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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에 갇힌 나…히말라야에서 창살을 열다 [첫 6,000m 고산등반]

2026.01.13 07:50

국내 산행만 했던 여성 산꾼의 네팔 메라피크(6,476m) 등반기
정상에서 악천후로 인해 놓쳤던 풍경을 하산길에 볼 수 있었다. 고맙게도 하늘이 열리며 템바 셰르파와 함께 쿰부 히말라야의 장엄한 전경을 담았다.
내 심장 속에는 '마흔'이라는 이름의 벼랑 끝이 정해져 있었다. 사회가 규정한 '이상적인 삶'의 궤도를 벗어난 미혼 여성으로서, 30대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단순히 숫자가 바뀌는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의 압박이자, 내 존재를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숙제였다. 사람들은 묻지 않고서도 내 삶을 재단했다. 그 시선으로부터 가장 멀리 도피하고 싶었다.

내 직업은 골프 캐디.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일용직이다. 이 일은 승진이나 성장이라는 구조가 부재했고, 노력에 대한 가시적인 보상이나 성취감을 얻을 수 없는 일상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얻어낼 수 있는 극단적인 성취를 갈망했다.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 잃어버린 '나의 가치'를 극한의 고도에서 되찾고 싶었다.

그 무대가 히말라야였다. 궁극적 목표는 아마다블람(6,812m)이지만, 그에 앞서 메라피크(6,476m) 등반을 고산 훈련으로 삼는 무모한 베팅을 감행했다. 첫 해외 고산등반이자, 국내 훈련량도 부족했다. 셰르파 없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맵스미(해외 지도 어플)에 의지해 메라피크를 오르기로 했다. 무모하고 고독한 자력 등반이었다.

코테에서 탕낙 가는길. 나를 천상의 풍경으로 안내하는 듯했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30대의 마지막 용기를 시험하듯 나섰다. 산악회나 일행 도움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홀로 나섰다. 이번 원정은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고독한 여정은 직업적 한계를 넘어 완벽한 성취를 이루고, 내 어깨를 짓누르던 모든 무게와 불안을 히말라야의 차가운 눈밭에 묻어버리기 위한 나만의 의식이었다. 심장이 멈추지 않는 한 전진하겠다는 마음으로 원정을 준비했다.

등반이 시작되기도 전, 이동 자체가 시련이었다. 재정 부족으로 셰르파나 포터 없이 혼자 카레(4,900m)까지 오른 후 클라이밍 셰르파를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버스와 지프를 이용한 28시간의 고단한 이동이었다. 첫째 날 버스는 풍경을 보면서 가는 덕분에 14시간 후 무사히 파블루에 도착했지만, 둘째 날 지프는 우기를 갓 지나 진흙으로 범벅된 길 때문에 고장이 나고 말았다. 길은 그야말로 '비추천' 자체였다. 쉴 새 없는 덜컹거림은 온몸에 멍 자국을 남길 정도였다.

그렇게 도착한 카리콜라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 로지(여행자 숙소)를 두드려도 아무 대답 없어 문이 열리는 방에 몸을 집어넣었다. 인기척에 눈을 떴을 때, 아침이 되어 있었다. 로지 주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등반 준비를 했다. 곧 다가올 고도와 여정의 무게를 예감한 걸까? 아니면 무단 침입을 했다는 생각 때문일까? '심장아, 그만 나대라' 싶을 만큼 두근거렸다.

마칼루 바룬국립공원에 들어서자 마주한 계곡 트레킹 구간은 메라피크의 백미였다.
아침 햇빛을 받은 타르초(불교 경전을 적은 깃발)를 뒤로하고 팡곰을 향해 출발했다.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등정을 위해 하네스, 크램폰, 슈트, 핫팩까지 필요한 모든 물건을 꾸역꾸역 넣은 18㎏의 배낭은 내 삶의 무게 그 자체였다. 던져버리고 싶었다. 7개월 만에 멘 야영 배낭은 온몸의 관절을 짓눌렀고, 엉망진창으로 패킹된 짐은 뒤에서 나를 계속 잡아당기는 보이지 않는 귀신같았다.

'내가 왜 이런 미친 짓을…, 아마다블람에 갈 수 있는 거 맞아?' 머릿속은 후회로 가득했다. 맵스미 지도앱만 믿고 길을 정하는 통에 몇 번 길을 잃는 낭패를 겪어야 했다. 한 번은 온전한 길로 들어섰을 때, 온통 피범벅이 된 옷을 보고 놀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 숲을 헤매는 동안 쥬카(거머리)에 물렸던 것이다. 등반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히말라야에 피의 제물을 바친 셈이다.

소박한 찻집처럼 보이는 작은 절, 오색 타르초가 펄럭이며 풍경에 활력을 더했다.
솔로 등반 왔으나 도움받는 신세

고독한 솔로 등반을 시작했지만, 신기하게도 완전히 혼자라는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다. 벌어진 일을 해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자부했지만, 실상은 항상 최악으로 치닫기 전에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었다. 숲속에서 길 잃은 나를 도와준 소녀, 로지에서 만난 말레이시아 친구 준 June과 동행.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히말라야에서 깨닫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참 안일했구나'라는 부끄러움이 들었다. 무모함과 준비 부족을 타인의 선의에 기대고 있었던 것이다.

고산병 징후는 라마일로다다(3285m)의 밤에 불현듯 찾아왔다. 잠을 청해도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물을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고산의 경고를 온몸으로 느끼며 잠을 설쳐야 했다. 멈추지 않는 갈증은 등반의 불길한 예고 같았다. 다음 날, 고도가 더 높아지면서 등반의 리듬을 더욱 엄격하게 조절했고, 고산병에 대비해 1분당 심박수 120회를 넘기지 않으려 시계를 계속 확인하며 10분 걷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반복적인 보폭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다 눈앞에 펼쳐진 사바이탁 차 호수의 푸르고 웅장한 물결은 잠시나마 고통을 잊게 하는 보상이 었다. 그렇게 걷다 카레 전 로지에 점심을 먹으려 잠시 멈춰 섰고, 벽에 새겨진 한국인들의 낙서를 마주하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침내 카레(4,900m)에 도착해 진짜 우유로 만든 카페라떼를 마셨을 때, 불편한 반성 뒤에 문명의 소중함에 감격하며 감사했다. 여정은 끊임없이 내가 가진 것의 가치를 되묻고 있었다.

수목한계선 부근, 울긋불긋 옷을 입은 누운 나무들이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채색한다.
머리만 대면 잠드는 나였건만, 하이캠프(5800m)에서는 한숨도 잘 수 없었다. 텐트 위로 눈이 사각사각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고도와 불면 탓이었다. 내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게 들렸다. 멈출 수 없는 숨소리는 내 심장의 불길한 예고 같았다. 새벽 1시, 이어 아침 7시. 밤새 내린 폭설로 등반이 지연되었다. 클라이밍 가이드 템바를 고용해 그와 함께 올랐다. 다른 팀들은 모두 하산하고 있었다.

"길이 없어 No way! 화이트 아웃 White out!"을 외치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포기가 서려 있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길고 고된 여정의 끝이 여기서 내려가는 것이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템바는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눈을 밀어내는 고된 러셀 작업을 묵묵히 이어갔다. 질퍽한 습설은 무거웠고, 내 몸은 훈련되지 않았으며, 부족한 산소로 인해 폐는 비명을 질렀다. 나를 짓누르는 눈의 무게, 몸의 한계, 템바와의 속도 차이, 이 거대한 벽들 앞에서 좌절했다.

하산길, 마칼루 루랄의 빠스포카리를 지나 지도에 없는 이름 모를 라(언덕).
드디어 마지막 100m 정상이 코앞이었을 때, 내 안의 모든 정신이 툭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나 집에 가고 싶어요 I want to go home!"를 외치며 울었다. 텅 빈 위장과 육체의 모든 고통이 담긴 절규였다. 템바는 아무 말 없이 곁에 다가와 "이제 다 왔어 We're almost finished"라고 짧게 속삭였다. 오랜 침묵 중에서 그가 꺼낸 한마디는, 진심으로 도와주려는 확신처럼 느껴졌다.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나, 마침내 몸을 던져 메라피크 센트럴(중앙봉) 정상에 올라섰다.

정상 등극의 희열은 잠시였다. 하산은 처절했다. 일몰 무렵, 구름이 걷히며 희미하게 보인 아마 다블람의 모습은 황홀했고, 힘이 완전히 소진되어 평소대로 걸을 수 없었다.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며 하산을 이어 갔다. 처절함과 황홀함이 뒤섞인,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오전 7시에 시작한 등반은 저녁 7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12시간의 사투 끝에 하이캠프에 돌아온 몸은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육체는 극한을 넘어선 상태였고, 허탈감만 남아 있었다.

정상에 오른 나. 해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상이 허락한 것은 짙은 안개와 성취감뿐.
눈물의 사투, 미친 사람이 되다

다음 날 아침, 젖은 옷 때문에 뼛속까지 추웠던 나에게 템바는 자신의 침낭을 덮어주고 날진에 뜨거운 물을 넣어 몸을 데워주었다. 그 따뜻함은 산이 주는 혹독함 이상의 인간적인 위로였다. 그는 잘 내려왔다고 격려해 주면서도,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미친 사람만이 이 상황에서 정상에 오를 수 있었을 거야. Only a mad could have done the summit"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나의 무모함이 극한 상황에서 통했다는 냉정한 평가이자, 경이의 표현이었다.

이번에 만난 모든 사람들은 내 몸만 한 대형 배낭을 메고 등반하는 나를 보며 입을 모아 "대단하다"고 말했다. 투쟁 끝에 얻어낸 외부의 칭찬과 찬사는 분명 달콤했다. 하지만 이 달콤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산하며 온라인 카페에서 인연을 맺었던 박태준님을 만났다. 같은 기간 메라피크를 준비했던 우리는 서로 응원하며 베이스캠프에서 기념사진을 찍었고, 하산 후 카트만두에서 식사를 같이 하기로 약속했다. 만남의 시간은 짧았고, 그 약속은 영영 지킬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메라피크 등반 중 하늘나라에 갔고, 현지인들도 예상치 못한 악천후였다. 이상 기온으로 인한 수십 년 만의 폭설이라고 한다. 온전한 하산 후 비보를 들었고, 갑작스러운 상실감에 월간<산>에 싣기로 한 등반기가 3개월이나 늦어졌다.

생각보다 소박했던 하이캠프. 완벽히 맑은 날씨 덕에 메라피크의 웅장한 모습이 보였고 최고의 선물이었다.
셰르파를 고용한 현지 대행사에서 편의를 위해 박태준님과 퍼밋(입산 허가증)이 같은 기간, 같은 팀으로 신청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네팔 산악협회 NMA에서는 내가 메라피크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멘붕 직전에 정상을 오른 탓도 있었고 영상을 찍었으나 눈보라로 경치가 깨끗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정상임을 증명하는 표지석이나 돌탑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 나도 여기가 정상인가 싶었다.

미래에 8000m대 고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6000m 고산 등정 증명서가 필요해 직접 NMA를 찾아갔으나 지금도 등정 인증서는 미결 상태로 남아 있다. 맵스미앱에서 정상의 고도를 확인했고, 나는 정상에 도달했다는 것만으로 안도했기 때문에 후의 증명에 대해 안일했다. 나의 메라피크 등정은 공식적인 종결과 감정적인 종결 모두 멈춰버린 채 여전히 히말라야에 매달려 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분이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뿐이다.

하이캠프 직전의 설경. 선명하게 이어진 발자국들이 곧 도착을 알린다. 왼쪽 검은 바위 너머가 하이캠프.
처절한 사투를 마친 후의 하산은 성찰의 시간이었다. 코테에서 만난 유쾌한 화가 연우님과의 대화, 난로 주변에서 젖은 옷을 말리던 트레커들, 그리고 촐레하르카 로지에서 목격한 충격적인 광경은 내 안의 오만함을 깨부쉈다. 오롯이 살아가기 위해서 행동하고 그 속에서 웃음을 찾는 네팔 사람들의 일상을 보며,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얼마나 사치였는지 깨달았다.

나는 승진 구조가 없는 '캐디'라는 직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증명하려는 투쟁을 위해 이곳에 왔다. 성취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지만, 외부의 기준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을 맞닥뜨렸다.

눈물을 쏟으며 주저앉았던 마지막 순간, 그리고 폭설 속에서 길을 찾아 헤매는 동안, 비로소 깨달았다. 가치는 '무엇을 해냈는가'에 묶여 있지 않다는 것을. 산을 오르지 못했더라도, 직업에서 아무런 성취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이미 나 자신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짓누르던 모든 압박으로부터의 온전한 해방이었다.

더 나아가, 극한의 고도는 삶의 근원적인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생명은 나약하고, 죽음은 지극히 가깝다. 그 경계에서, 모든 불안과 강박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가장 큰 승리는 메라피크에 올랐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숨 쉬고, 걷고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이다. 증명하기 위해 히말라야에 온 것이 아니다. 그저 존재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희미한 일몰 속에서 본 아마다블람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증명 대상이 아닌 순수한 동경으로 다가왔다. 가장 소중한 것, 존재 자체를 얻었기에, 다음 목표를 향한 발걸음은 가볍다. 메라피크는 끝이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경이로운 사실과 함께 아마다블람으로 향한다. <다음 호에 계속>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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