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낙하산·블랙리스트·이해충돌·투기…철도공단 이사장, 누굴 뽑아야 하나
2026.05.01 10:00
임기 내 40조 예산 좌우할 자리인데…논란 짙은 후보군
추천 5명 중 4명이 국토부 출신…인사 시스템 도마 위에
국내 철도 인프라 건설과 시설 관리를 총괄하는 국가철도공단 이사장 선임 과정이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 운영의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부터 주요 후보군 전반에 걸친 이해충돌과 도덕성 논란, 전문성 부재까지 복합적인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단순한 인사 잡음을 넘어 현 정부의 공공기관 인사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류심사에서 유력 후보 대거 탈락
철도공단 임추위는 최근 신임 이사장 선임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성해 전 철도공단 이사장이 지난해 8월 국무조정실 감찰을 계기로 사의를 표명, 올해 3월 사직서가 최종 수리되면서다. 철도공단 이사장은 임추위 공모와 추천을 거쳐 국토교통부 장관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며, 임기는 3년이다. 철도공단이 한 해 약 13조원의 예산을 집행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임기 내 약 40조원의 예산 집행권을 행사하는 셈이다.
철도공단 안팎에서는 이사장 선임 절차의 공정성을 놓고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임추위는 4월1일 마감된 이사장 공모 지원자 15명 중 6명을 면접 대상자로 압축했고, 최근 면접을 거쳐 국토부에 추천할 최종 후보 5인을 추렸다. 후보 명단에는 백승근 전 국토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장, 김선태 전 국토부 철도국장, 마창환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획조정실장, 이종국 전 SR 대표이사, 임종일 전 국가철도공단 부이사장 등이 포함됐다.
그동안 공공기관장 인선에서는 관례적으로 9~10명의 면접 대상자를 선정해 왔다. 경쟁성과 검증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조치다. 그러나 이번 인선은 통상적인 심사 과정과 달리 국토부 추천 인원(5명)에 맞춰 면접 대상자를 과도하게 축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결과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과 전 국토교통부 국장, 전 국토안전관리원장, 전 철도공단 부이사장 등 유력한 후보들이 서류심사에서 대거 탈락했다. 면접을 통한 후보 간 비교·검증 기회가 구조적으로 차단됐다는 지적이다.
철도공단 임추위는 그동안 본래 취지와 달리 청와대(대통령실)나 국토부가 내정한 인물을 통과시켜주는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 결과 능력보다는 친정부 성향을 보인 국토부 출신들이 철도공단 이사장직을 맡아왔다. 실제 박근혜 정부의 5대 이사장과 문재인 정부의 6·7대 이사장은 모두 국토부 출신이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시절에는 이사장과 부이사장이 모두 국토부 출신으로 채워지면서 철도공단 내에서 낙하산 인사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다. 이번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국토부에 추천되는 5명 중 과기부 출신인 마창환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국토부에 적을 뒀던 인물들이다.
업계 관계자는 "15명이 지원했음에도 면접 대상자를 6명으로 좁힌 것은 이례적"이라며 "면접은 사실상 6명 중 단 1명만 떨어뜨리는 '통과 의례'에 불과한 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철도공단 차기 이사장 하마평에 오르던 인사들이 서류심사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면서 심사 기준이 특정 후보의 경력에 유리하게 '맞춤형'으로 설계된 게 아니냐는 뒷말마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후보군 모두 치명적인 리스크
후보군의 면면을 놓고도 논란이 한창이다. 국토부에 추천되는 후보들이 빠짐없이 이해충돌, 도덕성 흠결, 전문성 부재 등 치명적 리스크를 안고 있어서다. 백승근 후보의 경우 현재 현대로템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라는 점이 뇌관이다. 현대로템은 대표적인 철도 사업자로 호남고속철도 고속차량 공급과 김포도시철도 열차운행시스템 공급, 대곡~소사 복선전철 전동차 제조구매 등 철도공단이 발주한 굵직한 사업들을 수주해 왔다.
철도 업계에서는 현대로템 출신이 발주처인 철도공단 수장으로 직행할 경우 입찰 및 수주 과정에서의 특혜나 경쟁사 배제 등 공정 경쟁이 훼손되는 심각한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철피아'(철도+마피아) 수사 당시 드러난 철도 업계의 폐쇄적인 밀어주기 관행과 독점 체제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백 후보는 투기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국토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장(차관급) 시절 세종시 특별공급을 통해 확보한 세종시 어진동 아파트를 세를 주고 자신은 경기 의왕시 내손동 아파트에 거주한 사실이 문제가 됐다. 이를 두고 수도권 과밀 해소와 비수도권 이전 기관 종사자들의 주거 안정이라는 특공의 취지를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백 후보는 주택 정책을 담당하는 국토부 출신이라는 점에서 더욱 거센 비판을 받았다.
김선태 후보도 비슷한 약점을 안고 있다. 김 후보는 IPARK현대산업개발(옛 HDC현대산업개발)이 국토부와 추진한 서창~김포 지하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위해 2021년 설립한 서창김포고속도로의 대표이사를 지낸 바 있다. IPARK현산은 철도 인프라 사업을 전개 중인 만큼 김 후보 역시 이해충돌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IPARK현산은 올해 1월에도 철도공단이 발주한 공사비 약 2297억원 규모의 남부내륙철도(김천~거제) 건설사업 제3공구 노반 신설 공사를 수주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김 후보는 국토부 도로국장 시절이던 2017년 말 기자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부적절한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전적도 있다. 그는 도로국장에 오른 지 4개월여 만인 2018년 초 돌연 직위 해제된 뒤 같은 해 2월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국토부 내부에서는 김 후보에 대한 갑작스러운 인사가 사실상 술자리 물의에 대한 문책성 조치로 여겨졌다.
마창환 후보는 철도 관련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출신으로 철도 분야에 대한 현장 경험이 없다. 관료 외 이력도 과학치안진흥센터 이사,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 한국지적재산권경상학과 회장 등으로 철도와 무관하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철도 분야 경영과 리스크 관리에 한계가 명확하다는 평을 받는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과기부 기획조정실장으로 근무하던 문재인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 의혹'에 연루되기도 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부처 산하 공공기관장들의 임기가 남았음에도 부당하게 사퇴를 종용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마 후보는 유영민 전 과기부 장관, 이진규 과기부 1차관, 임대식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등과 임기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에게 사퇴를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국토부 출신인 이종국 후보는 2021년 말 부산교통공사 사장 임기를 채우지 않고 수서고속철도(SRT) 운영사인 SR 대표로 자리를 옮겨 책임성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또 SR 대표로서도 2023년과 2024년 경영평가에서 C등급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에는 사실상 낙제점인 D등급을 받으면서 경영 능력에 의문부호가 붙어있는 상황이다. 이 후보는 지난해 경영평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철도공단 "임추위 결정 사안…입장 없어"
임종일 후보는 국토부 철도안전정책관을 지내던 2022년 11월 윤석열 정부 핵심 관계자(윤핵관)의 추천으로 철도공단 부이사장에 올랐다는 낙하산 인사 논란의 당사자다. 당시 김한영 이사장에 이어 부이사장까지 국토부 출신으로 채워지면서 철도공단 안팎에서는 성토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철도공단 노조는 낙하산 인사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성명을 냈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부적절한 관행'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현재 철도공단 이사장 선임 절차는 막바지 단계에 돌입한 상태다. 철도공단 안팎에서는 정부가 이대로 철도공단 이사장 임명을 강행할 경우 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십자포화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부의 정당성 시비와 내부의 오랜 불신이 겹치면 신임 이사장의 조직 장악력은 시작부터 마비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경우 국가 핵심 인프라를 책임지는 철도 주요 정책과 사업 추진 동력마저 잃게 될 수 있다.
특히 철도공단은 최근 수년 사이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중심의 조직개편으로 인한 혼란과 발주 공사 현장에서의 연이은 중대재해, 2023~24년 국토부 안전관리수준 평가에서 연속 '미흡' '매우 미흡' 판정 등으로 누적된 위기에 빠진 상황이다. 여기에 국무조정실의 감찰과 그로 인한 전임 이사장의 돌연 사퇴 등으로 내부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과제도 산적해 있다. 수도권 시민들의 숙원 사업인 광역급행철도(GTX) A노선의 완전 개통을 차질 없이 완수해야 하고, 착공에 들어간 B·C노선의 공정 관리도 시급하다. 또 K철도의 글로벌 영토 확장을 위해 구성된 민관 합동 '팀 코리아'의 필두에서 치열한 수주전도 치러야 한다. 이처럼 겹겹이 쌓인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낙하산이나 특정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인물이 아닌, 철도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혜안과 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리더십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철도공단은 이사장 선임과 관련해 어떤 해명도 내놓지 않았다. 철도공단 관계자는 "신임 이사장 후보와 관련된 사안들은 임추위에서 결정된 것으로 공단 입장은 없음을 양해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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