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4만 기간제 시대, '1개월 쪼개기'와 '10년 장기근속'의 역설
2026.05.01 19:31
| ▲ 자료사진 |
| ⓒ burst on Unsplash |
한국 노동시장에서 기간제 노동자가 534만 명을 돌파하며 유례없는 폭증세를 보이고 있다. 2020년 8월 393만 명(19.2%)이던 기간제 노동자가 2025년 8월 534만 명(23.8%)으로 단 5년 만에 141만 명이나 급증했다. 양질의 일자리를 책임져야 할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조차 기간제 규모가 92만 명에서 134만 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러한 양적 팽창의 근본적인 원인은 고용의 '사유'를 묻지 않고 무제한 허용하되, 오로지 '사용기간 2년'만 제한하는 현행 기간제법의 구조적 결함에 있다.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임에도 기업들은 정규직 고용의 책임을 회피하고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 기간제를 무분별하게 남용하고 있으며, 법은 이를 합법적으로 방조하고 있다.
취약계층 편중과 '중첩 기간제' 현상의 심화
이러한 고용 불안의 타격은 노동시장 취약계층에 고스란히 집중되고 있다. 전체 기간제의 과반인 56.5%가 여성이며, 65세 이상 고령층의 59.4%와 30세 미만 청년층의 26.1%가 기간제로 일하고 있다. 정책적 수요로 늘어난 보건업·사회복지 서비스업(43.7%)과 단순노무직(50.3%)의 기간제 편중 현상도 심각하다.
가장 심각한 대목은 비정규직 고용형태의 중첩이다. 고용 불안의 층위가 하나뿐인 '단일 기간제'는 36.5%로 줄어든 반면, 시간제나 파견, 일용 등 또 다른 불안 요소가 겹겹이 얽힌 '중첩 기간제' 비율은 63.5%로 치솟았다. 기업들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욱 극단적인 고용 불안으로 내몰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노동조건 측면에서도 기간제 노동자는 모든 영역에서 정규직에 비해 '중층적인 불이익'을 겪고 있다. 월 임금은 정규직의 55.0% 수준에 갇혀 있고, 시간당 임금의 상대적 비율 역시 2024년 68.8%에서 2025년 67.5%로 하락하며 악화 조짐이 뚜렷하다.
기업은 기간제를 단기 인력으로만 소모하며 교육훈련 투자(55.1%→37.8%)마저 포기했다. 초단시간 쪼개기 노동의 만연으로 국민연금(44.8%), 건강보험(63.9%), 고용보험(57.1%) 등 사회보험 가입률은 일제히 하락해 사회안전망마저 붕괴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정규직의 노조 조직률이 19.7%인 반면 기간제는 3.6%로 추락하여, 이 중층적 위기를 방어할 최소한의 울타리조차 없이 고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1개월 쪼개기 계약과 10년 장기근속의 역설
현장의 고용계약 실태는 우리 제도의 모순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다. 퇴직금이나 정규직 전환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1개월 미만의 초단기 계약자가 5년 새 4만 명에서 21만 명으로 무려 5배나 급증했다.
하지만 쪼개기 계약이 만연한 이면에, 기간제 신분임에도 근속연수가 10년 이상인 장기근속자가 33만 명(6.2%)이나 존재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해당 일자리가 명백히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 기업들은 정규직 전환을 외면한 채, 10년 이상 계약 갱신만 반복하는 기형적 관행이 고착화된 것이다. 여기에 55세 이상 고령자나 4인 이하 영세 사업장, 전문 자격사 등에 무제한 기간제 사용을 허용하는 방대한 예외 조항들마저 겹쳐, 법의 원칙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글로벌 표준에 따른 '사용사유 제한' 법제화
시급 이상의 실태는 '사용 사유'를 묻지 않고 '사용 기간 2년 제한'에만 의존하는 현행 기간제법의 실패를 증명한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는 공공행정 분야조차 기간제 비율이 여전히 28.9%에 달하는 현실은 행정 지침의 명백한 한계를 보여준다.
이제는 민간을 포함한 전 노동시장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과 유럽연합(EU) 지침 등 확립된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는 입법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일시적 결원 대체나 계절적 업무 등 구체적인 '객관적 사유'가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기간제를 허용하고, 그 외에는 무기계약으로 간주하는 '사용사유 제한'을 전면 법제화해야 한다.
아울러 반복적인 쪼개기 계약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합산 기간과 갱신 횟수를 엄격히 제한하고, 프랑스의 사례처럼 계약 종료 후 일정 기간 동일 업무에 재고용을 금지하는 '냉각기간' 제도를 도입하여 사업주의 일방적인 회전문 고용의 고리를 끊어내야 할 때다.
| ▲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
| ⓒ 권우성 |
* 필자 소개 :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비정규직, 최저임금, 노동시간, 노동조합 등 노동시장 현안을 연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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