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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퇴직연금 실물이전제도의 허상

2026.04.29 08:51

실물이전 현실적 제약, 현금화 강요
이전비용·투자공백, 가입자부담 가중
규제완화로 퇴직연금 역할 강화해야
2026년 1분기(금융감독원) 퇴직연금 운용자산이 492조1502억원으로 올 해 중 500조원은 거뜬히 넘어설 전망이다. 유형별 비중은 DB형 42.2%, DC형 28.7%, 개인형IRP 29.1%다. 하지만 운용자산의 급속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유형별·상품별 수익률은 극단적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면 DB형의 91%에 달하는 원리금보장의 최근 1년 수익률은 3.22%로 인플레이션 감당도 버거운 수준이다. 반면 원리금비보장의 최근 1년 수익률은 DC형이 25.17%이며 개인형IRP는 22.54%로 DB형 원리금보장의 7~8배에 달한다.

100세 시대 은퇴자의 안정적 노후생활은 국민연금뿐 아니라 퇴직연금 수익률이 큰 영향을 미친다. 적정 비중의 원리금비보장 상품을 편입해 시장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여 투자전략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가입자 스스로 '나의 노후는 내가 책임진다'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결국 퇴직연금 운용 포트폴리오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필요성이 커진다.

'실물이전제도', 디테일에 숨겨진 '악마'들
퇴직연금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으며 2024년10월31일 '실물이전제도'가 시행됐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2025년8월)에 따르면 제도 도입 후 8개월(2024년10월~2025년6월) 동안 약 8만7000건에 달하는 5조1000억원의 자금이 이동했다.

2024년11월부터 초기 3개월(금융감독원, 2025년2월) 동안 증권사는 4051억원 순증하고 은행은 4611억원 순유출되면서 총 2조4058억원의 퇴직연금이 이동했다. '은행에서 증권'으로 이탈은 6491억원이지만 '증권에서 은행'으로 넘어간 자금은 절반 수준인 2382억원에 불과하다. 수익률과 시장 대응력에 따라 업권간 자금 이동 방향이 바뀌었다.

고용노동부(2024년10월10일)가 밝힌 실물이전 대상은 신탁계약 형태의 원리금보장상품(예금, GIC(신탁공제형), ELD, DLB 등), 공모펀드(MMF 제외), ETF 등으로 아주 폭넓다. 하지만 '실물이전제도'가 실제 작동되는 과정은 제도 취지와 기대 효과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실물 이전'이 아니라 실제로는 상품 해지 후 '현금'으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물이전 제외 상품과 수관회사 미취급 상품은 기존과 같이 현금화해 이전해야 한다. KB증권 안내문에 따르면 디폴트옵션, 지분증권, 리츠, 사모펀드, ELF, 파생결합증권, RP, MMF, 종금사 발행어음, 보험계약, 언번들링계약(운용٠관리의 분리) 등은 원천적으로 실물이전 대상에서 배제된다.

특히 정부가 적극 권장하는 디폴트옵션이 빠진 것은 정책의 일관성을 의심받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5년말 기준 디폴트옵션 가입자는 734만명, 적립금은 53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들은 실물이전을 원해도 가입 상품을 해지해야만 원하는 금융사로 옮길 수 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기회비용
개인 투자 DC와 개인형 IRP는 적립금의 '전부 이전'만 가능하다. 따라서 계좌 내 실물 이전 불가 상품은 현금화해 이전해야 한다. 퇴직연금 상품은 '투자상품'이 아니라 '금융사 계좌에 종속된 상품'으로 가입자의 이전 선택권이 없다는 의미다. '전부 이전'을 강제하는 구조는 직간접적인 거래비용을 유발한다.

A은행에서 정기예금(연5.0%)과 손실 중인 펀드 가입자가 B증권사로 이전하는 경우, 고금리 예금은 남기고 싶어도 부분 이전은 허용되지 않는다. B증권사가 동일한 예금상품을 취급하지 않으면 중도해지가 불가피하다. 중도해지 이자 손실은 가입자가 부담하는 직접 비용이다.

또한 불확실한 이전 기간은 투자 공백과 타이밍 실기로 이어진다. 금융감독원은 실물 이전에 최소 3영업일이 소요된다지만 이는 실물 이전 상품에만 해당된다. 펀드 환매는 최소 T+3~5일이며 해외펀드는 훨씬 더 길다. 예금 중도해지 처리는 1~2일이 추가로 필요하다. 재투자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7~10영업일 이상이 소요된다. 이 기간 동안 시장 변동 위험은 가입자가 감당할 몫이다. 요즘처럼 변동성이 격심한 시기는 치명적이다. '실물이전 불가 상품 보유 시 현금화 소요 기간이 별도로 발생한다'는 금융사의 안내 문구는 이전을 가로막는 경고로 들린다.

실물 이전 초기 3개월(2024년11월~2025년1월) 데이터는 상품 특성과 수익률이 퇴직연금 이전의 핵심 요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기간 중 은행권 수관 자금의 75%는 업권내(은행 → 은행) 이동이었다. 은행은 안정성과 예금 중심의 표준화된 상품구조로 비교·판단이 용이하다. 반면 증권사는 업권간(은행·보험 → 증권) 이동이 63%로 높다. 자본시장 상품의 라인업이 다양하고 수익률에 민감한 고객 니즈가 반영된 결과다.

실효성 가로 막는 법과 관행들
현재 실물이전은 동일 제도내(DB → DB, DC → DC, IRP → IRP)에서만 가능하다. 또한 DB형의 실물 이전은 회사가 계약한 금융사로만 이전할 수 있으며 거래 금융사의 추가·변경은 노사협의(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4조 2٠3항) 사항이다. 수익률이 저조한 원금보장형 운영 방식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다. 금융감독원(2026년1분기)에 따르면 퇴직연금 적립금의 70%가 원금보장 상품이다. 은행 DB형의 원금보장형 비중은 95.0%에 달한다. DB형 가입자는 사실상 금융사 선택권이 없는 셈이다.

2025년7월 실물 이전 '사전 조회 서비스'가 도입됐지만 이 또한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이 서비스는 실물 이전 신청 전 상품별 이전 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확인에 1~2영업일이 소요된다. 또한 실물이전 사전 조회 시와 달리 최종 실물 이전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 사전 조회를 통해 감당 가능한 손실 여부 등을 미리 확인하지만 이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장 위험과 비용은 모두 가입자 몫이다.

'상품' 아닌 '자산' 단위 이동 허용해야
실물 이전 제도가 실질적인 가입자 선택권 보장으로 작동하려면 상품 표준화와 계좌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첫째는 상품 단위 이전이 가능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ETF뿐 아니라 공모펀드 역시 판매채널과 무관하게 이전이 가능하도록 상품 코드를 통합해야 한다. 둘째는 부분 이전을 허용해야 한다. 전체 계좌가 아니라 특정 자산만 이동할 수 있어야 투자 전략의 연속성이 유지된다. 셋째는 고용노동부가 중장기과제로 제시한 DC에서 IRP로의 실물 이전처럼 제도간 이동 제약을 풀어야 한다.

네째는 이전 기간 단축이 필수적이다. 현재 10여 일 이상 소요되는 이전 절차를 결제 시스템 통합과 자동화를 통해 T+2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다섯째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최소화하거나 적정 상한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고령화로 퇴직연금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특히 생산적 금융과 성장의 대전환을 위해 자본시장의 돈줄 마련이 절실하다. 미국의 401k(퇴직연금 계정)처럼 시장의 강력한 유동성 공급 핵심 축으로 퇴직연금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실물 이전'과 '현금 이전'의 괴리를 방치한다면 '퇴직연금 실물이전제도'는 가입자 보호가 아닌 금융사간 자금 쟁탈 수단으로 전락하고 가입자의 손실만 키울 것이다. 가입자 입장에서 근본적 제도 개선 없이는 500조원이 넘어 가는 퇴직연금 시장의 건강한 경쟁과 수익률 개선의 정책 목표 달성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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