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사활 건 소형 원자로 개발 경쟁, 치고 나간 한국 스타트업
2026.04.30 04:46
인공지능(AI), 전기차 등 첨단 산업의 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만으로는 기저 전력을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드러나면서, 탄소중립과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원자력이 다시 주목받는 추세다. 특히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소형모듈원전(Small Modular Reactor, SMR)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핵심 해법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원자력 산업은 고도의 기술력과 안전성을 요구해 진입 장벽이 매우 높다. 이를 뒷받침할 전문 인력과 인프라 확충 속도도 수요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 창업기업인 알엑스주식회사는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쌓은 기술력과 스타트업의 혁신 동력을 결합해 SMR 엔지니어링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알엑스주식회사의 이강헌(43) 대표를 만나 SMR의 가능성과 원전 산업의 미래에 대해 들었다.
알엑스주식회사는 한국원자력연구원 SMR 부서 출신 연구원을 주축으로 설립된 원전 엔지니어링 스타트업이다. 차세대 원전이라고 불리는 SMR은 대형 원전보다 용량을 줄이고, 모듈식 설계를 채택한 원자로로, 수요에 맞춰 유연하게 설치하고 운영할 수 있다. 알엑스주식회사는 SMR 설계 및 인허가를 중심으로 한 엔지니어링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원전 주요기기 가동 중 상태 예측 등의 기술 개발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이강헌 대표는 카이스트(KAIST) 기계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정부출연연구소인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9년간 근무했다. 그는 SMR 설계 및 인허가 경험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SMR 인허가를 선도한 국가 중 하나로, 이런 경험을 보유한 조직은 전 세계적으로 희소하다. 2023년 정부출연연구원 창업 제도를 통해 알엑스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처음엔 원전 재료물성 현장평가 기술 개발사로 출발했다. 원전 재료물성 현장평가란 원자력 발전소의 핵심 부품이나 재료의 건전성을 파괴하지 않고 확인하는 기술이다. 알엑스주식회사는 비파괴 검사 장비를 개발해 신규 원전 개발 시 구조 건전성 평가에 도입할 구상이었다. 하지만 과감하게 SMR 엔지니어링으로 피벗(pivot, 사업모델 전환)을 단행했다. 격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포착한 가장 큰 변화는 원전에 대한 인식 전환이다. “전기를 많이 쓰는 AI와 전기차가 상용화 되면서 고밀도 에너지 수요가 늘었습니다. 여기에 러시아 전쟁, 이란 전쟁 같은 대외 변수로 천연가스, 석유 가격이 폭등하면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는 원전이 재조명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체코 원전 수출 사례처럼, 국가 간 협력을 기반으로 한 신규 대형 원전 프로젝트가 활발히 논의되며 원전 시장의 성장성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보다 유연하고 수요 맞춤형으로 대응할 수 있는 SMR도 화두로 부상했다. “AI 산업의 급격한 성장으로 기존 전력 수요 구조와 다른 형태의 전력 수요가 증가했습니다. 구글, 아마존, 오픈에이아이 같은 빅테크 기업은 자체 데이터센터 전력 확보를 위해 SMR 도입과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죠. SMR이 단순한 보완 기술을 넘어 새로운 전력 공급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알엑스주식회사는 원자로를 직접 제조하거나 건설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기술을 결합한 엔지니어링 역량을 기반으로 에너지 기업, 글로벌 EPC, 데이터센터 사업자와 공동사업을 하는 식으로 SMR 개발에 참여한다. “제조, 건설 중심의 전통적인 원자력 기업과 달리 SMR 설계, 인허가 과정에서 필요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팹리스(Fabless) 방식의 사업 모델입니다. 리스크는 줄이되, 기술과 지식에 집중하는 전략이죠.”
관건은 엔지니어링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원자력 기술에 AI를 결합한 AX(AI Transformation, AI 전환)를 추진하고 있다. “단순한 AI 적용이나 문서 자동화가 아니라, 원자력 산업의 복잡한 설계, 검증 절차, 규제의 맥락에 AI를 결합하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AX로 설계 생산성을 향상하고 규제 대응 효율은 높일 수 있죠. AX의 일환으로 2025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AI 글로벌 빅테크 사업에 선정됐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인허가 설계를 AI로 효율화하는 프로젝트를 수행 중입니다.”
알엑스주식회사는 원전 산업의 인식 변화와 맞물려 큰 주목을 받고 있다. 2024년 시드투자를 유치한데 이어 지난 1월 프리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그램과 ‘딥테크 팁스’에 선정되며 기술력도 공인받았다. 최근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배치 6기’ 기업에 선정됐다. 이 기회를 해외 진출 발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굵직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포트폴리오도 탄탄하게 쌓고 있다. 단순 용역을 넘어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연구원과 SMR 공동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정부가 주도하는 수천억원 규모의 i-SMR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알엑스주식회사의 다음 목표는 해외다.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자체 전력 확보를 위해 SMR에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지금이 기회입니다. 현재 SMR 개발에 도전장을 내민 기업 중 SMR 설계 및 인허가 경험을 보유한 인력을 둔 기업은 전세계적으로 많지 않습니다.”
이 대표는 국가 경쟁력의 한 축인 원자력 기술 개발에 기여할 수 있어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세금으로 축적한 공공 기술은 연구실을 넘어 실제 산업 현장에서 꽃피울 때 그 가치가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출연연구소의 창업 지원 제도는 저희 같은 딥테크 스타트업에 든든한 요람이 돼 줍니다. 기술 사업화에 성공해 이 결실을 다시 국가에 환원하는 선순환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고 싶습니다. 저희의 도전이 대한민국이 SMR 수출 강국으로 도약하는데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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