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오토바이로 골목 돌며 총격… 인터넷 끊겨 가족 생사도 몰라”
2026.01.14 00:59
“최루탄을 미친 듯이 쏘다가 이젠 총을 쏘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집에 가고 싶다…”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이란 출신 엔지니어 알리(50)의 친구가 보낸 메시지는 지난 8일 오후 8시 57분(현지 시각)에 멈춰 있다. 이란 제3도시 이스파한에서 벌어진 시위에 참가해 국영 방송국 IRIB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그 뒤로는 침묵뿐이다. 올해 칠순인 큰형의 생사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유선 국제전화마저 끊겼기 때문이다. 알리는 본지 온라인 인터뷰에서 “무릎이 아파 걷기도 힘든 형이 ‘청년들을 죽이는 자들을 막기 위해 내 맨주먹이라도 보태겠다’며 거리로 나섰는데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해외 거주 이란인들에게 고국의 침묵은 곧 죽음의 공포다. 소셜미디어에는 연락이 두절된 가족을 찾는 이들의 절규가 ‘#DigitalBlackoutIran(이란 디지털 암흑)’ 해시태그가 붙어 쏟아지고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이란인 회사원 A(33)씨도 “현재 정보가 완전히 차단된 상태”라며 “시위에 참가한 여동생이 ‘걱정 마. 열심히 싸우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보낸 목요일(8일)부터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이란 시위가 3주 차로 접어들며 사망자가 최대 6000명에 육박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는 가운데, 이란 당국은 전례 없는 ‘디지털 정보 전쟁’을 선포한 상태다. 지난 8일부터 이란 전역의 인터넷 트래픽이 평소의 5% 미만으로 떨어지는 전면 차단 사태가 발생했다. 일론 머스크의 우주 기업 스페이스X가 운영하는 저궤도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마저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방식으로 무력화하고 있다.
스타링크는 지상 기지국 없이 위성으로 직접 인터넷에 접속해 정부의 통신망 차단을 우회할 수 있다. 하지만 현지 소식통과 외신을 종합하면 이란 혁명수비대는 러시아나 중국의 기술 지원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고출력 전파 방해 장비를 동원해 스타링크 위성 신호를 차단하고 있다. 동시에 위성 통신 단말기 소지가 의심되는 가정을 가택 수색해 기기를 압수하고, 친정권 인사 일부에게만 인터넷 회선을 배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국 주재 이란대사관이 해외 거주 이란인들에게 본국 가족과의 단시간 통화를 주선하면서, 뒤에선 통화 내용으로 시위 참가자를 색출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시위 진압 목적이 ‘해산’이 아닌 ‘사살’로 바뀌었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테헤란의 한 시민은 영국 BBC에 “금요일(10일)부터 피의 날이 본격 시작됐다”며 “보안군이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을 가했고, 사람들은 구호만 외치다 죽어 나갔다”고 전했다. 지난 10일은 새해 첫 대규모 금요예배와 반정부 시위가 겹친 첫날이었다. 시위 초기 최루탄·고무탄 중심이던 진압이 이날을 기점으로 실탄 조준 사격으로 급격히 전환됐다고 한다.
8일 테헤란에서는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던 여대생 루비나 아미니안(23)이 시위 도중 근거리에서 뒤통수에 총을 맞고 숨졌다. 테헤란 인근 파르디스에선 오토바이를 탄 준군사조직 ‘바시지’가 골목으로 난입,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주민에게도 무차별 총격을 가해 “골목마다 2~3명이 죽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당국이 유가족에게 시신을 넘겨주는 대가로 ‘총알값’을 요구하거나, 도로변에 매장하도록 강요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노르웨이 인권단체 ‘이란인권’은 확인된 사망자만 648명이지만, 실제 희생자는 10배에 달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시위 도화선은 물가 폭등이었지만, 불길은 ‘반(反)하메네이 혁명’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에 9년째 거주 중인 이란인 여성 B(30)씨는 “단순한 생활고 시위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본질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라며 “2022년 시위 참여자가 전체의 20~30%였다면 지금은 70%가 거리로 나왔다”고 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을 주도했던 6070세대의 변심도 결정적이다. B씨는 “부모님 세대가 ‘우리가 47년 전 저지른 실수를 되돌리고 싶다’며 후회 속에 시위에 합류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에 귀화한 이란 출신 박씨마(65) 목사도 “정권 자체를 뿌리 뽑으려는 혁명”이라고 했다. 그는 “동료 이란인들은 ‘죽으면 죽으리라,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게’라는 구호를 외치며 신정(神政) 체제의 붕괴를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한국도 북한이라는 독재 정권과 마주하고 있는 만큼, 자유를 위해 피 흘리는 이란인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철옹성 같던 성직자 사회도 균열이 감지된다. 최근 소셜미디어에는 시아파 성직자 복장을 한 노인이 “호메이니는 이 나라와 종교를 망친 범죄자”라고 일갈하는 영상이 퍼졌다. 그는 시민들의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구호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란 인터내셔널 등 반체제 매체는 “성직자들조차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리고 있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정권의 핵심 지지축이던 성직자와 시장 상인 세력이 등을 돌린 것은 체제 붕괴의 전조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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