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은행의 시간이 오고 있다
2026.04.28 17:35
산업화 시기 은행이 중추적 역할
IMF 이후 기업 금융 쪼그라들어
우크라·이란전 이후 공급망 중요
자본규제 풀어 첨단 산업 지원을
실제 한국 경제개발 역사에서 금융을 빼놓을 수 없다.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 직전인 1961년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억 700만 달러 수준이었다. 산업을 일으키고 투자를 하려고 해도 돈이 없었다. 그렇게 저축 운동이 시작됐다. 정부는 금리를 연 20~30%로 높여 예금을 권장했고 은행을 움직여 특정 기업에 자금을 몰아줬다. 흔히 말하는 관치다.
그렇게 한국은 중화학공업과 자동차·제철·전자 산업을 키웠다. 자원도 기술도 없는 나라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유일한 길이었다. 삼성전자만 해도 1992년 16M D램 설비투자를 위해 옛 재무부(현 재정경제부)로부터 1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외화 대출을 승인받았다. 그해 외화 대출 한도의 약 37%다. 압축과 생략이 많지만 금융 쪽에서 보는 경제 발전사가 이렇다.
이 방식이 벽에 부딪힌 게 외환위기다. 종합금융사의 과도한 단기 외화부채와 대기업의 무리한 차입 경영이 맞물리면서 한국은 ‘부도의 날’을 맞았다. 이후 부채비율 200% 준수를 내세워 기업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대우가 쓰러지고 5대 은행인 ‘조·상·제·한·서’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때부터 빚의 무서움을 알게 된 기업들은 대출을 자제했다. 결국 은행은 기업금융을 떠나 부동산금융으로 옮겨탔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판이 뒤집히고 있다. 원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1기 집권 때부터 시작된 미중 갈등과 분절은 코로나19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겪으면서 공급망, 에너지 수급 재편의 계기가 됐다. 두 번째 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은 제조업의 미국 회귀와 첨단산업 경쟁력을 위한 관세와 무역 압박을 전방위로 가하고 있다.
반작용도 커진다. 중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은 너 나 할 것 없이 서랍에 묵혀 있던 산업 정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국내 산업 보호와 육성 없이 미국의 호의에 기대는 것만큼 위험한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이란 전쟁은 결정타다. 전략산업과 국가 안보를 위한 방위산업 없이는 자유무역도 생존도 불가능해지고 있다. 뒤늦게 취소했지만 인도네시아 재무부 장관이 이란 호르무즈처럼 믈라카해협에서 통행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 자체가 국제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기업도 홀로 버티기 힘들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은행권의 도움이 필요하다. 산업 정책의 부활은 금융 (지원) 정책의 부활로 뒷받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성장펀드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미국과 일본처럼 대대적으로 은행 자본 규제를 풀자. 금산분리 같은 도그마에서 벗어나 국가 총력전을 벌일 때다.
메가뱅크에 대한 고민도 했으면 한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어가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경쟁에서 비교 우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내외에서 저리로 자금 조달이 가능한 대형 은행이 도움이 된다. 어떻게 하면 체계적으로 국내 산업을 뒷받침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밑그림도 있어야 할 것이다.
국책금융기관의 업그레이드 역시 필수다. 올해로 출범 50주년을 맞은 한국수출입은행과 신용보증기금, 65주년이 되는 IBK기업은행 같은 국책금융기관이 첨단산업 지원의 선봉장이 될 수 있도록 대규모 자본 확충과 시스템 개편에 나서야 한다.
캐나다 정부는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27조 원 규모의 국부펀드를 출범시켰다. 이제 국제사회는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 1970~1980년대처럼 은행과 금융정책이 중요한 시기가 오고 있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경쟁사와 맞서 싸울 수 있는 또 하나의 무기를 갖느냐 마느냐는 당국과 정치권의 의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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