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말씀에 그냥 녹아요" 이 셰프가 '6시 내고향' 출연하는 이유
2026.04.26 17:56
| ▲ "요리하는 사람들은 다 같은 마음이라 생각한다. 경력이나 경험, 기술은 달라도 열정만큼은 다 크기에 출연을 결심했을 것이다." |
| ⓒ 이주연 |
'그때 명셰프'라는 별칭에 눈치 빠른 시청자들은 알아챘을 것이다. MBC <무한도전> 식객 편(2009년 11월 말 방영)에서 방송인 정준하와 대립각을 세웠던 명현지 셰프가 <흑백요리사> 시즌2에 출연했던 것. 정준하의 요리 지도를 맡았다가 김치전을 두고 서로 감정이 상한 게 방송된 뒤 두 사람은 비난 댓글에 시달리기도 했다. <무한도전> 팬들에겐 그 이름이 쉽게 잊힐 수 없는 이유다.
게다가 6년 전인 2020년 2월경 명 셰프는 정준하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다. 논란 후 11년 만이었다. 눈물을 보이며 당시를 회상하던 모습에 각종 연예 매체에서 기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흑백요리사>에서 그의 활약을 제대로 볼 순 없었다. 요리 과정이나 심사 과정 모두 편집되었기 때문이다. 명 셰프는 3화의 초중반, 보류 판정을 받은 이들 중 추가 합격자 5명을 뽑는 과정에서 아주 잠깐 모습을 비쳤을 뿐이다.
명현지 셰프의 주 분야는 한식이다. 2007년엔 두바이 7성급 호텔 '버즈 알 아랍'에서 한식을 담당한 유일한 여성 셰프였고, 이후 궁중 및 반가 음식(양반가 전통 한식) 전문가로 경력을 쌓아왔다. <흑백요리사>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그의 현재가 궁금했다. 지난 7일 명 셰프가 운영하는 서울 대치동의 한정식집 아선재에서 직접 만났다.
방송 데뷔 무대 <무한도전>, 그 나비효과
| ▲ 명현지 셰프가 업장에서 사용할 식기류를 꺼내고 있다. 따로 마련된 진열장엔 종류나 그 용도가 서로 다른 식기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
| ⓒ 이주연 |
<무한도전>이 명현지 셰프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방송 데뷔 무대였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4일엔 박명수와 정준하가 함께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하와수>에 등장, 정준하의 예비 장모님과 통화했던 사실을 밝혀 기사화되기도 했다. 말도 많고 탈도 있었다지만 <무한도전>을 빼고선 명 셰프를 설명하기 어려운 셈이다.
"사실 너무 죄송한데 제가 <무도> 팬은 아니었다. 한창 그 프로가 인기일 때 제가 두바이에 있기도 했고, 챙겨볼 수 있던 프로는 아니었다. 원래 다른 프로그램을 하려던 게 있었다. 요리연구가 박종숙 선생님을 제가 보조하는 설정이었다. 근데 불가피하게 선생님이 못하시는 상황이 생겨, 피디님이 제게 메인을 맡기려고 하신 거다. 제 입장에선 그게 너무 부담이라 거절했는데 많이 서운해하셨다고 들었다. 그분께서 절 위해 <무도> 측에 추천도 해 주셨다고 나중에 알게 됐다.
그러니까 뭣 모르고 <무도>에 출연한 거다. 예능인 것만 알았고, 멘토로서 잘 알려드려야겠다 그 생각으로 한 거지. 나름 많이 준비하긴 했는데 그 프로에 대해 좀 더 알았다면 달랐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뉴욕 촬영이 되게 정신이 없었거든. 정준하 오빠, 유재석 오빠 등을 더 잘 챙겨 드릴 걸 후회도 했다. 이게 예능이라 아예 대본이 없진 않았다. 정준하 오빠가 고집이 좀 세니까 다 받아주지 말라고 제작진이 요청한 것도 있어서, 저도 나름 어느 정도 연기를 한 거긴 하다. 마침 준하 오빠가 제 말도 안 들으시고, 배수구도 막혀 버리니까 이때 좀 감정을 드러내야 하나 싶었던 거다."
촬영 후 큰 논란이 있을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다고 했다. 2009년 11월 21일과 28일 방송 이후 명 셰프의 지도를 대부분 무시해 버린 정준하를 향한 비난, 냉랭한 태도로 정준하를 대한 명 셰프에 대한 악플이 이어졌다. 명 셰프는 "그때 싸이월드로 쪽지가 한 200개 넘게 왔었다"며 "응원 글도 있었지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시는 분도 있었다. 연예인분들은 이걸 매번 겪을 텐데 얼마나 힘들까 싶기도 했다"고 당시 기억을 전했다.
"<무도>가 토요일 방송이었는데 작가님께서 그다음 주 수요일까지는 댓글이 뜨거울 거고 이후엔 잠잠해질 거라 위로해 주시기도 했다. 근데 다른 팀 셰프(양지훈)께서 준하 오빠를 옹호한다고 올린 글이 또 논란이 돼서 한참 더 이어졌지. 방송의 무서움을 그때 느꼈다(웃음).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 절 <무도>의 그 셰프로 기억해 주는 분들도 생겼고. 근데 저보다 준하 오빠가 더 상처를 받으셨을 거다."
논란이 일자, 당시 <무도> 측은 '사과송'을 만들어 방송했고, 정준하 또한 명 셰프 개인 연락처를 수소문해 사과했다. 이후 두 사람은 절친이 되어 사적 인연을 이어가는 사이가 됐다. 그런데 정작 명 셰프에겐 풀리지 않는 응어리 같은 게 있었다고 한다. 2020년 출연한 정준하의 유튜브 채널 <소머리국밥>에서 펑펑 운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준하 오빠 뮤지컬도 보러 다니고, 오빠 결혼식 상견례도 제 식당에서 했고, 그렇게 우리끼리는 풀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준하 오빠에게 악플이 달리더라. 그게 마음에 계속 걸렸던 것 같다. 사람들 눈에는 여전히 사이가 안 좋아 보이나 싶더라. 어쨌든 <무도> 김치전은 레전드처럼 남아버렸고, 대중에겐 잘 보이지 않던 진실에 대한 찜찜함이 있었다. 저도 어딘가에 그때 들었던 생각과 감정을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 사람들이 제게 왜 해명 글을 안 올리냐 했을 때도 가만히 있었다. 그러고 나서 11년 만에 오빠랑 김치전을 한 번 더 만드는데, 사람들 오해가 이제 좀 풀리겠구나 싶어 울컥했다."
<6시 내고향>의 특별함... 아이돌 가수 해외팬도 한식에 환호
| ▲ KBS <6시 내고향> 방송의 한 장면. 70대 조카분의 부탁으로 90세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부부에게 명현지 셰프가 차려낸 한 상 메뉴들. 참고로 삯국수는 한국전쟁 당시 면 뽑는 삯만 받고 음식을 내줬다는 데서 유래한 향토음식이다. |
| ⓒ KBS |
<무도>의 혼란과 상처를 뒤로하고 명현지 셰프는 1년여간 유학길에 올랐다. 영국 런던 르 꼬르동 블루, 퀴진 디플로마 과정을 밟았다. "<무도> 이후 방송 섭외가 여럿 들어왔는데 그땐 사람도 좀 무서웠고, 일단 영국으로 가서 제가 가진 지식을 좀 더 넓혀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귀국 후, 명 셰프는 방송 활동을 '본격적'으로 이어갔다. EBS <최고의 요리비결>(2012), 취업 전선에 나선 고등학생들의 멘토가 된 KBS <스카우트>, 그리고 아이돌 가수들과 함께 요리를 만들어 세계에 소개하는 KBS 월드 <셰리의 스타 키친>(2013), TV조선 <백년식당>(2015) 등. 지난 2023년까지 거의 매년 한두 개 이상의 프로에 모습을 보여왔다. "한국에 돌아온 후 사람들이 <무도> 셰프라며 기억해 주시니까 오히려 위로가 됐다"며 명 셰프는 "지난 상처를 끌어안고 지내기보단 제게 오는 좋은 기회들을 잘 잡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프로가 KBS <6시 내고향>이었다. 1991년 5월 20일 첫 방송 후 지금까지 매주 평일 저녁 6시에 방영되는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이다. 명 셰프는 2021년 11월부터 해당 프로에 출연 중이다. "엄마가 몸이 안 좋았을 때 1년 정도 쉰 거 빼고는 지금까지도 나가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기존 출연자셨던 최인선, 최형진 셰프님이 너무 좋은 분이란 얘길 많이 들어서, 나도 1년 정도 해보면 좋겠다 생각했다. 쉽진 않았다. 이게 지방 촬영이기도 하고, 메뉴를 짜는 데 제가 다른 분들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기도 하다. 한번 준비하는 데 6~7시간 정도 걸린다. 주로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해드리는 프로잖나. 스태프들과 리허설도 항상 한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둘까 싶다가도 제 손을 잡고 죽기 전에 이런 음식을 처음 먹어본다는 어르신들 말씀에 그냥 녹아내린다(웃음). 벌써 4년이 넘었다. 할 때마다 제가 더 위로받고 용기를 받고 오더라."
| ▲ 명현지 셰프가 출연하고 있는 <6시 내고향> 관련 지도. 방문한 지역마다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
| ⓒ 이주연 |
명 셰프 사무실엔 <6시 내고향>으로 방문했던 지역이 표시된 대형 지도가 걸려있었다. 재료를 고민하고 결과물을 적은 요리 일지도 매번 기록하고 있었다. 그는 "<6시 내고향>에서 사연 하나만 꼽을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하고 감동인 경험이 많았다"고 전했다.
"경남 고성에서 뵌 70대 어머님이셨는데 아주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밑에서 자란 분이었다. 90세가 넘으신 작은아버지께서 조카를 떠올리자 안쓰럽다며 눈물을 보이시는데 저도 앞에서 같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여쭤보니 작은아버지는 뭐든 잘 드신다고 하셨고, 작은어머니는 남편 입맛에 맞는 걸 많이 해 달라고 주문하시더라. 그렇게 해서 닭고기 삯국수, 가리비 참나물 튀김, 떡갈비, 두텁떡을 만들어 드렸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충남 금산을 찾았을 때다. 마을 이장님께서 어르신들께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 하셨는데 한 분 한 분 찾아뵙다가 홀로 물에 만 밥에 김치나 김 같은 반찬 한두 개로 끼니를 드시는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지더라. 해산물이 귀한 곳이고, 고기도 좋아하신다는 이장님 말씀에 부드러운 육전과 꽃게탕, 인삼 마죽 등을 해드렸다. 잔치 느낌을 내기 위해 불고기 잡채도 추가했다(웃음)."
<셰리의 스타키친>과 EBS 유튜브 채널 <최고의 요리비결 공방>도 명 셰프에겐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이돌 가수들을 초대해 요리를 알려주는 콘셉트의 이 프로에서 명 셰프는 "덕분에 여러 인연이 생겼고, 예상치 못한 감동도 받았다"고 고백했다.
"이 프로들을 하며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해외 팬분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SNS에 올려주실 때다. 얼굴도 모르는 먼 나라의 외국분들이 한식을 하시면서 한국이 더 궁금해졌다는 반응을 보이시면 뭉클해지더라. 지금은 한식에 대한 관심이 워낙 높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흔치 않았거든. 특히 스트레이키즈 리노는 함께 촬영한 다음 날, 우리가 만든 메뉴가 너무 맛있어서 직접 재료를 사서 다시 만들어봤다며 사진을 보내준 적도 있다. 어떤 맛이 났는지, 무엇을 더 넣으면 좋을지 물어보는 모습도 인상 깊었고, 지금도 가끔 한식이 생각날 때면 매장을 찾아주는 고마운 손님이기도 하다."
"<흑백요리사> 대결 구도 좋아하진 않았지만..."
| ▲ "<무도> 이후 방송 섭외가 여럿 들어왔는데 그땐 사람도 좀 무서웠고, 일단 영국으로 가서 제가 가진 지식을 좀 더 넓혀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
| ⓒ 이주연 |
<흑백요리사> 이야길 빼놓을 수 없었다. 가장 최근 출연한 예능 프로였고, 한식에 자부심과 사명감이 있는 셰프였기에 방송에선 보이지 못한 속사정이 있어 보였다. 명현지 셰프는 "시즌1 때도 섭외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거절한 이유는 "요리로 대결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였다"고. 명 셰프는 "계급장 떼고 100명이 대결한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오히려 계급으로 나뉘어 있어서 당황하기도 했다"고 당시를 소회했다.
"솔직히 시즌1 출연 셰프님들이 잘되시는 걸 보고 약간 배가 아프기도 했다(웃음). 그것 때문에 시즌2에 나온 건 아니고, 제가 존경하는 여경래 셰프님이 즐기는 마음으로 참여한다는 얘길 들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자리에 계실 분이 그 100명에 포함돼 나오신다는데 내가 뭐라고 예민하게 굴고, 굳이 대결로만 생각할 일인가 싶더라. 그냥 내가 할 것만 하고 오자는 생각이 들었다."
명 셰프가 준비한 메뉴는 구절판이었다. 심사는 백종원 대표가 맡았다고 한다. "누군가는 너무 뻔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았다"며 그는 걱정했지만 해당 메뉴를 택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매장에 외국 손님들이 많이 온다. 구절판과 신선로를 올리며 이게 한국의 궁중 요리고, 임금의 생신상, 연회 등에 올라갔던 음식이라 설명하고는 한다. 대부분이 몰랐다면서 너무 좋아하신다. 게다가 넷플릭스잖나. 전 세계에 제 요리가 한 장면이라도 나가면 우리의 아름다운 음식을 알릴 수 있겠다는 욕심도 좀 있었다. 어디 보니까 제가 통편집을 요구한 게 아니냐는 추측 글도 있더라. 그런 요청을 드린 적은 없다. 다만 제 분량이 너무 '노잼'이었나 그 생각을 하긴 했다. 잘하는 걸 하라고 해서 했고, 또 보류였기에 방송에 뭐라도 나오겠다 싶었던 거지.
백종원 선생님도 맛이 좋다고는 했다. 오로지 맛으로만 심사한다셨길래 좀 기대했는데, 색깔이 좀 애매하다는 얘길 하셨다. 구절판이라는 게 여러 재료를 조합하는 요리라 전복을 구워서 올리긴 했는데 그게 뭔가 안 맞는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보류 판정 후 안성재 셰프님도 드셨다. 근데 보니까 시즌1이 워낙 잘 돼서 시즌2에 쟁쟁한 분들이 너무 많이 나오셨더라. 제 바로 옆이 신계숙 셰프('중식 폭주족'으로 출연)님이셨거든. 제가 비빌 수 있는 무대는 아니었던 것 같다(웃음)."
탈락보다 아쉬웠던 건 한식 셰프들이 결선에 오르지 못하고 대거 탈락한 사실이었다고. 명 셰프는 "궁중음식연구원 선생님들께서도 우리 전통 한식을 등한시한 것 같다고 서운해했다는 얘길 들었는데 저도 그게 아쉬웠다"며 "제작진분들을 탓하기보단 요리 경연이란 게 뭔가 퍼포먼스 요소나 미슐랭 평가 쪽에 조금 치우친 면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을 밝혔다.
"요리 서바이벌이라는 게 사실 좀 더 주관적 요소가 강한 것 같다. 음악이라면 음 이탈이나 그런 걸 시청자들도 어느 정도 알아채고 결과를 가늠할 수 있는데 입맛이라는 건 사람마다 다르고, 객관화할 수 없는 지점이 더 크지 않나 싶다. 전 요리하는 사람들은 다 같은 마음이라 생각한다. 경력이나 경험, 기술은 달라도 열정만큼은 다 크기에 출연을 결심했을 것이다. 꼭 서바이벌에 참여한 사람만이 아니어도, 요리하는 행위 자체만으로 너무 귀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식은 여전히 보일 게 많고, 연구도 계속 이뤄지고 있다. 저도 할수록 어렵고, 공부할 게 많더라. 아마 평생 공부하며 일하지 않을까 싶다. 방송에선 그런 한식의 깊이가 가려지곤 하니까 아쉽긴 하다. 제게 요리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따뜻한 기억을 남기는 일이거든. 그 마음을 주고받는 경험이 절 계속 요리하게 한다."
| ▲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정식집 '아선재'를 운영하고 있는 명현지 셰프. 대표 메뉴 중 하나인 구절판을 준비 중인 모습. |
| ⓒ 이주연 |
* 명현지 셰프 인터뷰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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