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자무싸’로 이어지는 박해영 작가의 세계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를 통해 ‘아저씨 신드롬’과 ‘추앙 신드롬’을 만들어냈던 작가 박해영의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됐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JTBC)는 긴 제목을 가진 이 드라마는 말 그대로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드라마는 여전히 어둡고 우울하다. 하지만 또 늘 그래왔던 것처럼 박 작가는 그 안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새롭게 아침을 맞는 주인공들을 통해 특유의 따뜻한 감성을 전할 것이다. 박 작가만의 그 독특한 감성과 세계론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근 시작한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사진 JTBC] 박해영 작가의 작품에는 사회에서 배제되어 그 언저리에서 서성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아이유)은 여섯 살에 병든 할머니와 단둘이 남겨져 꿈이나 희망 같은 단어는 쓰레기통에 버린 지 오래다. 얼마 되지도 않는 알바 벌이는 사채 빚으로 쪽쪽 빨리고, 회사 탕비실에서 슬쩍한 믹스커피 두 봉지를 따뜻한 물에 녹여 먹는 것으로 저녁을 때우기 일쑤다. 그 정도면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런 조언 한 마디 해주는 어른도 없다. 그녀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해도 마치 없는 사람처럼 취급되는 투명인간 같은 사무보조다. 한편 ‘나의 해방일지’의 염씨네 가족은 도시 중심의 사회에서 변두리로 밀려난 인물들이다. 출퇴근에 상당한 시간을 보내야 하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밭일을 도와야 하는 그들에게 주말농장의 낭만 따위는 없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아 연애 전선에서도 밀려나 있다. 근근이 살아가는 그들에게 도시가 말하는 ‘행복’이나 ‘사랑’ 따윈 위선처럼 보인다. 염씨네 가족은 모두 무기력에 빠져 있다. 사회 바깥으로 밀려난 자들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생산성 없으면 무가치?’ 시대에 던진 질문
주인공 황동만(구교환)과 비슷한 고민으로 갈등하는 '모자무싸' 속 8인회. [사진 JTBC] 박 작가의 신작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도 예외는 아니다. 20년째 데뷔를 못 하고 있어 직업란에 ‘영화감독’이라 적어도 ‘무직’으로 취급받는 황동만(구교환)이라는 인물이 바로 그 사회가 배제한 인물이다. 함께 시작했던 선배와 동료들이 만든 8인회에서 그는 왕따다. 입만 열면 아무도 듣지 않는 자신의 이야기만을 늘어놓는 그는, 저들에게 “남 잘되는 거에 미쳐 죽고 남 안 되는 거에 행복해 죽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모이는 아지트에 ‘황동만 출입금지’를 붙여 놓는다.
박 작가의 작품이 독특하다 여겨지는 건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선망과 도파민의 판타지를 그리는 것과 달리 배제된 자들의 현실과 그 분투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함 대신 초라함이, 빛 대신 그림자가, 낮 대신 밤 풍경이 자주 등장한다. 선망과 도파민의 판타지가 현실을 잊게 하는 것이라면, 박 작가의 분투기는 현실을 일깨우는 것이다. 저들은 왜 배제됐을까.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무엇인가. 그러한 배제는 온당한가. 그걸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 이런 질문들이 박 작가의 작품에는 매회 매 순간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기관총처럼 쏟아진다.
진짜 어른의 역할과 책임을 이야기했던 '나의 아저씨'. [사진 tvN] 물론 이러한 사회학적 문제의식을 박 작가는 드라마라는 감정의 틀 안으로 가져온다. 배제된 자들이 느끼는 감정들은 불안, 분노, 체념, 무기력, 절망 등 다양하지만 박 작가는 그중에서도 ‘불안 공포’라는 감정을 자주 꺼내놓는다.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이라는 청춘이 절망감보다 더 무섭게 느끼는 감정은 그 누구도 이 청춘에 관심을 주지 않는 데서 오는 고립감과 불안이다. 먹고 살기 위해 뭐든 하는 이 청춘이 도둑질에서부터 협박, 감청까지 하는 그 일련의 몸부림을 보다 보면 그것이 단지 생계를 위한 행위만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보다는 ‘나도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애써 드러내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의 아저씨'의 귀여운 조력자 조기축구회 멤버(박수영). [사진 tvN] 그런데 그녀를 불안하지 않게 해주는 인물들이 나타난다. 바로 박동훈(이선균)과 그와 연대하고 있는 정희네 술집에 모인 아저씨들이다. 혼자 밤길을 가다가 혹은 집안에서조차 빚쟁이한테 잡혀 주먹질을 당하는 이 청춘의 불안을, 아저씨들은 함께 걷고 지켜봐 주는 것으로 풀어준다. 그런데 이 아저씨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들 또한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그 불안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잘 나가던 회사의 중역들이었지만 이제 퇴직해 사회 언저리의 허드렛일들을 하며 살아가는 그들은 그래서 이지안 같은 배제된 청춘과 함께 걸어간다. 불안의 감정은 이로써 ‘편안함에 이르는’ 과정으로 바뀐다. 사회 언저리로 배제되어 망가진 것처럼 보이는 삶들도 그 안에 서로 기대고 비빌 사람들이 있어 사라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배제된 이들의 연대가 ‘사람대접’ 해주지 않는 사회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놓인 이들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주는 과정을 박 작가는 이지안이라는 청춘과 아저씨들의 연대로 풀어낸다.
'추앙 신드롬'을 일으켰던 '나의 해방일지'. [사진 JTBC] ‘나의 해방일지’에서 이 불안의 감정은 무기력이라는 밑바닥을 만나 박차고 뛰어오른다. 도시로부터 배제된 삶의 불안을 쥐고 어쩔 수 없이 시계추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염미정(김지원)은 자신보다 더 무기력해 보이는 구씨(손석구)라는 인물을 통해 억압된 감정을 꺼내놓는다. 그 집에 얹혀 싸구려 씽크대 만드는 일을 도우며 사는 구씨는 이름도 숨긴 채 말도 거의 꺼내지 않는, 말 그대로 투명인간 같은 인물이다. 그가 유일하게 하는 일이라곤 저녁에 읍내까지 슬슬 걸어가 소주 몇 병을 사 집으로 와 마시는 일이다. 염미정은 그 무기력한 모습의 구씨에게 참다못해 이렇게 말한다. “나를 추앙해요. 사랑으론 부족해.” 구씨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의 무기력을 투사하고 이를 뛰어넘으려는 것이다. 구씨가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넓이의 도랑을 뛰어넘는 명장면은 그래서 이 사회가 배제한 인물들이 그 무기력을 뛰어넘고픈 해방의 욕망이 얼마나 큰가를 압축해 보여준다.
물론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씨 가족의 해방은 이뤄지지 않는다. 염씨 삼남매는 그토록 염원하던 도시에서의 삶을 살게 되지만(물론 그 안에서도 변방이다), 그 삶은 여전히 변두리에 머물러 있다. 즉 배제의 문제는 도시와 변두리로 나뉘는 공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라는 걸 이 드라마의 엔딩은 보여준다. 사회가 받아들이고 삶의 공간을 내주지 않는 존재는 온전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모자무싸’는 이러한 사회가 배제한 이들의 분투기를 ‘나’에서 ‘모두’로 보다 확장된 방식으로 풀어낸다. ‘나의 아저씨’의 배제된 인물들이 사회가 관심을 갖지 않는 가난한 청춘과 퇴직 후 사회의 허드렛일로 밀려난 중년들이었고, ‘나의 해방일지’에서 그들이 도시 변방으로 밀려난 변두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면, ‘모자무싸’는 그것이 우리 ‘모두’일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 등장하는 박경세(오정세) 감독이 그 증거다. 영화 다섯 편을 만들었고 그래서 황동만과는 급이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여전히 불안에 휩싸여 있다. 언제든 망할 수 있고, 하루아침에 평판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게 우리 사회 아닌가. 그는 언제든 황동만과 같은 처지, 즉 ‘무가치한 존재’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빠져 있다. 그가 그토록 황동만을 싫어하고 그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애써 강변하는 건 그래야 자신의 존재 가치가 입증되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불안 공포로 돌아가는 사회 시스템 꼬집어
탄탄한 스토리를 가진 박해영 작가의 작품에는 빛나는 조연(송새벽·박호산·고두심)들이 출연한다. [사진 tvN] 그런데 황동만과 박경세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안의 화학작용을 객관적으로 내려다보면 이들이 왜 이토록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는가 의아해진다. 영화 다섯 편을 만든 게 대단한 감투라도 되는 양 뻐기는 박경세 앞에서 황동만은 불안해진다. 그와 비교해 자신은 데뷔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동만을 보면서 박경세 역시 불안해한다. 한 발만 삐끗하면 자신 또한 황동만 같은 인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의 불안을 투사하며 으르렁대지만,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어서라기보다는 그렇게 만들어내는 ‘인정 투쟁’의 사회 시스템 때문이다. 인정받지 못하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능력과 생산성 같은 잣대로 함부로 사람을 무가치하다 낙인찍는다. 낙인찍는 자(박경세)와 낙인찍히는 자(황동만)로 나뉘는 사회 시스템은 그래서 서로 불안의 상승작용을 만들어낸다. 배제와 불안의 공포를 동력으로 삼아 굴러가는 사회의 굴레인 셈이다.
우리 모두가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건, 우리 모두가 우리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실로 우리는 우리 존재 자체로 환대받지 못하고 있다. 좋은 대학에 좋은 직장, 번듯한 집에 가정을 꾸려야 사람대접 받는 사회가 아닌가. 박해영 작가는 이러한 환대하지 못하는 사회의 인정 투쟁의 시스템이 야기하는 불안사회의 풍경들을, 배제된 인물들의 분투기로 우리 앞에 그려놓는다. 물론 이런 문제를 이들이 해결하는 판타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그 시스템의 굴레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연대를 통한 ‘편안함’에 이르거나, 사회가 꾸며내는 가짜 행복의 실체를 확인하고 해방을 꿈꾸거나, 인정 투쟁 시스템의 굴레를 벗어나 그 시스템 자체와 싸우는 것. 환대받지 못해 불안 공포 속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꿈꾸는 해방일지. 그것이 박 작가가 그려내고 있는 세계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어려서부터 TV를 끼고 살았던 덕분에 드라마·예능·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글 쓰고 강연하는 일이 직업이 됐다. 『숨은 마흔 찾기』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