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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수요 줄이려는 이란…달러 공급 확대로 맞불 놓는 미국

2026.04.29 13:01

[김기훈의 생각]
미·이란 전쟁, ‘페트로 달러’ 대전으로 확산
이란, 해협 통행료로 위안·유로도 받기로
달러 수요 줄여서 미국 패권 약화 시도
미국, 중동·아시아에 ‘달러 공급 센터’ 계획

중동전쟁이 미국 달러의 패권을 둘러싼 '쩐의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18~20일 호르무즈 해협에 갇힌 선박을 점으로 표시한 마린트래픽의 그래픽./마린트래픽 AFP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미국의 달러 패권을 둘러싼 ‘쩐의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28일 이란 ILNA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는 지난 21일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통제권을 명시하고 통행료 징수의 법적 근거가 되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주권 확립에 관한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후속 조치로 이란 중앙은행은 통행료를 이란의 공식 화폐인 리알, 중국 위안, 미국 달러, EU(유럽연합)의 유로로 각각 송금받을 수 있는 특별 계좌를 만들었다.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해군이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수수료를 부과하고, 통과를 원하는 배들이 수수료를 이란 중앙은행의 계좌에 입금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란, ‘페트로 달러’에 도전

이란이 달러 외에 다른 통화를 통행료 징수 수단으로 명시한 것은 석유 거래 때에는 달러를 사용해 왔던 이른바 ‘페트로 달러’ 체제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세계 44개국 대표는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튼우즈에 모여 새로운 국제금융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들은 금본위제를 채택해 미국과 영국은 금과 자국 통화의 교환 비율을 정하고, 다른 나라들은 미국의 달러나 영국의 파운드에 자국 통화의 가치(환율)를 연결시키도록 했다.

이란은 최근 미국 달러 외에 중국 위안과 EU의 유로로도 호루무즈 해협 통행료를 받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사진은 지난 2월 1일 미국 반대 슬로건을 외치는 이란 의회의 의원들./이란 의회

이렇게 탄생한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가장 국력이 센 미국의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미국이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등의 자금을 대기 위해 보유한 금보다 많은 달러를 발행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달러 가치에 대한 의심이 커졌다. 결국 19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달러의 금본위 제도를 폐지했다.

미국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동원했다. 닉슨 대통령은 1974년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군사 안보를 보장하는 대신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수출 대금을 미국 달러로 결제하도록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수출 대금으로 받은 달러로 미국 국채를 사면서 미국의 국채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른바 ‘페트로 달러’의 출범이다.

이란이 통행료를 달러 이외의 자금, 특히 중국 위안화로 받겠다는 것은 미국이 50년 넘게 유지해 온 페트로 달러 패권에 정면 도전하는 조치다. 특히 세계 최대 수출국인 중국이 무역 거래에서 위안화 비중을 높이기 위해 국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이란이 ‘페트로 위안’을 지지하고 나선 셈이다.

미국, 달러 공급 늘릴 계획

미국도 즉각 대응책을 내놓으며 맞서고 있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24일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중동 및 아시아 국가들과 상설 통화스와프(통화 교환)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캐나다·영국·EU(유럽연합)·일본·스위스 5개국과만 맺고 있는 상설 통화스와프 제도를 중동과 다른 아시아 국가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은 이란의 달러 패권 도전에 맞서 우방국들에게 달러 공급을 늘리는 대응책을 내놓았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 4월 22일 상원 예산위원회 청문회에서 답변하는 모습./EPA 연합뉴스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맺으면 자국 화폐를 담보로 맡기고 달러를 마음대로 빌릴 수 있다. 통화스와프를 맺은 국가는 달러가 풍부해지기 때문에 인접 국가에 달러를 공급할 여력이 생긴다. 이와 관련해 베센트 장관은 상설 통화스와프 대상국 확대가 중동과 아시아 지역에 새로운 ‘달러 공급 센터’를 만드는 계획의 첫 번째 주요 작업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베센트 장관은 또 달러 지배력과 기축통화 지위는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을 통해 강화되며, 문제 소지가 있는 대체 결제시스템의 확산을 억제하는 것도 정책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중동전쟁을 계기로 중국 위안화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을 경계하는 의미로 풀이된다.

달러 위협할 대안 아직 없어

이란이 미국의 달러 패권에 도전하고 미국이 달러 공급 센터 확대로 맞서고 있지만, 미국의 달러 패권이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전망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2024년에 석유 대금 결제 수단을 미국 달러 이외의 다른 통화로 다양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페트로 달러의 위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사우디 아라비아가 보유한 미국 국채도 더 늘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달러 외에 다른 통화로 석유 수출 대금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달러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사진은 무함마드 빈 살만(오른쪽) 사우디 왕세자가 지난 4월 15일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종리와 만난 모습./파키스탄 총리실

미국이 달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세계 중앙은행이 미국의 달러나 국채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미국은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달러 규모가 과거와 큰 변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달러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중국 위안화의 경우 세계무역시장이나 국제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 미미한 실정이다. 월스트리트 전문가들은 전쟁과 금융위기 등 불안 요인이 생기면 전세계 자금이 미국 달러로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달러를 대체할만한 통화는 아직 없는 상태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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