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광장] 위험 감수하는 용기가 풍요를 만든다
2026.04.28 07:00
창업자들 실패 두려워하지 않도록
연대보증 없는 투자 생태계 필요
100년 전 사람들이 오늘날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손바닥만 한 기기로 지구 반대편 사람과 얼굴을 보며 대화하고 민간 기업이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있다. 이 경이로운 물질적 성과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뿌리를 캐다 보면 놀랍게도 주식회사제도와 보험제도를 마주치게 된다.
17세기 유럽인들이 망망대해로 배를 띄웠을 때 그것은 단순한 모험이 아니었다. 배 한 척이 침몰하면 투자자 한 사람이 전 재산을 잃어야 했던 시대에 자본을 여럿이 나누어 부담하고 수익도 함께 나누는 주식회사 제도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재정적 위험의 분산으로 불가능해 보이던 도전은 현실이 되었다. 여기에 보험제도가 더해졌다. 배가 난파되어도 보험이 손실을 보전해 주면서 사람들은 더 과감하게 바다로 나아갈 수 있었다. 대항해 시대의 부(富)는 용감한 선장 한 명의 산물이 아니라 이 두 제도가 만들어낸 시스템의 산물이었다.
18세기 산업혁명도 마찬가지였다. 방적기와 증기기관은 기술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공장을 짓고, 기계를 들여놓고, 수천 명을 고용하는 데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다. 주식회사가 그 자본을 모았고 보험이 화재나 사고의 위험을 흡수했다. 오늘날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민간 우주산업에 도전할 수 있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원리다. 수조 원이 날아갈 수 있는 로켓 발사 실패의 위험을 제도적 시스템이 분산해 주기에 인류는 우주를 향해 다시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물질적 풍요의 핵심은 결국 '변동성의 허용'이다. 성공 또는 실패할 수도 있는 불확실성이 존재할 때 새로운 부가 탄생한다. 조선시대 500년을 돌이켜 보자. 반상(班常)의 질서가 철옹성처럼 유지된 사회에서 일반 서민이 신분을 뛰어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변동성이 억제된 사회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정은 경직이자 정체다. 조선 후기부터 해방에 이르는 격동의 시기에 부와 신분 질서가 요동친 것은 역설적으로 그 시기가 변동성이 가장 컸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은 사회 시스템 전체의 변동성은 크게 줄어든 반면 변동성은 개인의 영역으로 좁혀졌다. 창업을 통해 모든 것을 걸거나 그렇지 않으면 월급이라는 안정된 레일 위에 오르는 이 두 갈래의 선택지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 문제는 지역사회로 내려오면 더욱 선명해진다. 대전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집적된 곳으로 물건보다는 기술을 생산하는 도시로 잠재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그 지식과 기술이 지역 안에서 새로운 부로 전환되는 선순환 구조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연구결과는 논문으로만 발표되고 유능한 인재들은 수도권으로 빠져나간다.
지역사회가 활력을 되찾으려면 대항해 시대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지역 창업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연대보증 없는 투자 생태계를 구축하여 위험을 분산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여기에 대학과 연구소의 기술이 지역 기업과 결합하고 지역 자본이 이를 뒷받침하는 플랫폼이 갖춰질 때 비로소 지식이 부로 이어질 수 있다. 나아가 실패한 창업자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과 문화적 포용력이 뿌리내려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현대판 보험제도다.
자본주의가 인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물질적 풍요 그 자체가 아니다. 위험을 제도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더 큰 꿈에 도전할 수 있게 한 것, 그것이 진정한 선물이다. 대전이 그리고 우리 지역사회가 그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도전의 무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변동성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것은 새로운 풍요의 씨앗이다.
김천규 충남대 기술실용화융합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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