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과 사이다 넘어, 대통령 업무보고가 건드린 ‘전선’들
2026.01.13 07:18
“신속하고 속도감 있게.” “이념 논쟁은 배제하고 실용적으로.” 2025년 12월11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된 이재명 대통령 생중계 업무보고에서 자주 등장한 표현이다. 대통령 특유의 ‘만기친람’형 질문들이 이어지며 “넷플릭스보다 재밌다더라”는 자평이 나왔다. 강한 어조와 직설적 화법은 논란을 낳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업무보고 마지막 날 “최종 책임자들이 권위와 명예만 누리고 본질적 역할을 제대로 안 하는 건 눈 뜨고 못 봐주겠다”라면서 “6개월쯤 뒤에 (업무보고를) 다시 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생중계 업무보고에 19부·5처·18청·7위원회를 포함해 228개 공공기관이 대상이 되었다. 짧은 기간 수많은 지시 사항이 쏟아졌다(〈표〉 참조). 그저 ‘논란’ 혹은 ‘사이다’로 평가하고 넘기기에는 사안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 철학이 무엇인지, 자원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후속 논쟁이 뒤따른다. 이 대통령이 업무보고에서 언급했듯 “조만간 한번 시끄러워질 수 있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2026년 이재명 정부의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하다. 화제가 된 네 가지 장면과 이 대통령의 발언을 중심으로, 대통령 업무보고가 건드린 한국 사회의 ‘전선’을 살펴봤다.
#1. “종편, 편파 유튜브인지 의심돼”
2025년 12월12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종편 채널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그게 방송인지 편파 유튜브인지 의심이 드는 경우가 꽤 있다.” 방미통위 관계자가 “방송의 내용과 관련된 편향, 중립성 위반에 대해서는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심위)에서 평가하게 되어 있다”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되물었다. “방송들이 중립성을 어기고 특정 정당의 사적 유튜브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해 방미통위가 전혀 관여할 수 없는 것인가.”
방미통위의 전신은 방통위이고, 방미심위의 전신은 방심위다. 민간 독립기구인 방심위가 개별 방송 및 콘텐츠 내용을 심의하고, 대통령 직속 행정기구인 방통위가 방송사의 재허가 및 재승인을 결정한다. 이 심사 과정에서 공정성 항목을 평가하는데 방통위와 방심위 구조상 정권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일례로 윤석열 정부 당시 류희림 방심위가 ‘바이든-날리면’ 보도를 한 MBC에 과징금 3000만원을 부과하거나 여러 건의 법정 제재를 쏟아냈다. 언론탄압의 도구로 악용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새 정부에서 ‘새판’을 짜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2025년 9월27일 ‘방미통위 설치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방미통위와 방미심위가 새롭게 출범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방미통위 출범 취지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정 방송사(종편)의 공정성을 지적한 부분이 특히 논란거리다. 야당에서는 ‘노골적인 통제 의도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이 대통령이 방송 독립성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소 성급하게 건드렸다고 지적했다. “방미통위가 대통령 직속 위원회이긴 하지만, 방송사 공정성 판단은 정부로부터 지휘를 받는 구조가 아니다. 오히려 정부와 방미통위, 방미심위가 수직적인 지휘 체계 안에 있는 것처럼 발언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문제적이다.” 대통령이 두 기관의 업무와 성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 게 아니냐는 뜻이다.
한편, 이 대통령은 방미심위에 대해 “대통령 지휘를 받는 곳이면 업무보고를 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방미심위는 형식적으로 ‘민간 독립기구’ 지위를 유지한다. 심의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서다. 문제는 앞서의 법 개정으로 방미심위 위원장이 정무직 공무원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인사청문회를 거치고 탄핵소추도 가능해진다. ‘제2의 류희림’을 막기 위해 국회가 통제력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였지만, 그만큼 정치적 관여가 커질 수 있다. 방미심위 업무보고 요구에 정치 심의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김동찬 위원장은 아직까지 이재명 정부의 언론관을 판단하기엔 이르다면서도, “윤석열 정부에서 기존 제도를 악용하는 행태가 나타났다면 이재명 정부는 그 원인을 바로잡기보다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운영하면 된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방미통위 업무보고 이후인 2025년 12월30일, 대통령실은 국무회의를 열고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기업인 등 권력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제외하는 방안은 반영되지 않았다.
#2. “새만금 개발은 희망고문 아닌가”
2025년 12월11일 업무보고 중에서는 새만금개발청이 예기치 않은 관심을 받았다. 30여 년째 새만금 개발사업이 지지부진한 현실을 지적하며 이 대통령이 “사실상 희망고문”이라고 발언하면서다. “지금이라도 (새만금 개발사업 규모를) 현실적으로 확정지어야 한다. 전북도민의 기대치는 높겠지만 재정을 더 투입하기 어렵다. 그 얘기를 하면 정치적으로 비난받을 것 같으니까 그냥 애매모호하게 얘기하고 있는 상태 아닌가.” 이를 두고 전북 정치권에선 상황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은 진단이라는 호평이 나왔다.
새만금개발청에 나와 있는 새만금 사업 개요는 다음과 같다. ‘군산-부안을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축조해 간척토지를 조성 (…) 경제와 사업, 관광을 아우르면서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비상할 글로벌 명품 새만금을 건설하는 국책사업.’ 정부가 내세운 장밋빛 전망과 달리 이 사업은 34년간 표류했다. 최초 사업예산 23조원 중 15조원이 투입되었지만 전체 면적의 40%밖에 매립하지 못했다. 민자 유치를 전제로 한 매립 계획에 이재명 대통령은 “민자로 매립해서 들어올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새만금 사업이 장기간 표류한 건 정치권의 책임이 컸다. 첫 삽을 뜬 건 1991년 노태우 정부 때다. 식량 안보를 명분으로 한 간척 농지 개발사업이었으나 경제성이 낮다는 평가에 이명박 정부는 복합산업단지 개발계획으로 전면 수정했다. 그사이 생태 파괴 이슈가 부각되면서 문재인 정부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중심지로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윤석열 정부에선 2023년 7월 새만금 잼버리 파행을 문제 삼아 새만금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대통령이 여덟 번 바뀌는 동안 새만금 기본계획도 여덟 차례 변경되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5월 대선후보 시절, 다시 새만금을 RE100 국가산업단지로 조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오랫동안 새만금 살리기 운동을 해온 전북환경운동연합 이정현 공동대표는 “이 사업은 처음부터 경제성과 환경성, 지속가능성을 검토하고 시작한 게 아니었다”라고 짚는다. 선거 때마다 표심을 얻기 위한 정치적 구호였던 셈이다. 중장기적 계획 없이 ‘땅부터 넓히자’는 매립 속도전을 해왔다고 그는 강조했다. “전북 지역 정치권은 늘 정치적 소외와 경제적 낙후 문제를 호소하며 새만금을 띄웠다. 중앙정치 무대에 보여줄 수 있는 ‘치적’이기 때문이다. 어느 세월에 완성될지 모른다는 걸 (새만금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희망고문은 정확한 표현이었다.”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새만금 기본계획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2025년 12월15일 김의겸 새만금개발청장은 “2050년으로 설정된 완공 목표 연도를 앞당기겠다”라고 밝혔다. 매립을 중단할지, 국가 재정을 더 투입할지 구체적 방향을 두고 여전히 ‘동상이몽’인 가운데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새만금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떠오르고 있다. 이정현 대표는 “매립 중심의 개발 관행에서 벗어나 재생 중심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반면 전북을 지역구로 둔 민주당의 한 의원은 〈시사IN〉에 “매립을 전면 중단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어느 정도 조정은 고려할 수 있겠지만 매립을 아예 중단하자는 건 지금까지 해왔던 새만금 정책을 거꾸로 돌리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희망과 희망고문 사이, 새만금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 한번 맞붙을 전망이다.
#3. “촉법소년이라고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는 영상도 있더라”
2025년 12월19일 법무부 업무보고에서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 문제가 떠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이 “요즘 보니까 ‘나는 촉법소년에 해당되기 때문에 마음대로 해도 돼’ 이러면서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는 영상도 있더라”고 말하면서 촉법소년 연령 하향의 국무회의 검토를 주문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마약범죄의 경우 10대로 확산하고 있다. 단순히 선도 교육만 갖고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고민 중이다”라고 답변했다. 유튜브 댓글난에는 ‘진짜 애들 감당 안 됨’ ‘촉법소년 개념 자체를 없애야 한다’ 등의 반응이 달렸다.
촉법소년은 형사처벌 대신 소년법에 의한 보호처분을 받는 형사 미성년자를 말한다. 현행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소년범에 해당한다. 처벌보다는 교화와 회복에 목적이 있다. 이들이 범죄를 저질러도 면죄부를 받는다는 오해가 퍼져 있지만, 보호처분 또한 형사적 개입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소속 김희진 변호사는 “형사 특별절차라는 개념으로 촉법소년도 경찰 수사와 재판을 받는다. 보호처분도 적게는 수강명령, 사회봉사, 보호관찰, 무겁게는 소년원 송치까지 불이익을 주고 처벌하고 있다. 전과 기록으로 남지 않을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청소년 범죄 엄벌주의 기조는 여야 정치권을 막론한다. 2022년 대선 당시 이재명·윤석열 후보 모두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공약했다. 촉법소년 범죄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며 범행 수법도 흉포해졌다는 게 주된 근거다. 실제로 2022년 윤석열 정부 법무부(당시 한동훈 장관)가 촉법소년 연령 상한을 14세에서 13세로 하향하는 법안을 추진했다. 당시 국가인권위와 대법원 법원행정처 등이 반대 의견을 내며 통과되지 못했다. ‘엄벌주의가 소년범죄 예방에 실효적이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김희진 변호사는 “유엔 아동권리협약 등 국제규범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흉포한 범죄를 저지르는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없다”라고 지적한다. 대법원 ‘2025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4년 보호처분을 받은 촉법소년은 7294명으로, 2020년 3465명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전체 소년보호사건은 5만848건). 그러나 범죄 유형별로 보면 절도 사건이 1만7843건(35.1%)으로 가장 많았다. 3년 전 일었던 논쟁이 쳇바퀴처럼 반복되고 있다. 〈소년법 강의 2020〉을 쓴 현지현 변호사(법무법인 덕수)가 보기에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정치권이 소년 범죄와 관련해 취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어떤 보고서에도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낮췄을 때 범죄가 줄어든다는 자료가 없다. 문제는 이들이 한번 사법 절차에 진입하면 그때부터 교육이나 복지 지원을 받을 기회를 점차 잃어간다는 점이다. 사회에 돌아와도 낙인효과가 이어진다.”
두 변호사는 그 대신 소년사건 재범률이 과거보다 높아졌다는 부분에 주목한다. 보호처분이 교화라는 목적에 맞게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시설에 들어가 있는 동안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에 나왔을 때 환경이 달라지지 않으니 재범을 일으키기가 쉽다. 아동 청소년이 법규범 준수 능력이 미숙하다면 거기엔 충분한 돌봄과 교육의 부재, 빈곤 등 주변 환경의 문제가 있다. 지역사회가 어떻게 개입할지 논의하지 않고는 똑같은 현실이 펼쳐질 것이다. 범죄소년의 등장은 아이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의 실패이기 때문이다(현지현 변호사).”
#4. “탈모는 생존의 문제, 건강보험 적용 검토 필요”
탈모 건강보험 적용은 3주간 이어진 업무보고 가운데 가장 화제가 된 이슈 중 하나다. 포퓰리즘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2025년 12월16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옛날에는 미용이라고 봤는데 요새는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건보 적용) 횟수 제한이나 총액 제한을 한번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건강보험료를 내는데 혜택이 없다는 청년들의 소외감이 너무 커서 하는 얘기다.”
탈모 급여화는 2022년 대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그 당시에도 재정 부담 우려가 나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4년 탈모증 총진료비는 389억5412만원으로 집계됐다. 연간 2400억원을 웃도는 전문의약품 비용까지 합치면 상당한 규모다. 같은 해 탈모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24만여 명에 이른다. “대통령 즉흥 지시로 탈모 우선순위를 암보다 높여야 하느냐(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와 같은 비판을 받았다. 희귀질환, 중증질환 환자들도 최신 치료제의 급여 적용을 받지 못하는 현실부터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건강보험 급여는 한정된 자원이다. 기본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에게, 젊은 층이 고령층에게 몰아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탈모 건보 적용은 기존의 사회적 합의를 거스르는 측면이 있다. 대통령은 그 예외 근거로 “청년들의 소외감”을 언급했다.
“기존 규범으로 보면 적절하지 않다. 보험 당국 입장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다만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지는 전적으로 정치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김창엽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이를테면 국방비와 의료비 중 어디에 예산을 많이 쓸지, 의료비 안에서도 예방에 쓸 건지 치료에 쓸 건지 등 자원 배분의 기준이 그때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건강보험 적용 우선순위가 꼭 병의 중증도에 따라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지만 다수가 겪고 있는) 고혈압과 당뇨병 등 만성질환, 심지어 경미한 배탈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돈을 내고 혜택은 못 받는다고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을 계속 건강보험제도에 붙들어두는 장치인 셈이다.”
포퓰리즘 논란이 커지자 2025년 12월18일 보건복지부는 보도 설명자료를 내고 “건강보험 급여화는 의료적 필요성, 비용효과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 절차를 거쳐야 한다”라고 밝혔다. 결국 사회적 논쟁을 거쳐 결정해야 할 문제다. 김창엽 교수는 “의료비가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건강보험이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논의하는 기회의 장이 열렸다”라고 평가했다. 예를 들면 항암제 신약부터 임신중지 의료서비스, 정신건강 상담 진료, 비만치료제 ‘위고비’까지, 건강보험 급여에 무엇을 포함하고 제외할 것인가? 2026년 내내 토론하고도 남을 논점들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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