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 사라진 시대…'성과급'을 바라보는 청년의 다른 시선 [이동수의 세대 진단]
2026.05.03 08:00
기성세대는 회사와 운명공동체, MZ 세대는 철저한 계약 관계
성장보다 보상, 미래보다 현재…달라진 직장 인식이 낳은 단면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꼽으라면 단연 '성과급'이다. 실적 발표 시즌을 맞아 반도체 기업들이 역대급 호실적을 내놓으면서다.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55% 증가한 57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이익도 37조6100억원에 달한다. AI가 추론 단계로 접어들면서 메모리 수요가 폭증했고, 메모리 업체의 이익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기세는 당분간 계속될 걸로 보인다. 불과 2년 전 "반도체의 겨울이 온다"던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도 최근 삼성전자의 2026년 영업이익 추정치를 기존 299조원에서 428조원으로, SK하이닉스는 222조원에서 277조원으로 대폭 상향했다.
회사가 큰돈을 버니 일하는 이들의 가슴도 설레지 않을 수 없다. 이미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전체 임직원에게 평균 '억대' 성과급을 지급한 바 있다. 이익 추정치에 따라 올해는 평균 7억원, 내년에는 13억원이 성과급으로 지급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SK하이닉스 직원들의 성과급 잔치를 바라보는 '옆 동네' 사람들은 심란하다. 삼성전자 노조는 성과급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 15% 배분을 요구하며 5월21일부터 6월7일까지 17일간 총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여기저기서 "우리도 성과급을 올려달라"는 노조의 요구가 빗발친다. 이를 바라보는 세간의 눈총은 따갑다.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잠재적인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청년층 여론은 좀 다른 듯한 분위기가 읽힌다. 그들은 성과급을 수억원씩 받는 게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는 측면이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한편으론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른 합당한 보상인데 그걸 문제 삼는 게 옳은 것이냐는 의견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오히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된 "성과급을 사회 환원에도 써야 한다"는 주장에는 사뭇 비판적이다. 기업 성과에 "숟가락 얹지 말라"는 것이다.
'투명하고 공정한 기준' 요구한 4년 차 직원
사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성과급 논쟁의 씨앗을 뿌린 사람도 한 청년이었다. 2021년 SK하이닉스 노사는 2020년 몫의 초과이익분배금(PS)을 지급하는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 그때까지 SK하이닉스는 경제적 부가가치(EVA) 산출 방식을 통해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해 왔다. 그런데 2021년 직원들의 성과급이 경쟁사인 삼성전자에 크게 못 미친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이에 한 입사 4년 차 직원이 경영진을 포함한 모든 구성원에게 공개적인 항의 이메일을 보냈다. 해당 이메일에는 EVA 산출 방식의 개선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원들을 달래기 위해 "연봉을 반납하고 소통하겠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SK하이닉스는 EVA 산출 방식을 폐기하고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데 합의했다. 지난해엔 '기본급 1000%'였던 상한도 없앴다.
흔히 반도체는 사이클 산업이라고 말한다. PC·휴대전화·자동차 수요에 따라 몇 년의 호황과 몇 년의 불황이 반복된 탓이다. SK하이닉스도 2023년 7조원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지 못했다. 인재를 붙잡아두려면 못 줄 때 못 주더라도, 줄 수 있을 때는 파격적으로 주는 게 필요하다. 영업이익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겠다는 결정은 그런 이유에서 내려졌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AI 데이터센터라는 막대한 수요가 발생했다. 예측할 수 없었던 이 변화가 성과급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투명하고 공정한 보상 체계는 젊은 직장인들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다. 정보가 개방된 시대에 태어난 이들에게는 보상의 크기보다 과정이 투명한지, 그리고 그 결과를 납득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같은 맥락에서 청년들은 정(情)보다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조직을 선호한다. 시스템 작동 원리가 부조리하다고 생각되면 그룹 회장에게도 할 말은 한다. 2021년 SK하이닉스의 성과급 합의 이후 여러 기업에서 대표를 향한 '상소문'이 쏟아진 게 그 증거다.
최근의 성과급 논쟁에서 청년 세대가 기성세대보다 성과급 인상에 상대적으로 긍정적 태도를 보이는 건, 회사라는 조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에게 기업의 성장은 곧 자신의 성장이었다. '무슨 무슨(기업명) 맨'으로 불린 이들은 밤낮없이 일했고 주말 근무도 마다하지 않았다. 단합을 위한 회식도 예사였다. 회사는 그런 직원들에게 반대급부로 고용을 보장해 주었다. 회사에 성실히 다니기만 하면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그래서 회사의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개인의 권리를 양보했다.
청년은 기성세대만큼 애사심 가지지 않아
청년 세대는 기성세대만큼 회사에 애사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들에게 회사란 자신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니라 노동과 임금을 교환하는 거래 관계일 뿐이다. 회사가 제공하는 보상의 가치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어지간한 직장에 다니면서 서울에 집을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 결혼 문턱도 높아졌다. 더욱이 경제위기와 저성장이 반복되면서 '어차피 위기가 닥치면 회사는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보편화했다. 과거 신입사원도 희망퇴직 대상에 올려 논란을 빚은 두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직장에 오래 몸담겠다는 생각이 없으니 장사 잘될 때 성과급 많이 달라고 요구하고, 회사 대표에게도 할 말은 하는 것이다.
2030 세대에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거의 사라지는 추세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2022년 10월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Z세대에서 '여러 직장을 경험하고 싶다'는 비율(52.9%)은 다른 세대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들에게는 어떤 회사에 다니느냐보다 어떤 업무를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신입사원 공채가 점점 사라지고 현장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 위주로 채용 문화가 재편되고 있는 현실도 여기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소속감의 상실은 즉각적인 보상에 대한 욕구를 더욱 키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만큼 평균 억대 성과급을 지급할 수 있는 회사는 거의 없다. 하지만 반도체 기업의 성과급이 연일 화제가 되면서 다른 기업도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자신의 역량과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하라는 젊은 직장인들의 요구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식으로는 더 이상 인재를 확보할 수 없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지 않다. 젊은 세대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사람이 귀한 시대가 되고 있다. 성과급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으면 핵심 인재는 언제든 다른 회사로 둥지를 옮길 것이다. 기업으로선 골치 아픈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자동차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