혈통인 데다가 여성이라는 이중의 차별과 억압에 의해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며 어려움을 느끼던 석 씨였지만, 가혹한 시대에 양심을 잃지 않고 행동한 아이누 사람들과 강제노동으로부터 생존한 조선인을 생각하면 자신도 더욱 힘을 내야 한다는 마음이 들끓었다.
 
“국가와 민족을 넘어 기억과 역사를 공유하지 않는 한, 미래는 없습니다. 지금 만연하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배외주의는 미래를 짓이길 겁니다.”라고 말하는 석순희 씨.
 
석 씨는 또한 아이누를 테마로 한 국립시설 ‘우포포이’가 아이누에 대한 차별과 유골 도굴 등의 범죄를 은폐하고 있다고 잘라 말한다.
 
“일본은 ‘화해’라고 말하지만, 그에 앞선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가 없습니다. 그 배경에 있는 것은 천황제이고요. 전후에도 천황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일본의 전쟁과 식민지주의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을 살아남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와 민족을 넘어, 기억과 역사를 공유하자
 
석순희 씨는 도쿄의 대학에서 10년 정도 학생들을 가르친 후, 홋카이도 도마코마이의 대학에서 2019년에 퇴임할 때까지 동아시아 근대사회사를 연구했다.
 
그리고 퇴임 후, “온화한 땅에서 살고 싶어서 2022년에 파트너와 함께 구마모토현 아마쿠사(天草)로 왔습니다. 낡은 집을 개조해 밭에서 채소랑 쪽풀도 기르고 있고요.”라며 현재의 일상을 말한다.
 
“아마쿠사에는 고대부터 조선과의 교역항이 있고, 9세기에는 신라에서 사절단이 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공동체에서 행하는 작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벌금이 부과되는 조선의 농촌 공동체의 규율이 지금의 아마쿠사에 남아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앞으로는 조선과 아마쿠사의 연결을 천천히 조사해나가고 싶어요.”
 
석 씨는 집 문 앞에 일본군 ‘위안부’ 여성을 직접 형상화한 평화의 소녀상을 두고, ‘기억과 평화의 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작년 12월에는 역사와 젠더, 환경을 배우는 장인 ‘아마쿠사 자유학교’ 운영을 시작했다. “시민운동 안에서도 중요한 것은, 역사를 아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금 일본 전역에서 군사기지 강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구마모토에도 자위대 주둔지에 미사일이 배치되고 탄약고가 만들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석순희 씨는 여기에서도 누락된 관점을 일본 사회에 환기시킨다. “군사 확대에 반대하는 (일본)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자위대의 젊은이들이 전장으로 가게 된다’고 말하지만, 아시아 사람들은 ‘또 일본이 쳐들어온다’는 관점으로 생각할 겁니다.” [번역-고주영]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기사를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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