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의 삶 고려하지 않은 병무청, 그리고 법원 유감
2026.04.30 09:41
이 사건의 원고는 어린 시절부터 여성으로서의 성별정체성을 갖고 살아온 사람이다. 20살 때 커밍아웃을 했고 학교에서도 여학생으로 다니는 등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 모두 여성으로 살고 있다. 그럼에도 병무청은 2024년 원고의 신체등급을 4급으로 판단하고 사회복무요원으로 소집하는 처분을 하였다. 원고가 호르몬요법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트랜스젠더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병역판정 규칙
현행 병역법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모두 병역 의무가 부과되며, 이는 법적 성별이 남성인 트랜스젠더 여성에게도 해당된다. 그러나 남성의 의무복무만을 상정한 현재의 군대 복무 환경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이 현실적으로 군 복무를 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국방부령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아래 '규칙')은 트랜스젠더가 정신의학 평가 등으로 성별불일치(gender incongruence)로 확인이 되면 신체등급을 다르게 판단하도록 정하고 있다.
2024년 2월 전까지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성별불일치 상태임이 확인만 되면 신체등급 5급 판정을 받아 군 복무가 실질적으로 면제되었다. 그런데 국방부는 돌연 기준을 바꾸어 성별불일치 상태여도 '이성호르몬요법 등'을 받지 않으면 신체등급 4급 판정을 받고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호르몬요법은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느끼는 성별에 대한 위화감 정도, 신체 및 경제적 상태 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조치 중 하나일 뿐이며, 호르몬요법 여부와 상관없이 트랜스젠더는 성별정체성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트랜스젠더 의료에 관하여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은 세계트랜스젠더보건의료전문가협회(WPATH)는 호르몬요법, 성확정수술 등 의료적 조치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임을 강조하고 있다. 성소수자 단체에서는 이러한 점들을 지적하며 규칙 개정을 비판했으나 끝내 국방부는 개정을 강행했다. 그 결과 원고는 사회복무요원 소집 처분을 받고 결국 법원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 ▲ 성별불일치 병역판정 기준 개정안에 대한 의견제출 기자회견 ⓒ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 |
|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원고의 구체적 삶을 외면한 법원 판결
원고를 지원한 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 대리인단은 우선 개정된 규칙이 '6개월 이상의 이성호르몬 치료 등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회적 변화나 신체적 변화로 군 복무에 지장이 초래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신체등급 5급 판정을 내리고 있는데, '등'이라는 예시적 규정을 두었기에 여기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도 포함된다고 이야기했다. 즉, 설령 원고가 호르몬요법을 받지 않더라도 최초 진단 후 지속적으로 정신건강의학 치료를 받고 있는 이상 개정 규칙에서도 5급 판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만일 오직 이성호르몬요법을 받은 경우에만 신체등급 5급 판정을 받는 것이 규칙의 내용이라고 해석한다면 이는 헌법상 법률유보원칙, 평등원칙, 비례원칙에 위반된다고도 이야기했다. 특히 사회적으로 이미 여성으로 살고 있는 원고를 남성으로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게 하는 것은 비례원칙에 위반하여 심각한 고통을 주는 행위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이러한 대리인단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규칙 문언의 해석을 했을 때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고 사회적 변화가 있다면 '이성호르몬치료 등'에 해당될 수도 있다고는 보았다. 다만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6개월 이상의 이성호르몬 치료나 성전환 수술을 받지 못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는 단서를 두었다. 규칙 문언에서 치료에 따라 차등을 두고 있지 않음에도 법원이 새롭게 단서를 붙인 것이다.
그러면서 법원은 원고에게 호르몬요법이나 성전환수술을 받을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이지는 않기에 단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나아가 규칙이 위헌·위법하다는 원고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고가 평소에 여성적인 모습으로 주변에서도 언니나 누나로 호칭되고 있다 하더라도 복무가 어려울 정도의 사회적 변화가 없다고 보았다. 대체 법원이 말하는 사회적 변화가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소수자 인권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바란다
"이처럼 여성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한 개인에게 국가가 남성에게만 요구되는 의무를 강요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인가에 대해 고민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물며 그 여성이 자의에 반해 남성의 삶을 살아온 과거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면, 그러한 아픈 기억을 딛고 어렵게 여성의 삶을 영위하게 된 여성이라면, 다시금 국가로부터 장기간 남성의 삶을 강요받게 될 때의 인격적 고통이 얼마나 클지 헤아려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원고는 최후변론에서 위와 같이 이야기했다. 재판부가 원고의 진지하고 절실한 호소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였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원고는 항소를 제기했다. 곧 진행될 항소심에서 법원이 트랜스젠더 여성인 원고의 구체적 삶을 검토하고 소수자 인권 최후의 보루의 역할을 다하길 바란다. 그때까지 대리인단도 원고와 함께 싸워나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2016년 4월 21일 민변 변호사들의 공익인권변론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자 설립되었습니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월간변론 편집팀의 '시선'은 민변 회원들에게 매월 발송되고 있는 '월간변론'에 회원들이 기고하는 글입니다. '시선'은 최근 판례와 주요 인권 현안에 대한 편집위원 및 회원들의 단상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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