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오리'에서 수출 효자로…한국GM 창원의 반전
2026.05.03 08:00
"시간당 60대의 차체를 찍어내는 공장입니다."
한국GM(제너럴모터스) 창원공장에서 만난 생산라인 관계자는 이처럼 말하며 "고장만 없으면 최대 66.7대까지도 찍어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1시간이 60분인 만큼 시간당 60대의 생산 속도면 1분에 1대꼴로 차를 찍어내는 초스피드다. 지난 4월 28일, 'GM' 두 글자가 새겨진 안전모를 눌러쓰고 '단결투쟁'이란 금속노조 깃발이 휘날리는 차체공장으로 들어가자 600여대에 달하는 로봇팔들이 쉴 새 없이 차체를 용접하고 있었다. 차량 1대당 용접하는 포인트는 무려 3650점. 이를 인간의 도움 없이 로봇팔로만 용접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경이적이었다.
소형차부터 대형차까지 찍어내는 5250톤급의 프레스가 돌아가는 차체공장에서는 '빈 피킹(Bin Picking) 머신'으로 불리는 최첨단 로봇도 눈길을 끌었다. 로봇팔은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 담긴 각종 모양의 부품들을 3D스캐너로 인식한 뒤 스스로 분류해 제자리에 끼워 넣었다. 이내 부품 상자가 텅 비자 로봇팔은 플라스틱 바구니를 한쪽으로 치우는 등 뒷정리까지 완벽하게 수행했다. 전 세계 GM 공장 가운데 풀가동에 가까운 최고 수준 가동률(95%)을 자랑하는 공장답게 차체공장과 이어진 조립공장에서도 컨베이어벨트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각종 부품을 끼우는 조립 단계별로 작업자들의 키 높이에 맞게 실려 오는 차체의 높낮이가 자동 조절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작업자들은 예전처럼 허리와 어깨에 골병이 드는 무리한 자세를 억지로 취할 필요가 없었다. 한국GM의 관계자는 "작업자들의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설비"라고 말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로봇팔과 한편에서 휴식을 취하는 작업자들은 묘한 대조를 이뤘다.
글로벌 소형 SUV 거점으로
고(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애환이 서린 한국GM 창원공장이 '미운 오리'에서 '백조'로 탈바꿈하고 있다. 연산 28만대의 생산능력을 자랑하는 한국GM 창원공장은 인천 부평공장, 충남 보령공장(변속기 공장)과 함께 미국 최대 자동차회사 GM의 한국 내 핵심 생산거점 중 하나다. 특히 한국GM 창원공장에서 전량 생산하는 소형 SUV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국내 완성차 수출 1위 품목이란 3년 연속 대기록을 써내려가는 중이다. 창원공장에서 생산한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인천 부평공장에서 만든 '트레일블레이저' 등 한국GM이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소형 SUV들의 미국 내 동종 시장점유율은 무려 43%에 달한다. 한국GM의 한 관계자는 "트랙스는 기획, 디자인, 성능까지 전 과정이 한국에서 이뤄진 자동차"라며 "소형 SUV를 구매하는 미국인 2명 중 1명이 한국에서 만들어진 차를 타는 셈"이라고 했다.
특히 한국GM 창원공장은 한때 '세계경영'을 주창했던 김우중 회장이 과거 '대우국민차' 공장으로 낙점한 곳이라 더욱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다. 김우중 회장은 1980년대 말 당시 합작사였던 GM 측과 '월드카' 개발과 판매를 두고 손발이 맞지 않자 GM이 지분을 가진 대우자동차와 별개로 옛 대우조선(현 한화오션) 산하에 경차(輕車)사업본부를 별도로 만들었다. 김우중 회장은 훗날 자신의 회고록 '김우중과의 대화'에서 "내가 화가 나서 티코를 대우조선에서 만들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당시 결단으로 1991년 준공된 창원공장에서 출시한 국내 최초 경승용차인 '티코'를 비롯해 다마스(소형 승합), 라보(소형 트럭) 등은 '마이카' 시대를 맞아 선풍적 인기를 구가했다. 이후 대우차가 1992년 GM과 지분 관계를 정리하면서 대우조선 산하 대우국민차는 대우자동차에 흡수합병됐다. 하지만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의 여파에 삼성자동차(현 르노코리아)와의 '빅딜'마저 무산되며 1999년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된 이후에도 당시 결단 덕분에 창원에 완성차 공장 하나는 살아남은 것이다.
이후 2002년 GM에 피인수된 대우국민차 공장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총 9000억원의 신규 투자를 수혈받아 GM의 글로벌 소형 SUV 생산거점으로 탈바꿈했다. 이날 한국GM 창원공장을 찾은 창원시의 한 관계자는 "창원공장에서 생산하는 트랙스가 지난해 30만대 이상 판매되면서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축이 됐다"고 평가했다. 한국GM의 한 관계자는 "한국GM의 협력사만 1600곳으로, 그중 경남지역 협력사로부터의 구매 비중이 25%에 달한다"며 "창원이 GM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전략기지"라고 말했다.
기사회생한 수출 전초기지, 마산 가포신항
하지만 '미운 오리'에서 '백조'로 탈바꿈한 한국GM 창원공장 역시 수년 전까지만 해도 '철수설' '폐쇄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박정희 정부 때 '기계공업 수도'로 조성된 창원 지역 주민들 역시 한동안 마음을 졸여야 했다. 실제로 미국 GM 본사는 한국GM의 판매 부진에 따른 손실이 누적되자 2018년 전북 군산공장을 폐쇄하는 초강수를 단행했다. 한국GM 군산공장 역시 과거 대우차 시절 김우중 회장이 만든 완성차 생산기지다. 자연히 군산공장 다음 차례는 창원공장이 될 것이란 위기감이 지역사회에 팽배했다.
인천 부평공장만 해도 한국GM의 뿌리가 있는 곳이고, 바로 옆에 인천 청라 주행시험장도 끼고 있었다. 또 수도권에 위치해 있어 지켜보는 눈도 많았다. 하지만 태생 자체가 '탈(脫)GM'을 위해 태어난 창원공장은 사정이 달랐다. 더욱이 창원공장 부지는 인근 진해(창원시 진해구), 김해, 부산 등지로 향하는 교통 요지에 있어 언제든 공장을 밀고 아파트를 지어 올릴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월 28일 미국·이란 전쟁 발발과 함께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500원을 넘나들 정도로 급등한 이후부터 3500명의 임직원들이 종사하는 한국GM 창원공장은 더욱 바삐 돌아가는 중이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국내에 공장을 둔 수출기업으로서는 단기적인 호재다.
실제로 한국GM 창원공장을 찾은 다음 날인 4월 29일, 자동차를 타고 20분 정도 달려 도착한 마산 가포신항(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야적장에는 쉐보레 마크를 부착한 '트랙스 크로스오버' 차량들이 마산만(灣)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마창대교를 배경으로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야적장에는 최대 1만2000대가량의 차량을 세울 수 있는데, 이날도 거의 입추의 여지 없이 수출용 차량들이 가득 차 있었다. 수출 차량들은 아파트 10층 높이에 최대 4700대의 차를 적재할 수 있다는 현대글로비스 캡틴호를 향해 줄줄이 올라갔다.
한국GM의 수출용 물량을 처리하면서 2015년 개장한 신생 항만인 마산 가포신항도 기사회생했다. 당초 파리만 날리던 부두에 있던 컨테이너용 크레인을 떼어내고, 자동차 전용 항만으로 개조해 한국GM의 물량을 받아낸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조흥제 마산 가포신항 운영본부장은 "지난해 가포신항에서 처리한 차량이 48만대가량인데, 이 중 25만대가 한국GM 차량"이라고 했다. 한국GM의 한 관계자는 "마산 가포신항에서 출항한 배는 미국 포틀랜드항 등 미주 서안까지는 대략 15일, 동안까지는 30일가량이 소요된다"며 "야적장에 있다가 2~3일이면 배에 실려 전 세계로 팔려 나간다"고 소개했다.
8800억 신규 투자로 철수설 불식
GM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것이란 우려 역시 한국GM이 최근 11년 만에 주주배당을 실시하면서 상당 부분 불식된 상태다. 한국GM은 지난 4월 3일 이사회를 열고 주주들에게 최대 4조원가량의 중간배당금을 지급하기로 결의했다. 그간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등의 노력 끝에 돈을 많이 벌었으니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나눠주기로 한 것. 한국산업은행은 2018년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한국GM이 전북 군산공장을 폐쇄하자, 한국 내 생산시설을 약 10년간 유지하는 조건으로 약 7억5000만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8100억원)의 공적자금을 수혈한 바 있다.
또 한국GM은 지난해 12월 한국사업장에 3억달러 투자 계획을 밝힌 데 이어, 지난 3월에도 3억달러 추가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로써 한국GM에 생산설비 현대화 등을 위해 투자하는 금액은 무려 6억달러(약 8800억원)에 달한다.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사장 겸 CEO(최고경영자)는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한국사업장 운영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상징적 결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GM은 여세를 몰아 오는 하반기 프리미엄 브랜드인 '뷰익'도 한국에 첫 도입할 예정이다. 다(多)브랜드 전략을 구사해온 GM은 그간 국내에서는 '쉐보레' '캐딜락' 'GMC' 등 3개 브랜드를 전개해 왔는데, 여기에 '뷰익'을 추가하는 것. 127년 역사의 브랜드 '뷰익'이 한국에 도입되면 한국GM이 국내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 역시 한층 더 공고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GM 관계자는 "GM의 4개 브랜드가 모두 도입되는 곳은 한국이 전 세계에서 네 번째"라며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미국발 자동차 관세가 널뛰기하는 등 불확실성이 남아 있어 마음을 놓기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일방적인 상호관세 부과와 함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사실상 사문화되면서 미국으로 향하는 수출차에 붙는 관세는 0%에서 25%로 급격히 인상됐다가 현재 15%가 부과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많이 남은 터라 언제 또 자동차 관세가 요동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GM이 산업은행으로부터 공적자금을 수혈받는 조건으로 국내 생산시설을 유지하기로 한 '2028년' 전까지는 완전히 마음을 놓기는 이른 셈이다. 한국GM의 한 관계자는 "돈 되는 차를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미국 시장의 전기차 전환이 생각처럼 빠르지 않은 만큼, 내연기관차 가운데 제일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소형 SUV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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