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나는 시스템 공범”…절박할수록 고금리 부담 구조 비판
2026.05.02 11:05
신용등급 ‘과거’만 보는 불완전한 과학…미래 변수 반영 부족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규제 강화에 금융 접근성 양극화
"왜 가장 여유 있는 사람은 가장 낮은 금리를 누리고 가장 절박한 사람은 가장 비싼 돈을 내야 하는가"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이 같은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기존 금융 시스템에 대한 구조적 성찰을 내놓고 스스로를 해당 시스템의 '공범'으로 규정했다.
김 실장은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 금융은 왜 이토록 잔인한가. 신용등급이라는 불완전한 과학'이라는 제목의 장문을 올리며 금융 체계 전반의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번 글은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금융의 역설'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 등에서 최저 신용자 대출 금리가 15%를 상회하는 구조를 지적하며 "한국 금융은 왜 이렇게 잔인하냐"고 비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정통 금융 관료 출신인 김 실장은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처음에는 헛웃음이 났다. 신용의 기본을 모르시는 질문이라 생각했다"며 "상환 능력이 입증된 사람에게 낮은 금리를 부여하는 것이 금융의 기본 원리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반복된 문제 제기 속에서 기존 시스템이 과연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형성됐다고 밝혔다. 그는 결국 "이 시스템이 왜 존재하는지 그 근본부터 다시 의심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 '불완전한 과학'이 만든 계급장…"과거만 보는 등급의 비극"
김 실장은 현재의 신용등급 시스템을 "복잡한 생애를 숫자로 압착한 결과물"이자 "금융이 설계한 보이지 않는 계급장"이라고 정의했다. 개인의 소득과 부채, 금융 이력 등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평가가 이뤄지는 구조라는 점에서 일정한 합리성은 존재하지만 미래 변수는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신용 평가가 위험을 가격에 반영하는 기능 자체는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핵심 문제는 위험을 분류하는 방식의 공정성과 정교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위험 수준과 무관하게 특정 집단이 일괄적으로 고위험군으로 분류될 경우 구조적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더 위험한 개인이라서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그를 위험 집단으로 묶어버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 시스템이 평균적 통계와 과거 데이터에 의존하는 과정에서 개별 상황이 배제되는 구조적 한계도 함께 언급했다.
■ 정교한 모델 맹신한 금융의 오만이 위기 초래
김 실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사례로 들며 시스템의 오만을 경고했다. 리스크를 세분화하고 결합하면 안전성이 강화될 것이라는 기존 금융 논리가 현실에서는 대규모 위기를 초래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역설적으로 모델이 정교해질수록 시스템은 더 위태로워진다"며 "숫자를 맹신하게 된 금융은 더 과감하게 돈을 빌려주고, 더 높은 레버리지를 쌓아 올려 결과적으로 거품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이어 금융위기 이후에도 금융권은 성찰과 혁신보다는 더 높은 문턱과 촘촘한 점수라는 '폐쇄적인 성'을 쌓았다고 비판했다.
김 실장은 "구조의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 치환하는 교묘한 방향 전환이 일어났다"며 "문제를 만든 곳과 통제받는 곳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성 안의 사람들은 더 공고하게 보호받지만 변방의 사람들은 시스템 안으로 들어올 통로를 찾지 못한 채 겉돌고 있다"며 금융 구조의 양극화 문제를 강조했다.
한편 김 실장은 앞으로 세 편에 걸쳐 '금융의 구조' 시리즈를 연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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