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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노조에게 성과급이란…"회사가 어렵다는 건 가스라이팅"

2026.05.01 09:02

'비즈니스 파트너'가 된 젊은 피…"가성비 안 맞으면 떠난다"
붉은 머리띠 대신 '셀카'와 '상소문'…2026 달라진 MZ 춘투
보상 잭팟의 그늘 속 공급망 '흔들'…사라지는 R&D 실탄
삼성전자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조합원들이 지난달 2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앞에서 열린 투쟁결의대회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뉴시스
[데일리안 = 백서원 기자] 평택사업장 정문 인근, 한 손에는 투쟁 깃발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포토존에서 ‘인증샷’ 셔터를 누른다. 지난달 23일 열린 삼성전자 노조 결의대회 풍경은 우리가 알던 대규모 제조 현장의 비장한 노사 대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전광판 속 ‘성과급 투명화’ 문구는 구호라기보다 SNS 챌린지의 한 장면처럼 공유된다. 그들이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정조준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거창한 명분이 아닌, 내 노동의 가치를 증명할 ‘확실한 숫자’다.
"인생은 가성비 루트"…'메타인지'로 무장한 신(新)노동자
2026년 봄 노동절, 한국 기업들은 공정한 보상과 지속 가능한 투자라는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 과거 회사의 성장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했던 성장 공유 모델은 유통기한이 다했다. 이제 노동 현장에서 “회사가 어려우니 함께 견디자”는 호소는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으로 치부된다.

변화의 핵심은 공정에 대한 세대론적 재정의다. 젊은 노동자들에게 직장은 더 이상 뼈를 묻는 터전이 아니다. 노사 관계는 정치적 연대의 장이 아닌, 내 노동력을 가장 비싸게 파는 ‘비즈니스 파트너십’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최근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하이닉스 생산직인데 인생이 달다”는 제목의 글은 이들의 철학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성자는 “중학교 때 공부 안 해서 공고 갔고, 전교 2등 해서 이직했다. 인생은 ‘메타인지(자기 객관화)’가 중요하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는 자신의 삶을 ‘최고의 가성비 루트’라 정의한다. 학원비 한 푼 안 쓰고 억대 연봉과 성과급을 챙기게 됐으니, 이보다 남는 장사가 어디 있냐는 실리적 논리다.

SK하이닉스 생산직 직원이 남긴 글.ⓒ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열정 페이는 사절"…회장님께 쏘아 올린 '직진 상소문'
이들에게 상사의 지시는 “이게 왜 제 업무죠?”, “보상은 합당한가요?”라는 인과관계 요구 앞에 가로막히기 일쑤다. 납득할 수 없는 업무나 보상에는 침묵 대신 ‘돌직구’를 택한다. 경영진을 향해 “내 보상이 왜 이 수준인가”를 직접 묻는 상소문 정국은 이미 몇 해 전부터 예고됐다.

그 시작은 2021년 1월, SK하이닉스의 입사 4년차 직원이 최고경영진을 포함한 전 임직원에게 보낸 항의 메일이었다. 당시 연봉의 20% 수준으로 책정된 초과이익분배금(PS)을 두고 “삼성은 47%를 주는데 우리는 왜 20%인가. 산정 기준인 경제적 부가가치(EVA) 산식을 공개하라”는 직원의 요구는 재계의 성역을 건드렸다. 이후 2022년 대한항공 직원이 조원태 회장에게 “기브 앤 테이크를 명확히 해달라”며 보낸 실명 이메일, 대표이사를 향한 삼성전자 7년차 직원의 연봉 산정 오류 지적 등이 잇따르며 총수와 직접 대화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이러한 상소문들은 결국 기업의 보상 체계를 뿌리째 바꿨다. SK하이닉스는 2021년 최태원 회장이 연봉을 반납하며 소통에 나선 끝에 성과급 재원을 ‘영업이익의 10%’로 명문화했다. 이어 지난해 9월에는 아예 성과급 상한선(기본급 1000%)까지 폐지하며 실적과 보상을 동기화했다. 올해 역대급 실적을 기록 중인 SK하이닉스의 PS 재원은 산술적으로 약 25조원 규모에 달하며 1인당 평균 수억원 대의 ‘잭팟’이 예고된 상태다.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과거 항의 목소리를 높였던 직원들은 이제 “오늘부터 자발적 야근이다”, “외화를 벌어오는 영웅호걸들의 시간”이라며 서로를 독려한다. 또 “회장님 액자를 공구하자”며 최태원 회장에 대한 감사를 농담처럼 주고받는 ‘충성 인증’도 벌어졌다.

SK하이닉스 협력업체 노동자와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지난달 30일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SK하이닉스3공장 앞에서 원청교섭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인재를 잡을 것인가, 미래를 잡을 것인가…깊어진 고민
다만 SK하이닉스가 쏘아 올린 ‘상한 없는 성과급’은 인접한 삼성전자와 현대차 직원들의 눈높이를 수직 상승시켰다. 삼성전자 노조가 다음달 ‘최대 30조 손실 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이는 곧 거대한 갈등의 파편이 되어 하청 생태계로 튀었다. 지난 3월 10일 시행된 노란봉투법과 맞물려 산업 현장 곳곳에는 강대강 대치의 불씨가 타오르고 있다.

전날 청주 SK하이닉스 공장 앞에는 하청 노조원들이 모여 “원청의 수억원대 성과급이 하청의 노동을 무가치하게 만들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모비스에서는 램프 사업부 매각을 두고 하청 생산직이 전면 파업에 돌입하자 본사 사무연구직도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릴레이 1인 시위로 가세했다. 부품사 한 곳만 멈춰도 완성차 라인이 마비되는 구조상, 이러한 투쟁은 반도체와 자동차 등 국가 수출의 절반을 지탱하는 공급망 전체의 위기감도 함께 키우고 있다.

결국 모든 갈등의 끝은 ‘미래’를 향한다. 인재 유출을 막으려면 삼성 노조가 요구하는 ‘영업이익 15%(약 45조원) 및 상한제 폐지’, 현대차 노조의 ‘순이익 30%’ 같은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지만 그 비용은 고스란히 연구개발(R&D) 실탄을 갉아먹는다. 글로벌 주도권 다툼이 초 단위로 벌어지는 상황에서 투자와 보상 사이의 역설적 상황에 놓인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합리적인 보상안을 도출하는 것이 노사 상생의 시작이지만, 요구 수위가 높아질수록 기업이 미래를 위해 비축해둔 최후의 보루까지 허물어뜨릴 수 있다”며 “인재를 잡으려다 정작 그들이 일할 터전인 미래 경쟁력 확보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은 노사가 함께 풀어야 할 가장 무거운 숙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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