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 주인공이라고?” 정주영 분노케한 ‘유인촌 드라마’
2026.04.28 05:00
이명박 회고록
제2회 ‘야망의 세월’과 현대와의 결별
"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
1990년 초 한 당대 최고의 드라마 작가인 나연숙 작가가 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현대그룹을 모델 삼아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그의 요청에 나는 반색했다. 그러나 그의 다음 말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 이명박 회장님이 주인공입니다. 나름대로 관련 자료들을 모았지만 부족해서 직접 말씀을 들으려고 왔습니다. "
나는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 예? 안 됩니다. 엄연히 정 회장님이 계시는데 제가 주인공이라뇨.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정 회장님을 주인공으로 해주십시오. "
그러자 그가 다시 설득에 나섰다.
" 회장님! 저희는 재벌이 아니라 근로자, 노동자를 중심에 놓고 싶습니다. 그래서 월급쟁이로 입사해 ‘샐러리맨 신화’를 쓰신 이 회장님이 주인공으로 제격이라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나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 어쨌든 안 됩니다. 협조할 수 없으니 그리들 알고 돌아가세요. "
문전박대당한 그들은 곧바로 정 회장을 찾아갔다. 오해가 시작된 건 바로 그때였다. 소통이 어디서 꼬였는지는 몰라도 정 회장은 드라마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인식했다. 그래서 나 작가에게 긍정적인 답을 했다. 그러나 나는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일절 협조하지 않았다.
나 작가는 어쩔 수 없이 자체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극본을 썼다. 그 드라마가 1990년 10월부터 1년간 KBS-2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야망의 세월’이다.
방영이 시작되자 난리가 났다. 정 회장은 진짜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그때야 인지했다. 그는 현대를 주제로 한 드라마에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나 작가는 물론이고 KBS 사장에게도 강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자 나를 호출했다.
" 그 드라마 어떻게 된 거요? 나로 나오는 배역이 말이 안 되고, 내용도 맞지 않아. 그러려면 아예 방영을 중단하라고 해요. "
난감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나 작가를 만나 호소했다. 그가 반문했다.
" 회장님, 극 중 주인공 이름은 이명박이 아니라 박형섭입니다. 그리고 드라마 어디에 박형섭이 다니는 기업이 현대라고 나옵니까. 드라마 제작·편성·방영권은 방송국에 있습니다. 기업의 요구에 따라 바꾸고 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
틀린 말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돌아와 그대로 보고했다.
" 회장님, 나 작가가 설득이 안 됩니다. 도무지 틈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 작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닌 것 같고요. "
정 회장은 버럭 화를 냈다.
" 지금까지 당신이 해서 안 된 일이 뭐가 있어? 그런데 이건 안 된다고? "
물론 ‘야망의 세월’ 사건이 정 회장과의 결정적인 결별 사유는 아니었지만, 드라마 때문에 그를 대하기가 예전보다는 불편해졌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예상 밖의 현상이 발생했다. 드라마가 40~50%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면서 내가 덩달아 주목받게 된 것이다.
그 드라마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중 하나였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내가 정계에 진출하고 서울시장·대통령까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이미 내 미래를 내다본 듯한 이가 있었다. 나연숙 작가였다. 종영 이후 만난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 제가 원했던 결말은 이런 게 아니었어요. 원래는 주인공 박형섭이 여의도 광장에에서 100만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하는 것으로 드라마를 끝내려 했어요. "
나는 “그게 말이 되느냐”며 실소했다. 그게 거짓말처럼, 드라마처럼 현실화할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정 회장의 정계 진출설이 파다했던 그때 현대그룹을 좋게 묘사한 ‘야망의 세월’은 정권 입장에서 눈엣가시였다. 정권의 핵심 인사로부터 연락이 온 건 그즈음이었다. 그의 어조는 험악했다.
" 이 회장이 책임지고 정 회장의 정계 진출을 말리시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이 회장까지 정 회장 쪽으로 간다면 현대를 공중분해시켜 버릴 거요! "
정 회장을 따라 신당에 합류할 수 없는 이유가 또 하나 생긴 셈이었다. 그렇다고 정권의 협박을 정 회장에게 알릴 수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정 회장의 최후통첩 기한인 1991년 12월 31일이 됐다. 숱한 불면의 밤을 보낸 나는 드디어 결심했다. " 회장님, 죄송합니다. 현대를 떠나겠습니다. "
정 회장은 놀랐다. 그의 의도와 완전히 배치되는 답이라서다. 그는 내 말을 믿지도, 듣지도 않으려 했다.
그러나 번복할 순 없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서귀포 바닷가를 거닐며 1992년의 첫 일출을 바라봤다. 그리고 내 결심을 전했다. 놀라면서도 묵묵히 듣던 아내가 말했다.
" 그렇게 결정했다면 당신 뜻대로 하세요. 우리는 그 결정이 최선이라고 믿고 따르겠어요. "
가족의 무조건적 지지 선언은 너무나도 고마웠고, 너무나도 큰 힘이 됐다.
이틀 뒤인 1992년 1월 3일 나는 현대그룹 계동 본사로 출근해 사장단 신년 하례식에 참석했다. 계열사 사장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던 그 순간 정 회장이 회의실로 들어서더니 한 마디를 내뱉었다.
" 오늘 날짜로 본인하고 이명박 회장, 이내흔 부사장은 정치에 참여하는 거로 결정하고 퇴사합니다. "
그러고는 그대로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나는 다른 간부들이 신년 세미나를 위해 용인 마북리 현대그룹 연수원으로 떠난 뒤 정 회장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 회장님,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
정 회장이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 며칠 뒤에 한번 만납시다. "
내가 답했다.
" 생각해 보겠습니다. "
정 회장과 수십 년간 함께 일하는 동안 그렇게 모호한 답을 내놓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건 곧 명확한 거절이었다.
나는 그길로 현대그룹을 떠났다.
앞길이 막막했던 24세 청년을 받아주고 키워준 회사였다. 내 청춘과 뼈를 깎아 넣고, 피·땀·눈물을 쏟아부어 만든 회사였다. 임직원이 100명도 안 되던 그 작은 건설회사를, 자동차와 조선 계열사를 거느린 한국 대표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낸 내 입장에서 감회가 없을 수 없었다. 계동 사옥 정문을 나서던 순간 내 머릿속에서 지나간 50년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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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연?” 정주영 분노했다…MB 곤혹케한 ‘유인촌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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