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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반도체 대부’가 제시한 AI 반도체 혁신론…‘메모리 쇼티지’도 넘는다 [그 회사 어때?]

2026.05.02 07:01

주성엔지니어링
황철주 회장 인터뷰
“AI 반도체, ‘고층 빌딩’ 형태 띨 것”
“주성 ‘ALG’ 기술로 반도체 난제 해결 가능”
“시가총액 200조원 충분히 달성 가능 목표”
“모방경제 벗어나 혁신경제 들어서야 선진국 가능”


<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주성엔지니어링 용인 R&D센터 전경. [주성엔지니어링 제공]


[헤럴드경제(용인)=박지영 기자] “진짜 목숨 걸어야 하는 건 남들이 생각하지도, 시도하지도 않는 1%의 혁신입니다. 그게 주성엔지니어링의 영원한 방향성이기도 합니다”

‘1세대 벤처기업인’ 황철주 회장은 1993년 ‘대한민국 기술 독립’이라는 꿈을 품고 주성엔지니어링을 창업했다. 반도체 제조 장비에 들어가는 나사 하나조차도 만들지 못하던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고 황 회장은 국산 기술에 대한 열망 하나를 가지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 후 30년, 주성엔지니어링은 반도체·디스플레이·태양전지 전공정 장비업체로서 반도체 핵심 전공정 장비 국산화에 성공한 것은 물론 원자층 증착(ALD) 장비 등을 주력으로 대한민국 장비의 세계화를 실현하고 있다.

황철주 회장의 철학은 호칭에서도 드러난다. 주성엔지니어링 임직원들은 대리, 과장, 부장처럼 일반적인 직급 대신 플레이어(Player)의 줄임말인 ‘PL’을 쓴다. 개개인이 ‘기술 국가대표’라는 뜻에서다.

회사 곳곳에는 ‘혁신, 1등, 성공은 먼저 더 잘한 결과’, ‘기술=지식+오감, 혁신=기술+영감’, ‘주성은 행복을 만드는 곳이고 가정은 행복을 즐기는 곳’ 등 황 회장의 철학을 담은 어록이 쓰여있다. 혁신에 고객의 신뢰를 더해 지속가능한 ‘행복’을 만드는 기업, 주성의 목적이다.

로직·메모리는 한 공간에 있어야
‘3D 패키징’으로 AI 반도체는 ‘고층빌딩’ 형태 띨 것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주성엔지니어링 제공]




주성엔지니어링의 대표 기술은 1997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원자층 증착 양산장비(ALD)다. 증착이란 반도체 표면에 얇은 막(박막)을 형성하는 과정을 뜻한다. 반도체 패턴이 나노미터(㎚·10억분의 1m) 단위로 미세해지면서 ALD는 반도체 전공정의 핵심 기술이 됐다. 황 회장은 SK하이닉스의 동반성장협의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황 회장은 “AI의 성장 과정을 보면 사람의 성장과정과 비슷하다. 언어를 배우고, 논리를 배우고, 추론을 해나가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메모리 반도체는 이른바 ‘도서관’ 역할을 한다. 지금보다 최소 100배 이상 수요가 뛰는 등 반도체는 예측하지 못할 만큼 더 좋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연산을 담당하는 로직 반도체와 기억 장치인 메모리 사이의 거리가 ‘병목’을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AI칩은 대부분 로직 반도체와 메모리를 나란히 수평으로 놓는 2.5D 패키징을 사용하고 있다.

황 회장은 “트랜지스터는 1나노(㎚) 수준까지 줄었지만, 데이터를 1㎝ 가량 떨어진 메모리에서 가져오는 게 문제”라며 “(이 문제를 비유하자면) 데이터가 인천에서 샌프란시스코를 수백번 오가는 것과 같고, 데이터 병목과 전력을 엄청나게 소비하는 문제를 낳는다”고 짚었다.

집적회로 구조. [SK하이닉스 캡처]


이런 상황에서 로직 반도체만 1나노로 줄이거나, 메모리 성능을 높이는 건 개선에 그칠 뿐이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다고 분석했다. 황 회장이 내놓은 답은 ‘수직 적층(3D 패키징)’이다. 메모리 위에 로직 반도체를, 로직 반도체 위에 메모리를 쌓는 것. 사람의 뇌처럼 한 공간에서 같은 속도로 작동하는, 하나의 ‘고층 빌딩’과 같은 모습을 띨 것이라는 설명이다.

황 회장은 “1947년 트랜지스터가 발명된 이후 반도체 구조는 정해진 면적에 단독주택(회로)을 많이 짓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지만, 데이터가 수평으로 이동해 전력을 많이 소모하고 발열 문제가 있다”며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빠르게 이동하듯 칩을 고층 아파트처럼 만들면 속도, 발열, 전성비(소비전력 대비 성능) 세 가지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AI 시대 병목…주성 ‘ALG’ 기술로 해결 가능
“실리콘 필요 없는 반도체 생산으로 패러다임 바꿀 것”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주성엔지니어링 제공]


반도체 칩을 ‘고층 빌딩’처럼 짓기 위해서는 특별한 반도체 소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주성엔지니어링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원자층박막성장장비(ALG)다. 기존 ALD는 1000도 이상 고온과 사파이어 기판 위에서만 3-5족 반도체 구현이 가능했지만, ALG 기술을 이용하면 400도 이하의 어떤 기판에서도 양산할 수 있다.

ALG는 반도체의 핵심 소재인 ‘실리콘’이 없어도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혁신’ 기술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메모리) 공급 부족은 웨이퍼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짚었는데, ALG 기술을 사용하면 기술로 물리적인 공급 부족을 뛰어넘을 수도 있는 셈이다.

반도체 공정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제성도 뛰어나다. 원형인 실리콘 웨이퍼와 달리 유리기판은 사각으로, 실리콘 웨이퍼보다 30% 이상 효율적이고 가격은 10배 이상 저렴하다.



황 회장은 “기존 증착 장비가 눈이 쌓이는 구조라면 ALG는 얼음이 어는 원리와 같다”며 “얼음을 살얼음, 통얼음 등 여러 형태로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반도체도 3D 형태로 만들 수 있다. 이 장비를 적용하면 여러 반도체 관련 난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 알아보는 곳들도 생겼다. 업계에 따르면 주성엔지니어링은 최근 ALG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반도체 장비를 해외 유력 제조 기업에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총 200조원 불가능한 일 아냐”
엔비디아·테슬라처럼 폭발적 성장 자신


주성엔지니어링은 ‘세계 최초, 온리 원’ 제품으로 시장 창출에 집중하고 있다.

황 회장은 “혁신은 경쟁자가 없다. 경쟁자가 있는 건 기술”이라며 “기술은 아무리 좋아도 시장의 경쟁자가 있어서 (기술을) 만든 사람이 가격을 결정하지 못하고 구매하는 사람이 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혁신은 부족함이 있어도 시장에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만든 사람이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라며 자신의 경영철학을 밝혔다.

대한민국이 D램에서 세계 1등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주성의 기술력이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트랜지스터와 커패시터(콘덴서)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주성은 1995년 세계 최초로 커패시터 전용 장비인 셀렉티브 HSG 증착 장비를 개발하고 1997년 ALD 장비를 세계 최초로 양산화했다.



황 회장은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는 방법은 기술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매출의 20~30%를 꾸준히 R&D(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이유다. 2024년 기준 주성의 전체 임직원 중 약 63%가 R&D에 종사하고 있으며 누적 특허 건수는 약 3220여건 이상을 기록했다. 2020년 용인 R&D센터 신축에 이어 2022년에는 공주 캠퍼스를 신축했고 오는 2028년까지 약 1048억원을 투자해 용인 제2연구소를 신설할 예정이다.

현재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외에 태양광 사업에서도 신시장을 주도할 계획이다. 주성은 세계 에너지의 30%는 태양광이 차지할 것으로 보고 태양광 발전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도체에서 축적한 CVD(화학 기상 증착)·ALD·ALG 등 증착 기술을 결합해 이른바 ‘탠덤(Tandem) 태양전지’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 기술이 향후 디스플레이와 우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력원 등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황 회장은 “주성은 CVD·ALD·ALG 세 가지 핵심 공정을 모두 가진 유일한 기업”이라며 “에너지 시장은 반도체보다 훨씬 크고, 태양광은 그 중에서도 핵심이다. 주성은 원전·배터리·수소를 대체할 수 있는 태양광 발전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업계에서는 주성엔지니어링이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태양광 장비 공급망 진입도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혁신’을 바탕으로 시가총액 400조원 달성 가능성도 언급했다. 황 회장은 “주성의 경쟁사라고 불리는 곳은 미국의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일본의 도쿄일렉트론(TEL)이다. 각각 시가총액이 400조원을 넘었고 TEL도 200조원을 넘었다”며 시가총액 200조원 달성은 충분히 이룰 수 있는 목표이며 이의 2배인 400조원 달성 가능성도 내비쳤다.

황 회장은 “혁신기업과 모방기업의 성장은 다르다”며 엔비디아와 테슬라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1999년 상장 당시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3000억원 수준에 불과했지만, 인큐베이팅 타임을 거치고 27년이 지난 지금 7000조원으로, 2만3000배 이상 성장했다. 주성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모방으론 이익 못 남겨…중소기업 혁신 절실”
고정관념·기득권 타파없인 선진국 못 돼


황 회장은 ‘K-소부장(소재·부품·장비) 대부’라는 별명답게 국내 기업 생태계을 향한 쓴소리도 남겼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같은 대기업은 연일 주가 고공행진을 이어갔지만, 1분기 코스피·코스닥 상장 폐지 기업은 빠르게 증가해 역대 최대(15곳)를 기록했다. K자형 양극화 성장 구조가 뚜렷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황 회장은 모방경제를 넘어 혁신경제로 가야 우리 경제가 플러스 알파(α)를 창출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국산화’를 목표로 남의 기술을 빠르고 싸게 모방해오는데 그쳤다”며 “이제 모방을 통해 저렴하게 팔아서는 이익을 많이 남길 수 없다. 이익을 남기려면 경쟁자가 없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특히 혁신은 중소기업에 더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황 회장은 “협력은 나의 능력을 공유하는 행위인데, 나의 능력을 공유하면 수직적인 관계에 머무를 수 밖에 없어 이익이 날 수가 없다. 전형적인 우리나라 기업 생태계 구조”라며 “나의 경쟁력이 없어지지 않는, 내가 잘한 결과를 공유하는 ‘협업’이 필요하다. 그래야 수평적 관계로 협업이 가능하며 혁신 경제로 가는 길이 열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등의 목표와 2등의 목표는 다르다. 2등은 쫓아가기만 하면 된다. 리스크를 질 필요가 없는 것”이라며 “하지만 1등은 쫓아갈 상대가 없어서 리스크를 극복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제 1등을 해야하는 타이밍에 들어왔다. 가보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고(最高)의 자리에서 밀려나느냐 최초(最初)를 기록하며 세계 1등으로 남을 것이냐의 갈림길에서 정부의 역할도 강조했다.

황 회장은 “고정관념과 기득권으로 움직이는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며 “혁신은 관리의 대상 아닌 육성의 대상이다. 시장을 막아버리면 혁신은 죽는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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