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마다 소환되는 '한예종 이전'…"균형 발전" vs "경쟁력 약화"
2026.04.28 11:43
선거철마다 캠퍼스 유치전 과열
한예종 "본교 목소리 경청해달라"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캠퍼스를 광주광역시로 이전하는 법안이 발의되자 한예종을 비롯한 예술계의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무너진 지방의 예술 생태계를 복원하려는 취지라지만, 광주 이전이 현실화할 경우 한예종 인재 이탈과 함께 국가 전체의 문화예술 경쟁력이 훼손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번 논란은 지난 22일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예종 광주 이전안을 담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며 시작됐다. 법안의 핵심은 서울 석관동·서초동·대학로에 분산된 한예종 캠퍼스를 광주로 통합 이전시키는 것이다.
한예종의 숙원 사업이던 대학원 개설도 법안에 포함됐다. 현재 한예종은 교육부가 아닌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각종 학교'로 분류돼 전문사 과정을 이수한 학생도 정식 석·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없는데, 광주 이전과 함께 이 같은 구조적 한계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법안을 주도한 광주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 균형발전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재학생과 교수, 교직원을 포함해 5000명이 넘는 인적 자원을 보유한 한예종이 광주로 터를 옮기면 지역의 예술 생태계가 복원되고 지역 간 문화 격차가 해소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특히 광주는 비엔날레를 비롯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광주시립미술관 등의 문화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한예종을 품기에 최적화된 도시라고 강조한다.
사실 한예종 이전은 10년 넘게 이어진 해묵은 논의다. 2009년 석관동 캠퍼스 안에 자리잡은 의릉(조선 제20대 임금인 경종과 그의 계비 선의왕후의 묘지)이 다른 조선왕릉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후 캠퍼스 이전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후 서울 송파구, 노원구를 비롯해 경기도 고양시, 과천시, 파주시, 하남시 등 각 지자체장 후보들이 선거철마다 한예종 유치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올해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광주전남특별시장 후보로 선출된 민형배 의원이 한예종 광주 이전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같은 당의 조상호 세종시장 후보도 한예종 유치를 약속하고 나섰다.
예술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는 예술 교육은 단순히 학교 수업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데, 도시 전체가 '배움의 터전'인 서울을 떠나면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든다는 지적이다. 이는 결국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배출한 한예종의 질적 기능 저하와 국가적 손실로 이어진다.
방세희 한예종 총학생회장은 "반나절이면 삼청동 갤러리 7~8곳을 둘러볼 수 있는 서울과 달리 광주는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대학 졸업 후 일자리 찾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전이 이뤄지면 한예종은 우수 인재 유치에 실패해 경쟁력을 잃고, 지자체는 껍데기만 얻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예술산업의 특수성을 간과한 법안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지역별로 생산한 부품을 조립하면 완성되는 제조업과 달리 예술은 창작자와 기획자, 기술진이 동시간에 한 공간에 모여 끊임없이 상호작용해야 하는 과정이어서다.
최여정 문화 평론가는 "분업이 가능한 제조업과 달리 창의성이 요구되는 예술산업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야만 가능하다"며 "지방소멸 문제에 대한 대응은 마땅히 필요하지만, 예술산업의 작동방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예종 이전이 지방의 자생력 확보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예종 이전 외에 지방의 문화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이 함께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8년 부산으로 이전한 영화진흥위원회 산하 한국영화아카데미(KAFA)도 일례로 거론된다.
KAFA 출신의 한 영화감독은 "부산이 '영화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전반적인 제작 인프라가 서울에 몰려 있어 어려움이 많았다"며 "KAFA가 부산으로 이전한 지가 꽤 됐는데도 지방의 고질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한예종은 이번 법안에 대해 우려의 입장을 표했다. 한예종 측은 28일 "지금 필요한 것은 학교의 이전이 아니라, 우리 학생들이 더 넓은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도록 교육 환경을 고도화하고 예술 현장과의 결합을 강화하는 실질적인 지원"이라며 "일방적인 추진에 앞서 교육 현장인 본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존중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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