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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문센이 훈련했던 설원, 핀세

2026.05.02 00:41

[아무튼, 주말]
[김영미의 남극, 끝까지 한 걸음] (22)

남극 횡단에 앞서 노르웨이 핀세로 두 차례 훈련을 다녀왔다. 아문센도 이곳에서 훈련을 했다고 한다. 많은 극지 탐험가들이 핀세의 겨울 환경이 남극에 가장 가깝다고 말한다. /김영미 제공

(2024.12.4. / 운행 27일 차. 위도 84도 57분 / 누적 거리 592.75㎞ / 해발고도 1355m.)

위도 85도까지 4㎞를 남긴 채 오늘 운행을 끝냈다. 아침에 출발할 때 위도 85도에 도착하거나 30㎞의 이동 거리를 채우거나 둘 중 하나는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11시간 25분 동안 28.31㎞밖에 걷지 못했다. 평균속도가 시속 2.4㎞밖에 안 된다. 오늘 목표치를 채우려면 더 걸어야 했지만, 28㎞ 지점부터는 텐트 칠 곳을 찾기 시작했다. 하루의 목표조차 완성하지 못할 땐, 한없이 불안해졌다. ‘남극을 좀 더 일찍 왔어야 했어.’ 지난 시간에 연연하는 데 쓰는 에너지는 나를 더 숨 막히게 한다. 30대 후반에 왔었다면 좀 달랐을까? 몇 해 일찍 왔어도 여전히 고된 여정일 테다. 그래도 결국 나는, 남극이란 대자연을 누리는 특권을 선물받았으니 ‘한없는 불안’도 사치다.

굳이 탓할 게 있다면, 지구촌을 혼란에 빠뜨린 코로나다. 코로나 때문에 남극 탐험이 미뤄졌다. 마음만 먹어서 될 일이었다면 벌써 횡단을 했겠지만, 예산과 허가가 발목을 잡았다. 남극 탐험 과정에서 가장 힘든 게 뭔지 묻는다면, 남극 땅을 밟기 전에 마주해야 하는 이 현실적인 제약이라고 답하겠다. 사실 남극 현지에서 힘든 건 예상한 어려움이다. 힘드니까 선택했고, 힘들어야 본전이다. ‘가야만 해’라는 마음은 ‘반드시 간다’는 확고한 결심으로 굳어졌다. 할머니가 된 후에 ‘그때 반드시 갔어야 했어’라는 후회를 반복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인가!

여전히 코로나가 극성이던 2021년 가을. 남극 물류 대행사에 단독 원정 신청 메일을 보냈더니 최근 2년의 경험을 물었다. 2017년 바이칼 호수 종단 이후 약 4년의 공백이 있었다. 대행사로부터 인정받을 최근 경험이 없었던 셈이다. 남극 탐험은 막대한 비용이 든다. 그런 비용을 내는 고객임에도 허가는 까다로웠다. 무모한 도전은 탐험이 아니지만, 몇 장의 서류로 ‘주인 없는 남극’의 탐험 자격을 검열받는 게 불쾌했다. 짐작할 수 없는 기준이 못마땅했다.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경험도 인정해주지 않는 듯했다. 남극점 원정 허가를 받는데 꼬박 반년이 걸렸다. 2022년 11월에야 남극 원정을 떠나 2023년 1월 남극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지원 남극점 도달의 결과가 더해지니 이번(2024년) 남극 횡단 신청은 메일 한 통으로 끝났다.

2016년부터 훈련지로 바이칼 호수와 노르웨이의 핀세를 두고 고민했었다. 사실 비싼 것 말고는 핀세를 다녀오는 게 모든 면에서 나쁠 게 없었다. 결국 나는 남극 횡단 전에 핀세를 2022년 2월과 2024년 3월에 각각 4주 안팎 일정으로 다녀왔다. 막상 가보니 핀세는 극지를 경험할 수 있는, 도심과 문명에서 가장 가까운 가성비의 장소였다. 썰매와 스키 등 주요 남극 장비는 노르웨이 현지에서 직접 확인하고 구입해 테스트한 후 중고 상태로 한국에 가져왔다. 2022년과 2024년 두 번 다 부가가치세 25%를 환급해줬다. 썰매의 항공 배송비는 가혹했다. 2024년 두 번째 훈련 때는 배송업체를 이용하지 않았다. 항공기마다 위탁 수하물 규정이 다르다. 2.1m 길이의 썰매를 싣는 게 가능한 항공사를 찾아 수하물로 부쳤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장비들은 오슬로 장비점에 사전 주문을 했다. 멀리 한국에서 간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더니 20% 할인(세금도 환급)을 해줬다. 이것만으로도 왕복 비행기 값이 된다. 나머지 예산은 식량비가 전부다.

차량 접근이 불가한 핀세(1222m)는 오슬로와 베르겐을 잇는 전기 철도로 닿을 수 있는 고산마을이다. 열차에서 내리면 스키로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에나 텐트를 칠 수 있는 설원이다. 광활한 설원이 펼쳐진 핀세는 아문센도 훈련했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도 여러 극지 훈련 프로그램이 있다. 한국 산악인들이 설악산을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듯, 핀세는 극지 탐험가들의 정신적 성지이자 제2의 고향 같다. 스키 루트는 촘촘한 간격의 대나무 표식으로 관리한다. 오슬로 중앙역 근처 ‘트레킹 센터’에서 구입한 종이 지도와 GPS(위성항법장치) 디지털 지도를 이용해 대나무 표식이 없는 구간으로 루트를 변경했다. 조금만 벗어나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야생의 장소가 펼쳐졌다. 발자국 없는 깨끗한 설원을 가로지를 땐, 남극에 던져진 듯한 고립감 속에서 훈련 중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쾌감을 느꼈다. 70㎏의 썰매, 시속 3㎞ 페이스로 8시간씩 2주 이상의 훈련 후 내 몸의 피로감과 체중 감량 등을 체크했다. 바이칼 얼음 호수 위에서의 밤은 뼈가 시렸지만, 핀세의 설원에서 보낸 밤은 포근했다. 폭신한 눈이 텐트의 바람막이가 돼줬기 때문이다. 바이칼에서의 충분한 경험이 만들어 준 여유가 아닐까? 값비싼 남극에 다시 오긴 어렵겠지만, 핀세는 또 가게 될 것 같다. 핀세의 산장에서 마셨던 따뜻한 커피와 아늑함이 그리운 날이다.

※아시아 최초로 남극 대륙을 단독으로 도보 횡단한 산악인 김영미의 ‘남극, 끝까지 한 걸음’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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