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리포트]'OPI'가 뭐길래...삼전 노사가 대립각 세우는 까닭
2026.04.29 05:40
[편집자주] 인공지능(AI) 시대 메모리 수요 급증으로 반도체 초호황기를 맞이한 삼성전자가 예기치 못한 노조의 성과급 투쟁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삼성전자 만의 초격차 경영전략 추진이 시급한 상황에서 내부 갈등에 발이 묶여 경쟁력을 잃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전례 없는 수익이 오히려 분쟁의 불씨가 된 역설적인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삼성전자는 현재 연초에 세운 목표를 넘었을 경우 초과 이익의 20% 한도 내에서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초과이익성과급(OPI)'을 운영 중이다. 2001년 'PS'라는 이름으로 도입돼 2014년 명칭이 OPI로 변경됐지만 제도의 큰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OPI 성과급 지급 재원을 EVA에 근거해 산정한다. EVA는 세후 영업이익에서 시설투자액, 자본조달 비용 등을 빼고 남은 것으로 영업활동을 통해 얻은 순수한 이익을 말한다. EVA 산식에 들어가는 자본비용이나 투하 자본의 구체적인 수치는 영업비밀에 해당하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다.
노조는 EVA 기준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직원들이 알기 어려운 깜깜이 공식으로 보상 재원 산정이 불투명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노조는 성과급 기준을 EVA에서 영업이익으로 바꾸고 영업이익의 15%를 보상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의 성과급 체계 개편이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9월 노사 합의를 통해 성과급인 초과이익분배금(PS) 지급 한도인 '기본급의 최대 1000%·연봉의 50%'를 폐지하고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기반으로 SK하이닉스는 올해 초 구성원에게 역대 최대 수준인 기본급(연봉의 20분의1) 2964%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연봉으로 따지면 148.2% 수준이다. 연봉이 1억원인 직원은 1억4820만원의 성과급을 받게 된 셈이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많은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1인당 6억원가량의 보상이 주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에 삼성전자 노조는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며 SK하이닉스보다 더 큰 보상안을 요구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사측은 일률적으로 EVA 대신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15%의 성과급을 지급하고 상한제 폐지를 명문화하자는 노조의 요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메모리 사업만을 영위하는 SK하이닉스와는 달리 삼성전자는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고 영업이익도 부서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노조의 요구대로 영업이익만을 기준으로 할 경우 손실을 낸 사업부는 성과급을 한푼도 지급받을 수 없다. 이에 따라 회사는 사업부별 맞춤형 성과급 체계를 제안하고 있다. 세트 부문은 EVA 기반의 현행 성과급 체제를 유지하고 메모리사업의 경우 매출과 영업이익 국내 업계 1위를 달성시 영업이익의 10%와 추가 재원을 투입해 경쟁사 이상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식이다. 또한 특정 조건을 확정해 명문화하기보다는 매년 실적에 따라 보상을 협상을 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조는 '영업이익 15%'와 '상한선 폐지'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 재원으로 설정하는 '지표의 단순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노조는 요구안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5월21일부터 6월7일까지 18일 간 총파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 경우 최대 30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삼성전자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성과급 체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미 경쟁사가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는 방식의 제도 개선을 이뤘기 때문에 삼성전자 노조가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고, 결국은 현 보상 체제를 손보지 않으면 같은 일이 되풀이 될 것"이라며 "경쟁사에 견줄 수 있는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는게 타협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투명성을 높이려면 세후 당기순이익을 성과급 지급 기준으로 삼는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며 "지급 방법 역시 장기적인 관점에서 퇴직연금에 산입하거나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등 주식으로 지급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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