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너무 달라"… '주토피아' 닉과 주디가 삐걱 거린 이유
2026.01.13 04:31
<21> 영화 '주토피아 2'의 주디·닉
편집자주
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용, 오동훈, 허규형 전문의가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심리를 분석하며 우리의 마음도 진단합니다."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저희 둘은 너무 다르거든요."
파트너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남편은 계획적이고 나는 즉흥적이라서, 아내는 감정 표현을 잘하는데 나는 말이 없어서, 파트너는 일에 열정적인데 나는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겨서. "그래서 저희가 안 맞는 걸까요?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면 달랐을까요."
딸이 보자고 해서 크게 기대하지 않고 찾았던 극장에서 '주토피아 2'의 주인공 닉 와일드와 주디 홉스도 비슷한 고민으로 관계가 삐걱거리고 있었다. 보는 내내 주토피아2가 화려한 애니메이션일 뿐만 아니라 관계를 다룬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꾼이었던 여우 닉과 토끼 경찰 주디는 1편에서 도시를 구한 전설적인 파트너가 됐다. 그런데 2편에서 둘은 수사 방식 차이로 계속 충돌한다. 주디의 무리한 열정으로 문제가 반복되고 결국 서장은 두 사람을 '파트너 위기 개선 상담 프로그램'에 보낸다. 현실과 닮아 있는 상담 장면을 보는 순간, 이 영화를 분석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불안이 만드는 엇갈림
심리상담사인 퍼즈비 박사는 "아무 문제가 없다, 괜찮다"는 주디의 말보다 행동에 주목한다. 주디는 끊임없이 말하며 발을 까닥거리고 닉은 농담을 던지고 시선을 피한다. 퍼즈비 박사는 주디에게 당신은 문제를 부정하고 있고 닉은 감정을 숨기고 있다고 해석해준다. 실제로 둘 사이에 드러나는 갈등은 없다. 싸우지도 않고, 서로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파트너 상담 프로그램에 보내진 것이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퍼즈비 박사는 관계가 흔들리는 원인을 정확히 짚어낸다.
문제는 단순히 둘이 달라서 생긴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각자의 불안을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고, 그 아래에 있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주디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감추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닉은 과거 경험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를 감추기 위해 냉소적이고 회피적인 태도를 보인다.
수사가 꼬이기 시작하면서 그 차이는 더 두드러진다. 주디는 정의와 사명에 더 깊이 몰입한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익사를 무릅쓰고 수로 터널로 뛰어들고 추락을 감수하며 절벽을 탄다. "막지 못하면 그건 직무유기야." 주디에게 맞춰주던 닉도 점차 현실적인 말을 꺼낸다. "주디, 그렇게 열심히 하지 마." 위험한 순간마다 주디를 말리려 하지만 주디는 멈추지 않는다. 닉도 점차 견디기 힘들어지고 날카로워진다. "이건 목숨 걸 가치가 없어."
주디에게 이 사건은 '옳은 일'의 문제고 본인이 인정받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사명감과 인정 욕구는 그를 계속 앞으로 밀어붙인다. 닉에게 이 사건은 '살아남는 일'의 문제다. 주디가 다치는 모습을 보는 것, 그것만큼은 견딜 수 없다. 하지만 그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이건 그만큼의 가치가 없어"라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한다. 걱정이 냉소처럼 전달된다. 결국 주디는 닉이 정의보다 안전을 택한다고 느끼고, 닉은 주디가 목숨이나 관계보다 사건만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느낀다.
주디는 멈추는 순간, 자신이 무너질 것처럼 느낀다. 시골 출신 토끼가 대도시에서 경찰이 되기까지 그는 늘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나는 약하지 않아. 나는 할 수 있어." 약해 보이면 안 된다는 두려움을 숨기고 정의감에 몰두하는 것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그래서 더 강한 척하고 더 밀어붙이며, 스스로를 증명하려 한다. 닉은 무엇보다 주디가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무리 동물도 아닌 자신이 또다시 혼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앞에서 그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무작정 맞춰주거나 농담으로 흘리다 거리를 둔다. 돌보려는 마음이 회피라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숨겨진 진심을 마주할 때
진료실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본다. "당신은 맨날 일만 해. 우리 관계는 생각도 안 하잖아." "그럼 당신은? 내가 힘들 때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들어준 적 있어?" 표면에서는 '일 중독'과 '무관심'이 부딪친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불안'과 '관계에서 버림받고 혼자가 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있다.
한 사람은 불안할 때 더 열심히 움직인다. "내가 무너지면 가정을 지킬 수 없어." 다른 사람은 불안할 때 더 가까워지려 한다. "당신이 날 봐줘야 해. 내 말을 들어줘야 해." 관계에 매달리고 대화를 요구하고 확인받으려 한다. 둘 다 가정을 유지하고 싶다. 하지만 한 사람은 더 열심히 일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은 관계에 매달리는 방식으로 그 불안을 해소하려 한다.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데도 행동이 달라 보이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한 사람이 더 밀어붙일수록, 다른 사람은 더 물러난다. 물러날수록 상대는 더 불안해지고, 불안해질수록 더 강하게 매달린다. 서로를 밀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를 잃지 않기 위해 선택한 방식들이다. 이 지점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음에도, 상대는 '너무 다른 사람'으로만 보인다. 결국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우린 너무 달라"라는 말과 함께 관계는 멀어진다.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어떤 마음에 그렇게 하셨나요?" 누가 옳고 그른지 따지는 데 집중하던 대화가 멈추면 밑에 깔려 있던 감정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때 혼자가 된 것 같아서 무서웠어요." "열심히 노력하면 가정을 지키고 나중에 알아줄 줄 알았어요. 너무 알아달라고 하는 것에 지쳐서 일로 회피했던 것 같기도 해요." 속마음을 듣고 나서 서로 놀라는 때도 많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상대의 행동이 나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제야 관계가 조금씩 풀린다.
닉과 주디도 그렇다. 영화 후반부, 두 사람은 위기 속에서 비로소 진심을 꺼낸다. 닉은 자신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주디는 강한 척했던 이유를 털어놓는다. 서로의 행동이 공격이 아니라 방어였다는 것, 상대를 밀어낸 게 아니라 지키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완벽한 톱니바퀴는 아니어도
'정신화(mentalization)'라는 용어가 있다. 상대의 행동 뒤에 숨은 마음을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 입장에서 상상하는 능력을 일컫는 말이다.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럴까?'가 아니라 '저 사람은 지금 무엇이 두렵고,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평가하려 한다. "나는 불안할 때 더 열심히 일하는데, 왜 저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지?" "나는 힘들 때 말을 하는데, 왜 저 사람은 입을 닫지?"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정상'이고, 상대의 방식은 '이상하다, 틀렸다'고 여긴다. 내가 위로받고 싶은 방식으로 상대를 위로하고, 내가 사랑받고 싶은 방식으로 상대를 사랑한다. 그러다 상대가 그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왜 내 마음을 몰라줘?"라고 느낀다. 이게 정신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정신화는 특히 감정이 격해지고 반복적으로 상처받았다고 느끼면 작동하지 않는다. 상대의 마음을 상상하기보다 "저 사람은 원래 그래" "저 사람은 나를 이해 못 해"라고 단정 짓는다.
행동만 보면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행동 뒤의 감정을 상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아, 그래서 그랬구나"가 가능해진다. 상대방은 나와 다른 사람이고 같은 마음이라 하더라도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관계에서의 '이해'가 아닐까.
닉은 말한다. 우리는 완벽하게 맞물리는 톱니바퀴는 아니라고. 삐걱거리고, 멈춰 서기도 하지만, 그래도 함께 갈 수 있다고. 주디의 추진력은 때로는 무모하지만, 닉을 움직이게 만든다. 닉의 신중함은 답답하지만, 주디를 살린다. 다름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 잘 맞아서 함께 가는 게 아니라 삐걱거리면서도 조율할 수 있기에 함께 간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나와 다른 사람과도 잘 지낼 수 있을까. 관계는 나와 같은 사람을 찾는 게임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각자의 감정을 어떻게 다뤄왔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비슷한 성격이라고 해서 무조건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르다고 해서 반드시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이 다름 아래에 어떤 감정이 숨어 있었는지를 끝까지 들여다보려는 마음이 남아 있는가다.
허규형 연세가산숲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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