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지연되는 정의, 나태한가 비겁한가
2026.04.26 23:39
상고심 재판 지연으로 빚어져
권력자엔 느리게 가는 재판시계
사법부 위기, 내부는 문제없나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대장동 개발업자들이 7800여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 사람이다. 그들에게서 뇌물 7000만원과 정치자금 6억원을 받은 혐의로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5년과 벌금 7000만원, 6억7000만원 추징 선고를 받았다.
그런 김씨가 보석으로 풀려나온 뒤 보인 행태는 초현실적이다. 출판 기념회를 열어 정청래 대표 등 민주당 의원 50여 명을 불러 모았다. 세상이 만만해 보였을까, 이후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공천을 요구했다. 김씨와 친명계 일부는 “검찰의 조작 기소 피해자이므로 국민에게서 심판받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1·2심 재판부가 그의 혐의와 관련된 쟁점을 모두 따져 실형으로 심판한 판결은 안중에 없었다. 법치는 무시되고 다수의 결정으로 있는 죄도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을 가능케 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김씨는 당선되더라도 대법원에서 1·2심 판결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한다. 보궐선거를 또 치러야 한다. 민주적 선거 제도를 훼손하고, 수십억~수백억 국고를 낭비하며, 유권자를 모욕하는 일이다.
민주당이 김씨에게 공천을 주지 않아 출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게 문제다. 물론 김씨의 왜곡된 현실 인식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그러나 사법부의 책임은 없나. 김씨의 항소심 재판이 끝난 것은 작년 2월 6일. 1년 2개월이 더 지났다. 상고심의 형사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2개월 18일(2025년 기준)이다. 5배가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대법원은 아직 김씨 사건을 끌어안고 있다. 1·2심이 같은 형량으로 선고한 점을 감안하면 법리적 쟁점이 복잡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법원은 왜, 유력 정치인 사건에서는 좌고우면하며 질질 끄는 인상을 주나. 조국 대표, 윤미향 전 의원의 사례처럼 5년, 4년씩 재판을 끄는 동안 유죄가 상당 부분 소명된 정치인이 선거에 출마하고 공직을 수행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법원의 나태나 눈치 보기 때문은 아닌가. 권력자라는 이유로 ‘재판의 시계’가 느리게 흐른다면 그런 사법부를 신뢰할 수 있을까.
조희대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부터 재판 지연 문제 해소를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을 신속하게 처리한 것도 그런 취지였을 것이다. 선거법에 명시된 재판 시한 규정을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 정당성도 있었다. 그러나 이후 정치적 관심도가 높은 일련의 사건에서 법원이 보여준 모습은 그런 정당성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정치의 시계’를 의식한 듯한 재판 속도, 특정 정치 세력의 압력을 의식한 게 아닌지 의심되는 판결이 있었다.
대법원이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이후 집권 세력과 여당이 판사 개인을 겁박하고 사법부의 독립을 짓밟으려 드는 상황인 것을 안다. 그렇다고 그걸 이해해야 하나. 그럴 수는 없다. 법원은 정치적 결단이 아니라 법적 판단을 하는 곳이다. 그 판단이 정치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계산하는 순간, 법의 저울은 수평을 잃는다.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은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에서 엄정함을 잃을 때 진짜 무너진다.
검찰의 권위와 독립은 이미 붕괴했다고 본다. 대장동 사건과 서해 공무원 사건의 항소를 포기한 순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사법부가 검찰과 같을 수는 없다. 집권 세력이 집요하게 공격하는 정치적 격랑 속에서도 민주적 시스템과 법치의 최후 보루이길 국민은 기대한다. 자연인 판사는 약할지 모른다. 그러나 법이라는 나침반을 굳게 믿고 나아가는 사법부 구성원으로서의 법관은 강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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