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컬럼] 한국광해광업공단 3조 원을 2900원으로 정리한 교훈…해외자원투자,? '선별과 기준'의 문제다
2026.05.01 08:37
3조 원을 투자하고 약 2900원에 정리했다. 숫자만 보면 충격이고, 결과만 놓고 보면 명백한 실패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이 참여한 멕시코 볼레오 구리광산 사업은 사실상 투자금 대부분을 날린 채 철수로 마무리됐다. 이 사건은 단순한 투자 실패가 아니다. 한국형 해외자원개발 전략이 어디에서 흔들렸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여기서 “해외자원투자를 줄여야 한다”는 결론으로 가면 문제를 잘못 읽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다. 더 해야 한다. 다만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한다. 자원은 선택이 아니라 산업의 생존 기반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방산까지 한국 경제의 핵심 산업은 모두 광물에 의존한다. 구리와 니켈, 리튬과 코발트가 없다면 생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문제는 투자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투자하느냐’다. 이번 사례는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우리는 투자 의지는 있었지만, 투자 기준은 없었다.
해외자원개발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이 차이가 더 분명해진다. 일본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를 갖고 있다. 일본 종합상사와 정부가 함께 참여한 칠레 에스콘디다 구리광산은 지금도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프로젝트다. 일본은 초기 단계에서 수년간 지질 데이터와 생산비 구조를 검증했고, 개발 이후에는 장기 구매 계약을 통해 리스크를 줄였다. 투자 속도는 느렸지만, 기준은 명확했다.
호주 철광석 개발도 비슷하다. 일본은 단순히 지분을 사는 데 그치지 않고, 철강회사와 연계해 장기 공급망을 설계했다. 자원 확보와 산업 전략을 동시에 묶어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안정적인 원자재 확보와 수익을 동시에 얻었다.
반대로 실패 사례도 있다. 일본 역시 인도네시아 일부 석유·가스 프로젝트에서 정치 리스크를 과소평가해 손실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는 ‘손절의 속도’였다. 수익성이 무너지면 추가 투자 대신 철수를 선택했고, 손실을 제한했다. 실패는 있었지만 시스템은 무너지지 않았다.
중국의 사례는 또 다르다. 중국국영석유공사와 중국 알루미늄공사는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공격적인 자원 확보에 나섰다. 일부 프로젝트는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유지됐다. 대신 중국은 외교력과 금융 지원을 결합해 리스크를 관리했다. 실패를 감당할 체력과 정치적 영향력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도 성공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포스코가 참여한 호주 로이힐 철광석 프로젝트는 대표적인 사례다. 포스코는 초기 투자 이후 안정적인 생산 구조를 확보하며 장기 수익을 내고 있다. 단순한 지분 투자에 그치지 않고 철강 생산과 연계한 전략적 접근이 주효했다.
또 다른 사례로 SK이노베이션의 페루 LNG 프로젝트도 꼽힌다. SK이노베이션은 탐사부터 생산까지 단계별로 투자하며 리스크를 분산했고, 결국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확보했다. 이 역시 ‘속도’보다 ‘선별’이 만든 결과다.
반면 실패 사례는 익숙하다. 과거 해외 석유 개발 사업이나 일부 광물 프로젝트는 초기 낙관적 전망에 기대 투자했다가, 가격 하락과 비용 상승으로 손실을 키웠다. 공통점은 하나다. 투자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고, 철수 판단이 늦었다는 점이다.
볼레오 광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연약한 지질 구조, 높은 생산원가, 현지 리스크는 초기부터 존재했다. 그럼에도 투자는 진행됐고, 손실은 누적됐다. 여기서 흔히 ‘선별 능력 부족’이 문제로 지적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설명하면 부족하다.
자원개발은 투자 시점보다 투자 이후가 더 중요하다. 현지 정부 정책 변화, 환경 규제 강화, 국제 가격 변동 등은 예측하기 어렵다. 즉 자원개발은 ‘선별’과 동시에 ‘지정학’의 문제다. 한국은 이 두 영역 모두에서 중간 위치에 있다. 중국처럼 리스크를 밀어붙일 힘도 없고, 일본처럼 정교한 시스템도 완전히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기준’이다.
첫째, 자산을 구분해야 한다. 모든 프로젝트를 동일한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희토류나 핵심 광물처럼 공급망과 직결된 자산은 일정 수준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확보해야 하는 전략 자산이다. 반면 일반 금속 프로젝트는 수익성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구분이 없으면 모든 투자가 애매해진다.
둘째, 철수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일본 사례가 보여주듯 실패를 빠르게 인정하는 것이 손실을 줄이는 길이다. 손실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자동으로 재검토가 이루어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감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판단해야 한다.
셋째, 공공과 민간의 역할을 나눠야 한다. 초기 탐사는 실패 확률이 높아 민간이 쉽게 참여하기 어렵다. 따라서 공공의 역할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치와 행정에 영향을 받는 구조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외부 전문가 검증, 투자위원회 독립성, 철수 기준 의무화 등 의사결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
넷째, 실패를 다루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자원개발은 원래 실패가 많은 산업이다. 문제는 실패 자체가 아니라 ‘관리되지 않은 실패’다. 예측 가능한 위험을 방치하거나, 손실을 키운 뒤에야 철수하는 구조는 반드시 바꿔야 한다.
결국 이번 사건의 본질은 단순하다. 해외자원투자는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은 안 된다. 투자 규모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판단 기준을 세우는 것이 먼저다.
3조 원을 2700원으로 정리한 사건은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기준의 부재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산업은 흔들린다. 그러나 잘못된 투자 역시 산업을 흔든다. 이 두 위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국가 전략이다.
자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보다 ‘어디서 멈출 것인가’를 아는 것이다. 해외자원개발의 성패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투자 의지가 아니라 선별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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