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이익배분보단 경기반영해 책정…대화구조 제도화도 필요
2026.04.30 18:08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HBM 경쟁 치열한데 생산 공백은 치명적
고객사 잃고 나면 회복까지 수년 걸려
파업, 사회 전체가 떠안을 사회적 비용[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93.1%의 찬성률로 쟁의투표를 가결하고 총파업을 예고했다. 기본급을 7% 인상하고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요구하는 내용이다. 반도체 생산 현장에서 밤낮없이 헌신해 온 근로자들이 자신의 기여에 합당한 보상을 원한다는 심정을 탓할 수는 없다. 수십 년에 걸쳐 세계 최정상의 반도체 기업을 일궈낸 데에는 분명 현장 근로자들의 땀이 배어 있다.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위상은 단순히 한 기업의 성과가 아니다. 한국 산업 전체가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기술력과 인적 자본의 결정체다. 그러나 경제학자로서 이 사태를 바라보며 하나의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논쟁하는 이 비용들이 정말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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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발생하면 생산 차질은 하루 1조원, 평택 공장이 50% 가동에 그치면 잠재적 손실은 최대 30조원에 이른다는 추정이 나온다. 진짜 문제는 수면 아래에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고객사가 최우선으로 여기는 가치는 가격이 아니라 ‘공급 안정성’이다. 수년 단위 계약을 맺는 글로벌 기업에게 생산 불안정은 곧 신뢰 훼손이다. 수면 위로 드러난 생산 손실은 일시적으로 복구될 수 있지만,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신뢰의 균열과 공급망 재편은 한번 시작되면 되돌리기 훨씬 어렵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반해 공급은 제한적인다. 이 시기 생산 차질은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시장 지배력이 구조적으로 훼손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고객사는 삼성에 공급망을 의존하는 대신 다른 메모리 기업인 마이크론, SK하이닉스로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고객 역시 TSMC로 옮겨가는 전략을 앞당기게 된다. 반도체 기술은 1~2년만 뒤처져도 경쟁력을 잃는다는 것이 이 산업의 상식이다.
파업으로 반도체 생산공장 증설과 연구개발(R&D) 의사결정이 지연될 때, 그 대가는 고스란히 미래 경쟁력으로 귀결된다. 단기 손실은 협상으로 복구 가능하지만 기술 격차와 고객 이탈은 되돌리기 훨씬 어렵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에게 지금은 생산 공백을 허용할 수 없는 결정적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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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반도체가 한국 수출의 35%를 차지하는 만큼 반복적인 파업 리스크에 노출되면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 전체를 불안정한 투자처로 인식할 수 있다. 이는 외국인 투자 감소, 자본 조달 비용 상승, 환율 민감도 확대로 이어져 국가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파업의 비용은 삼성전자 주주와 근로자 사이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 비용은 협력사 직원과 그 가족, 나아가 한국 경제 전체가 함께 떠안게 되는 사회적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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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달라고 요구한다. 이는 호황기 기준 약 45조원으로, 연간 연구개발 투자액을 웃도는 수준이다. 결국 주주에게 귀속될 투자 재원을 잠식하고, 장기 성장 동력을 약화시킨다. 경기 호황기에 이익의 대부분을 성과급으로 배분하고 나면 불황기에 고용을 유지할 여력이 줄어든다는 점도 노조는 직시해야 한다.
반복게임 이론의 관점에서도 이 사태는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 평판과 신뢰는 기업의 장기 자산이다. 한 번의 비협조, 파업이 장기적인 징벌 전략을 촉발해 양측 모두에게 손실을 남긴다. 삼성이 이번 파업을 계기로 공급처 다변화를 고민하는 고객사에게 ‘공급 불안’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힌다면, 그 회복에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노동경제학에서 오래전부터 가르쳐 왔듯, 파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노조도 결국 양보의 폭을 넓힐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협상 테이블에서 합의에 이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파업의 경제학에서 말하는 ‘힉스의 역설(Hicks’ Paradox)‘이 상기시켜 주듯, 합리적인 당사자라면 파업 없이 직접 합의하는 것이 양측 모두에게 이득이다.
성과급, 경기 사이클 반영 ’다층적 설계‘ 필요
해법은 거버넌스의 재설계에 있다. 성과급 산정 기준을 투하자본이익률(ROIC), 경제적부가가치(EVA) 같은 객관적인 지표와 연동해 공개해야 한다. 또 노사 외부 전문가가 함께하는 독립 중재위원회를 구축해야 한다. 분기별 경영 정보를 노사가 합리적인 수준에서 공유하는 정보공개 플랫폼을 운영하면 협상 지연의 근본 원인인 정보 비대칭을 줄일 수 있다.
성과급 구조도 단순히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배분하는 방식보다 경기 사이클을 반영한 구간별 차등 지급과 장기 성과 연동 보상(RSU·PSU)을 결합하는 다층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이른바 ’강효율 계약(Strongly Efficient Contracts)‘의 관점에서, 고용량과 생산량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성과를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구조를 노사가 함께 설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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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공동결정제(Mitbestimmung)나 스웨덴의 살츠쇠바덴(Saltsjöbaden) 협약처럼 정례적 사회적 대화 구조를 제도화하는 것도 참고할 만하다. 이들 나라에서 노사 갈등이 낮은 수준에서 관리되는 것은 단순히 임금이 높아서가 아니다. 정보가 공유되고 신뢰가 쌓인 구조 속에서 양측이 장기적 이해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헌법이 보장한 파업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권리 행사의 비용을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지금 이 순간 파업이 최선의 선택인가. 삼성전자 노사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는가‘의 싸움이 아니라 ’어떻게 함께 더 많이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공동의 비전이다. 신뢰는 한번 손상되면 복구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근로자도 열심히 일했고 그 보상을 원한다. 그러나 장기적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누려면, 그 성장의 토대를 먼저 함께 지켜야 한다. 파업의 보이지 않는 비용을 가장 오래, 가장 무겁게 치르는 것은 결국 현장의 근로자들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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