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8번의 해외 출장… 비용 공개는 17%뿐
2026.04.30 00:57
일정 대부분이 유명 관광지 방문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체육위원회 소속 도의원 6명은 2022년 6박 8일 일정으로 프랑스·모나코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에는 도의회 사무 직원 등 13명이 동행했다. 이들은 도의회에 제출한 출장 계획서에 “문화 관광 콘텐츠 개발 사례를 조사해 제주 관광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썼다. 이들이 출장을 다녀와 정리한 보고서를 보면 8일간 소화한 일정 13개 중 기관 방문 일정은 이우환 미술관, 프랑스 한국문화원, 유네스코 본부, 퐁피두센터 등 4개(31%)였다. 나머지 일정은 전부 모나코 역사 유적, 아비뇽 역사 지구, 파리 몽파르나스 타워 전망대 등 관광지를 도는 것이었다. 이들이 제출한 계획서에서 출장 예산은 1인당 320만원. 그러나 실제 쓴 돈은 알 수 없다.
충남도의회 행정문화위원회 소속 도의원 8명 등 14명은 2022년 10월 오스트리아·독일·프랑스 등 유럽 3국을 6박 8일간 방문했다. “충남미술관 등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해외 우수 시설을 실사하겠다”는 취지였다. 8일간 총 11개 일정을 소화했는데 이 중 기관 방문은 독일 바트 크로이츠나흐 관광청 등 4개였다. 나머지는 모두 오스트리아 쇤브룬 궁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등 관광지 방문 일정이었다. 이들이 출장비로 얼마를 썼는지 알 수 없다. 해외 출장을 가려면 출장 계획서와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하지만 계획서를 찾을 수 없었다. 출장 보고서에도 비용은 나와 있지 않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2022년 7월부터 작년까지 3년6개월간 전국 17개 시·도의회 의원들이 다녀온 해외 출장은 총 558회였다. 해외 출장에 총 128억4616만원을 썼다. 출장당 2302만원꼴이다. 그러나 출장 보고서에 비용을 공개한 경우는 95회(17%)에 그쳤다.
지방의원들의 해외 출장을 두고 ‘외유성 깜깜이 출장’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방의원이 해외 출장을 가려면 출장 계획서를 의장에게 제출하고 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한다. 다녀온 뒤에는 출장 보고서를 의회 홈페이지에 올려야 한다.
하지만 한 전직 시의회 의장은 “의장단도 해외 출장 일정이 많아 의원들이 해외 출장 가는 걸 꼬장꼬장하게 따지기는 어렵다”고 했다. 출장 계획서와 결과 보고서도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현직 광역의회 의원은 “지방의원 대신 의회 직원이 계획서와 보고서를 다 써놓고 출발한다”며 “과거 제출한 계획서와 보고서를 그대로 베껴 내는 사례도 봤다”고 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방의원 해외 출장과 관련해서는 돈 문제가 특히 불투명하다”며 “출장 보고서에 출장 비용을 공개한 사례가 558회 중 95회(17%)밖에 안 된다”고 했다. 출장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얼마를 썼는지 대부분 밝히지 않는 것이다. 경기도의회·강원도의회·충북도의회·대전시의회·대구시의회 등 5곳은 해외 출장 보고서에서 비용을 공개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한 도의회 관계자는 “출장 중에 의원들이 사비를 쓰는 경우가 많고 직원들도 함께 가기 때문에 비용을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고 했다.
2022~2025년 의원 수 대비 출장 횟수가 가장 많은 시·도의회는 제주도의회였다. 총 67회를 다녀왔다. 제주도의원은 46명인데, 의원 1명이 평균 1.5회 출장을 다녀온 것이다. 제주도의회에는 해외 출장을 16회 다녀온 의원도 있었다.
경실련은 “출장 보고서를 분석해 보니 ‘나들이’로 의심되는 출장도 여럿 찾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2024년에는 제주도의원 9명이 “문화·관광 분야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겠다”며 7박 9일 일정으로 헝가리·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오스트리아 4국을 방문했다. 일정 11개 중 6개가 헝가리 부다페스트 세계문화유산 지구,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성, 오스트리아 빈 음악회관 등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2023년에는 제주도의회 지역문화특화발전연구회 소속 의원 8명이 “제주-몽골 문화 비교 분석을 통해 제주 문화 정체성을 확립하겠다”며 몽골을 찾았다. 이 출장에서 사흘 일정 중 이틀간 국립칭기즈칸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테를지국립공원 등 관광지를 들렀다.
이에 대해 제주도의회 관계자는 “중국, 동남아 등에서 방문해 달라는 요구가 많다”며 “관광지는 의원들이 각자 개인 부담으로 들르는 것”이라고 했다.
대전시의회도 제주도의회만큼 해외 출장이 잦은 지방의회였다. 대전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소속 의원 5명 등 8명은 2022년 이탈리아·스위스·프랑스로 6박 8일 출장을 떠났다. 8개 일정 모두 프랑스 에펠탑,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성당, 로마 콜로세움 등 관광지였다. 공식 일정은 프랑스 파리에서 간담회뿐이었다.
비위 사례도 자주 나온다. 항공권을 위조해 예산을 부풀린 게 대거 적발된 일도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22~2024년 전국 지방의회의 해외 출장 915건을 전수 조사해보니, 405건(44%)에서 항공권 위조 사례를 적발했다. 충남도의회 도의원 7명 등 10명은 2022년 네덜란드·벨기에·독일 출장을 가면서 1인당 338만원인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예약한 뒤 화면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 이코노미석을 예약한 것처럼 위조했다. 이들은 이 항공권으로 338만원을 지원받았다. 이후 비즈니스석 항공권 예약을 취소하고 164만원짜리 이코노미석 항공권을 발권해 174만원씩 차액을 챙겼다.
출장 예산으로 술, 간식 등을 산 사례도 178건 있었다. 전남도의원 10명 등 16명은 2024년 베트남 출장 때 예산 76만원으로 술과 컵라면, 육포, 화투 패, 트럼프 카드 등을 샀다. 출장을 가서 화투판을 벌인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권익위는 “개인적으로 필요한 소소한 것까지 공금으로 사는 건 문제”라고 했다.
이런 비위 사례를 적발한 권익위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부산경찰청은 작년 4월부터 시의원과 공무원, 여행사 직원 등을 수사하고 있다. 이들은 2023년 2월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유럽과 싱가포르 출장을 다녀왔는데, 항공권 영수증을 조작해 비용을 수천만 원 부풀린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빼돌린 예산을 숙박비와 식비 등에 쓴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해 항공권을 위·변조해 경비를 부풀린 혐의로 평택시의원 11명을 검찰에 넘겼고, 인천경찰청도 같은 혐의를 받는 구의원 등 24명을 지난달 17일 검찰에 송치했다.
지방의원들은 해외 출장을 가면서 관광 시간을 늘리기 위해 ‘꼼수’를 쓰기도 한다. 시의회의 한 공무원은 “일정을 짤 때 관광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주말을 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예를 들어 목요일~월요일로 일정을 잡으면 금요일 오전에 공식 행사 1~2개 소화하고 나머지 시간엔 떳떳하게 관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 눈을 피해 임기 말 해외 출장을 떠나는 의원도 있다. 한 시의회 관계자는 “임기 말에 공무상 떠나는 출장이 어디 있겠느냐”며 “대부분 관광 목적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지방의원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시의원은 “요즘은 각국 지방 의회 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며 “우리나라 국격이 올라 해외 출장 기회가 늘고 있는데 관광으로만 폄하할 건 아니다”라고 했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글로벌 시대에 공무상 해외 출장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며 “다만 출장 심사 기준을 강화하고 비용 등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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