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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이 한류 때문일까?

2026.04.26 07:02

한국에 대한 적대감 ‘금한령’으로 이어졌을 가능성
바닥을 친 조선, 변화를 기다리는 건 정책이 될 수 없어
호응 여부를 떠나 우리를 이롭게 하는 선택 공론화해야
2018년 4월4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남북예술인의 연합무대 ‘우리는 하나’ 공연을 마친 뒤 출연진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조선(북한)은 한국의 문화(한류)와 사상 유입이 체제 붕괴와 한국으로의 흡수통일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한국에 적대감을 품게 되어 이를 의식화·사회화하고 한국에 대한 적대 의식을 공고히 하기 위해 ‘금한령’을 선택한 것일까? 이 인과관계에 관한 질문은 조선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대북정책을 설계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전자에 방점을 찍으면 조선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된다. 한국이 조선의 체제 불안을 유도하거나 흡수통일을 할 의사가 없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조선 정권은 한국의 문화와 사상이 유입될 수 있는 교류협력 자체를 두려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후자에 방점을 찍으면 변화의 우선적인 대상은 한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의 ‘절연’을 선언하고 이를 제도화하고 있는 조선과의 관계를 풀려면 ‘변화를 통한 접근’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상당수 언론과 전문가의 분석은 전자에 맞춰져 있다. 조선 주민이 여러 경로를 통해 유입된 한류를 접해 한국에 대한 동경과 선망을 갖게 되자 이를 차단·통제하기 위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조선이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2021년 청년교양보호법, 그리고 2023년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한 다음인 2023년 연말에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한 것도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2월 하순 9차 당 대회 보고에서 “한국 집권 세력은 화해와 협력의 기회를 통해 우리 내부에 저들의 문화를 유포시켰다”며 “이를 통한 우리 체제의 붕괴를 기도해왔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분석을 ‘확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예단은 금물이다. 남북관계의 추이와 조선의 선택을 추적해보면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조선의 금한령’의 목적이 내부 단속과 통제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적대적 두 국가론과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공식적·비공식적으로 한류가 조선에 본격적으로 유입된 때는 2000년대 초반부터였다. 조선 정권이 불법으로 규정한 방식으로 들어온 한류를 단속하고 이를 소지하거나 유포한 주민을 처벌하기도 했지만, 한류를 접한 조선 주민들은 많았다. 선망의 대상인 한국으로 탈북한 주민도 많았다. 그런데도 김정일·김정은 정권은 남북관계를 단절하지 않았다.

특히 2018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약 190명으로 구성된 한국 예술단이 평양에서 두 차례 대규모 공연을 했다. 이 예술단에는 조용필·이선희·최진희·윤도현밴드(YB)·강산에·백지영·정인·알리·김광민·서현·레드벨벳 등 한국의 대표적인 가수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또 그해 9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능라도 경기장에서 15만명의 조선 주민이 운집한 가운데 7분간 연설했다. 이 연설은 조선 방송으로 생중계되어 수많은 조선 주민도 접할 수 있었다. 연설 후 문 전 대통령은 ‘비핵화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연설의 핵심 주제는 비핵화였다. 이처럼 김정은 정권은 한국에 개방적이었고 또 환대도 했었다.

그런데 그 직후부터 이상 기류가 포착되기 시작했다. 2018년 10월에 평양을 다녀온 민간단체 관계자들은 필자에게 ‘이해하기 힘든데,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이상해졌다’는 취지로 말했다. 한류의 확산에 따른 갑작스러운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다른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평양정상회담 직후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문재인 정부를 배제하자’고 한 것이다. 정확한 사유는 알 수 없지만, 김 위원장이 미국으로부터 들은 얘기와 중재자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로부터 들은 얘기가 달라서 혼란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19년 하반기 들어서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삶은 소대가리도 양천대소할 노릇”이라며, 한국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조선은 2020년 1월에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사실상 국경 봉쇄 조처를 취했다. 이 조처는 4년 가까이 이어졌는데, 이로 인해 공식적인 문화 교류는 물론이고 조중 국경을 통해 유입되던 한류도 거의 없어졌다. 그런데도 조선은 한국의 문화·사상 유입과 확산을 금지·처벌하기 위한 여러 가지 법을 만들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단초는 ‘반동문화사상배격법’ 제정에 6개월 앞선 2020년 6월13일에 나온 김여정 당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이 담화에서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듯 하다”며, “곧 다음 단계의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 직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노동신문에서 ‘남조선’면을 없애고 남북정상회담의 흔적도 지우기 시작했다.

이처럼 김정은 정권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태도가 ‘환대→혼란→실망→증오’로 변하면서 적대적 두 국가론이 잉태되기 시작했다. 이 입장은 노골적인 대북 적대를 추구한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연말에 나왔지만, 남북관계를 ‘대적 관계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은 2020년부터 본격화되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조선이 한류를 두려워해 적대 관계를 선택했다기보다는 ‘한국의 대북 적대성은 본질적으로 달라질 수 없다’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금한령’을 내린 것이라는 해석이 더 적합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9차 당대회에서 나온 김 위원장의 발언 역시 ‘한국은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흡수통일을 추구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나온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더 중요한 문제는 ‘처방’에 있다. 조선의 적대적 두 국가론이 한류 공포 때문이라는 진단은 조선의 상황 변화를 기다려야 한다는 처방으로 이어지곤 한다. 여기서 ‘상황 변화’란 경제발전을 중시하는 김정은 정권이 남북관계의 개선 없이는 이게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고 다시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할 때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처방은 모순이자 연목구어이다. 우선 한류가 두려워 적대적 두 국가를 선택했다고 하면서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한류가 유입될 수 있는 남북 교류협력을 다시 선택할 것이라는 논리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더구나 김 위원장은 2020∼2021년에 경제건설 전략의 실패를 자인하고 인민의 고초에 눈물까지 보이면서도 금한령을 선택했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이 있다. 김정은 정권이 경제 실패를 자책할 때에도 외부의 평가와는 사뭇 다른 결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은 2021년 7월에 유엔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고위급 정치포럼’에 제출한 <자발적 국가 검토 보고서(VNR)>를 통해 “2015∼2019년 5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5.1%”라고 밝혔다. 이는 같은 기간 한국은행의 추정치보다 6%포인트가 높다. 또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알곡 생산량을 약 567만톤으로 보고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한국의 농촌진흥청의 추정치보다 105만톤 가량 많다.

김정은 정권이 2021년 1월 8차 당대회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고 자평한 2021~2025년에는 그 격차가 더 벌어졌을 공산이 크다. 조선은 국내총생산이 2023년에 2020년에 비해 1.4배가 늘어났다고 밝혔는데, 이를 연평균 성장률로 계산하면 11.9%에 달한다. 이후 2년에도 이 수치를 적용하면 한국은행 추정치와의 차이는 10% 안팎으로 벌어진다. 또 이 기간에 농촌진흥청의 연평균 조선 식량 생산량 추정치는 474만톤인데, 조선은 2021년 알곡 생산량이 550만톤이었고, 2023년에는 목표치의 3%를, 2024년에는 7%를 초과 달성했고 2025년에도 “만풍년”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조선 인민의 먹거리가 알곡뿐만 아니라 고기, 수산물, 다양한 가공식품과 기호식품, 채소와 과일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이 대목에선 조선을 바라보는 한국의 주류적 시선의 굴절을 발견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경제정책 실패를 자인할 때에는 ‘솔직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고 자평할 때에는 ‘믿지 못하겠다’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책적으론 더 중요한 함의가 있다. 조선이 또다시 경제난에 처해 한국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주장이 ‘막연한 바람’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2월 하순과 3월 하순에 각각 열린 9차 당대회와 최고인민회의에서 “경제분야에서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다년간의 발전계획을 성과적으로 완수하고 생산장성의 토대를 구축”했다고 했다. 자립적 경제 기반의 개선과 더불어 러시아는 물론이고 중국과의 경제협력도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이는 조선이 또다시 경제난에 처하기보단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낼 공산이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 역시 예단일 수 있겠지만, 나는 조선의 적대적 두 국가론이 불안감보다는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아직 갈 길은 멀더라도 경제와 민생의 개선을 이뤄내고 있고, 핵무력 강화를 통해 “자위적 억제력”을 갖게 되었으며, 중국 및 러시아 등과의 관계 강화는 다극화된 세계에서 자신의 전략적 입지를 강화해주고 있다고 여긴다. 조선이 흡수통일을 걱정할 필요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틈만 나면 김정은 정권이 ‘한국은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흡수통일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건 두려움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김정은 정권이 동족과 통일을 포기하고 적대적 두 국가를 선택한 이유를 주민들에게 각인시키려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과 절연된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국가정체성을 확립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조선을 상대로 ‘흡수통일을 할 의사가 없으니 안심하고 나오라’고 얘기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또 조선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는 위험천만한 논리도 담겨 있다. 한국이 동족도 통일의 대상도 아니라며 유사시 핵무기 사용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조선을 상대로 효능감 있는 대북정책을 설계하기란 매우 어렵다. 다만 이전 칼럼을 통해 여러 차례 주장한 것처럼, 조선의 국가성을 인정하고 실질적으로 흡수통일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우리가 변해야 할 필요성을 공론화해볼 필요는 있다. 물론 우리가 이런 방향으로 변한다고 해서 조선이 호응하고 나올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조선의 호응 여부를 떠나 이러한 변화 자체가 우리를 이롭게 한다. “북한에 대한 연고권”을 근거로 흡수통일 계획에 사용해왔던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을 우리 내부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하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탈북한과 이기이관을 거듭 강조해본다. 탈북한은 ‘우리 안의 북한’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조선’을 직시하자는 취지로, 이기이관은 ‘나부터 이롭게 하면 관계에도 이롭다’는 의미를 담아 필자가 만든 표현이다. 이 두 가지 관점을 바탕으로 이제는 ‘변화를 통한 접근’을 시도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겸 평화네트워크 대표 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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