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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김범석
[취재후 Talk] 동일인 제도, 쿠팡이라는 시험대에 서다

2026.04.25 18:21

공정거래위원회

2021년 4월, 첫 번째 장면

2021년 4월 29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기자실, 김재신 당시 부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쿠팡의 경우에 창업자 김범석이 미국법인 Coupang, Inc.를 통해 국내 쿠팡 계열회사를 지배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바로 이어진 반전, 그는 "다만 동일인을 국내법에 의해 새로운 의무와 형벌의 제재 대상이 되는 자로 지정할 것인가는 조금 다른 문제"라고 덧붙였다. 공정위가 판단한 동일인은 김 의장이 아니라 쿠팡 법인이었다.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비유까지 동원됐다. 김 부위원장은 아마존코리아의 자산이 5조 원을 넘어도 제프 베이조스를, 페이스북코리아가 같은 기준을 넘어도 마크 저커버그를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으로 지정해 형사제재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겠느냐며 기자들에게 반문했다. 공정위가 든 이유는 세 가지였다. 외국계 기업집단에 일관되게 국내 최상단 회사를 동일인으로 지정해 온 선례, 외국인에 대한 국내법 집행의 한계, 그리고 김 의장을 지정하든 법인을 지정하든 계열회사 범위가 같다는 점이다. 논란은 그날로 덮이지 않았다. 덮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동일인이 뭐길래

생소한 분들을 위해 잠깐 짚고 가자. 동일인은 우리가 흔히 '재벌 총수'라고 부르는 그 자리다. 한 기업집단에 속한 여러 회사를 사실상 지배하는 사람, 또는 법인을 말한다. 공정거래법은 1986년 대기업집단 규제를 도입하면서 이 개념을 들여왔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현대의 동일인이었고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동일인이었던 식이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이름만 들으면 단순한 호칭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동일인이 누구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친족 범위(혈족 4촌·인척 3촌)가 정해지고 그 친족이 가진 회사들이 자동으로 같은 기업집단의 계열사로 묶인다. 계열사로 묶이는 순간 일감 몰아주기 규제, 상호출자 금지, 공시 의무 같은 규제들이 일제히 따라붙는다. 동일인 본인은 매년 친족과 계열사 정보를 담은 지정자료를 공정위에 내야 하고 누락하거나 거짓으로 내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5,000만 원 이하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이 개념은 공정거래법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조세특례제한법, 상속·증여세법, 중소기업기본법, 방송법 등 40여 개 법률이 대규모기업집단 개념을 끌어다 쓰는데 그 출발점이 바로 동일인이다. 동일인이 누구냐에 따라 세제 혜택을 받을지, 방송사 지분을 가질 수 있을지가 달라진다. 한 사람의 이름이 바뀌면 수십 개 법률의 적용 범위가 같이 흔들린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그런데 왜 지금 이 화두로 떠올랐나

동일인 개념이 법령에 들어온 이래 30년 넘게 이 제도는 큰 잡음 없이 작동해 왔다. 창업자 대부분이 생존해 있었고 모두 우리나라 국적의 내국인이었으며 국내에서 살며 국내 기업을 경영했다. 삼성의 이병철-이건희-이재용, 현대의 정주영-정몽구-정의선으로 이어진 승계는 시장과 시민사회, 공정위가 총수로 인식하는 인물이 어긋나지 않는 전형이었다. 공정위는 사실상 이미 존재하는 총수를 확인하는 역할에 가까웠다.

하지만 균열이 일어났다. 1세대에서 2세대, 다시 3·4세대로 내려가며 오너 일가는 국경을 넘어 흩어졌다. 해외 유학, 국제결혼, 글로벌 본사 체제가 일상이 된 가족에서 미국 국적자가 속출했다. 여기에 쿠팡처럼 처음부터 해외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집단이 국내 시장을 장악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질문이 일제히 쏟아졌다. 미국 국적자를 공정거래법상 총수로 지정할 수 있는가, 지정한다면 한미 FTA 위반은 아닌가, 형사처벌까지 가능한 규제를 어떻게 외국인에게 집행할 것인가. 반대로 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빼주면 한국 국적 총수와의 형평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공정거래법을 놓고 진작부터 지적해 온 동일인 개념의 추상성은 제도 설계 당시 상상하지 못했던 국면에서 비로소 문제로 튀어나왔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2023년 4월, 두 번째 장면

2년 뒤 같은 자리,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같은 문제를 다시 마주했다. 공정위가 처음으로 지정자료 제출 과정에서 동일인·배우자·2세의 국적을 공식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한 위원장은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다. "OCI 동일인이 미국인임을 확인했습니다. 배우자가 외국 국적을 보유한 집단은 7개, 동일인 2세가 외국 국적 또는 이중국적인 집단은 16개입니다."

OCI 이우현 회장이 2000년 한국 국적을 포기해 단독 미국 국적이 됐음에도 2018년 동일인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이 처음 공식 확인된 순간이었다. 현장 기자들은 곧바로 파고들었다. "쿠팡은 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지정에서 빠졌는데 OCI는 왜 지정돼 있나.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나."

한 위원장은 차분하게 방어했다. OCI는 동일인의 친족이 국내에서 활발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어 법인으로 바꾸면 오히려 규제 공백이 생기지만 쿠팡은 김 의장의 국내 개인회사나 친족회사가 없어 자연인이든 법인이든 계열회사 범위가 같았다. 또 OCI 측은 동일인 지정 이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변경 의사도 내비치지 않았다. 만약 쿠팡의 동일인을 김 의장으로 지정할 경우 주가 하락 등을 이유로 투자자-국가 분쟁(ISD) 소송을 청구할 가능성이 있었다. OCI의 최상단 회사는 국내 법인이지만 쿠팡은 최상단 의사결정자가 미국법인 쿠팡Inc이라는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한 위원장은 "1987년부터 현재까지 동일인 요건과 정의에 관한 법 규정이 있지만 아직 다소 추상적인 상태"라고 자인하며 구체적 판단 기준과 절차를 담은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담당 국장은 기자들의 후속 질문에 "배우자가 동일인이 된 사례도 최근 두 번 있었고 승계 가능성이 있는 외국 국적 2세도 상당수 파악됐다"고 덧붙였다. 문제의 윤곽은 분명해지고 있었지만 답은 여전히 유예 중이었다.

2024년 5월, 세 번째 장면

1년 뒤, 제도는 진일보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공정거래법 시행령과 '동일인 판단 기준 및 확인 절차에 관한 지침'이 손질된 뒤 첫 지정 발표였다. 한기정 위원장은 개정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동일인 2·3세로의 경영권 승계가 본격화되고 외국 국적 동일인과 친족이 등장하는 등 경제 환경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어 이에 대응해 보다 명확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새 규정의 핵심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 일반 기준을 세운 점이다. 자연인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더라도 세 요건, 자연인이 최상단 회사 외 국내 계열사에 출자하지 않을 것, 친족이 계열사에 출자하거나 임원으로 재직하지 않을 것, 자연인·친족이 국내 계열사와 채무보증·자금거래가 없을 것을 모두 충족하면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게 했다. 사익편취의 통로 자체가 차단된 구조에 한해 법인 지정을 연 것이다. 쿠팡과 두나무가 이 예외 요건을 충족한다는 판단을 받았다. 국적이 아니라 구조로 축을 옮긴 진전이었다.

2025년 겨울, 제방에 금이 갔다

그러나 2025년 11월, 쿠팡에서 약 3,370만 건의 국내 사상 최대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터졌다. 퇴사한 중국 국적 전직 직원이 회수되지 않은 인증키를 이용해 5개월간 고객 정보에 무단 접근한 사건으로 조사됐다.

파장은 정보 유출에 그치지 않았다. 국회 청문회에서 김 의장의 동생 김유석 부사장의 존재가 공개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그는 쿠팡Inc 소속 미등기 임원이지만 국내에 파견 근무 중이었고 직함은 '글로벌 물류효율 개선총괄'이었다. 2024년 지정 브리핑에서 담당 국장은 "동생 내외 연봉이 대략 4~5억 원 수준"이라며 등기임원의 약 30억 원에 비해 낮다는 점을 근거로 경영 미참여로 판단했다. 그러나 청문회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공시를 통해 드러난 김 부사장의 2024년 보상은 현금 연봉 43만 달러(약 6억 원)에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7만4401주를 합쳐 30억 원에 달했다. 등기임원이 아니라는 형식만 갖췄을 뿐 실제 받은 보상은 등기임원 수준이었던 셈이다. 2024년 지정의 전제 자체가 흔들린다는 의문이 제기됐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2025년 12월, "지난 번 김 의장 동생의 보수, 인센티브 등을 확인했고 이사회 참여 같은 총수일가로 지정할 정도로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은 것으로 봤다. 보수 등을 전체적으로 재검토해 경영에 참여한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면 동일인 지정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 청문회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갔다. "동일인 지정은 주기적으로 할 때마다 심사한다. 내년 5월께 심사할 때 엄밀하게 보겠다." 2026년 5월 대기업집단 지정을 앞두고 공정위는 올 초 쿠팡에 대한 현장조사에 나섰고 경제개혁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김 의장의 동일인 지정을 공개 촉구했다. 5년 전 덮이지 않은 질문이 정확히 같은 얼굴로 돌아왔다.

두 개의 논리, 여전히 팽팽하다

지정해야 한다는 쪽의 논리는 직관적이다. 한국에서 매출의 사실상 전부가 발생하고 실질 지배자가 분명하며 친족이 국내에서 고액 보수를 받으며 중요한 의사결정에 관여한다는 정황이 드러난 이상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는 제도의 취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쿠팡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쿠팡은 "미국에 상장한 외국 기업 CEO에게 동일인 제도를 사상 최초로 적용할 경우 실효성 없이 부작용만 양산할 것"이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최혜국대우 조항 위반 가능성, 이중규제 논란을 제기한다. 2023년 한 위원장이 직접 꺼냈던 ISD 소송 리스크도 여전히 살아 있는 변수다. 형사처벌까지 수반하는 규제를 외국 국적 자연인에게 실효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가. 5년 전 김재신 부위원장이 베이조스와 저커버그를 예로 들어 던진 질문은 여전히 답을 기다리고 있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여론에 떠밀린 지정은 지양해야 한다는 점이다. 쿠팡 사태가 부른 분노는 정당하다. 개인정보 3,370만 건이 흘러나갔고 친족 보수의 실체가 뒤늦게 드러났으며 청문회에서 회사 측의 답변은 미덥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분노가 곧바로 동일인 지정의 근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공정거래법은 사실관계와 법령상 요건에 따라 집행되는 규범이지, 여론의 무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도구가 아니다. 시행령이 정한 예외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사실에 입각해 다시 따지는 것과 여론에 답하기 위해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근거를 짜 맞추는 것은 전혀 다르다. 후자의 길로 가면 법 적용의 정합성은 떨어지고 수범자의 예측 가능성은 무너진다. 다음 사례, 그다음 사례에서 또 다른 기준이 등장하면 시장의 혼란은 가중될 뿐이다. 사실이 요건을 충족하면 지정하고 아니면 지정하지 않는다. 단순하지만 그것이 제도가 작동하는 올바른 방식이다.

쿠팡은 예고편일 뿐이다

2023년 공정위가 처음 집계한 숫자는 의미심장했다. 당시 이미 배우자가 외국 국적인 기업집단이 7곳, 2세가 외국 국적 또는 이중국적인 기업집단이 16곳이었다. 쿠팡과 OCI는 첫 사례일 뿐 마지막 사례가 아니라는 예고였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지난해 말 상장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대기업집단 62곳 총수일가 582명을 조사한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전체의 7%(41명)가 외국 국적이었고 1·2세대는 1.7%(3명)에 그쳤지만 3·4세대는 9.4%(38명)로 급등했다. 41명 중 39명이 미국 국적이다. 창업자와 그 후손의 국적·거주가 모두 한국이었던 시기의 전제는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는다.

제도 개선은 여러 갈래로 가야 실효성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친족의 경영 참여 판단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 지금은 이사회 등기임원 재직 여부가 사실상 유일한 잣대지만 해외 본사 소속으로 국내에 장기 파견돼 인사·투자 의사결정을 주도한다면 이는 실질적 경영 참여로 보는 것이 상식이다. 보수·성과급의 규모와 구조, 실제 업무 범위, 파견 형태를 종합 평가하는 세부 기준이 필요하다. 형식적 미등기가 규제 우회의 문이 돼서는 곤란하다. 타법과의 정합성 검토도 필요하다. 공정거래법상 동일인 개념은 40여 개 법률이 차용하고 있다. 동일인 판정이 바뀌면 관련 법령의 규제 대상과 수혜자 범위가 동시에 흔들린다. 개정 속도보다 개정 파장을 먼저 계산해야 한다.

TV조선 방송화면 캡처

사전 협의 절차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이미 지정 전 공정위와 기업집단 간 협의 단계를 두고 이의가 있으면 재협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지정 결과에 불복하면 30일 이내 이의신청도 가능하다. 절차적 권리를 명문화한 진전이지만 그 자체로 분쟁 차단 장치가 되지는 못한다. 공정위가 사전 협의에서 제시한 사실관계와 법리적 근거가 충분히 구체적이어야 기업이 절차를 거치고도 ISD 소송이나 행정소송을 다시 꺼내드는 일을 막을 수 있다. 협의 단계에서 의문과 불복 의사가 모두 검토되고 처리되도록 협의록과 판단 근거를 문서화해 공정위와 기업집단이 모두 책임을 지는 구조로 운영해야 한다. 사전 협의를 거친 결과가 사후 분쟁의 출발선이 되어서는 제도의 의미가 없다.

쿠팡은 끝이 아니라 시작

1987년 도입된 동일인 제도는 공정거래법의 뼈대 역할을 해왔다. 삼성·현대·SK가 그랬듯 창업자와 그 후손의 국적·거주가 모두 한국이었던 안정기의 제도였다. 그 안정이 무너진 2020년대, 쿠팡이 던지는 질문은 이 제도를 폐지할 것이냐가 아니다. 외국 국적 보유자와 다국적 가족 구조가 일반화된 시대에 어떻게 재설계할 것이냐다.

공정위가 곧 내놓을 2026년 대기업집단 지정 결과는 쿠팡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앞으로 수년간 한국 재벌 규제의 방향타가 될 것이다. 이번에는 국적의 창 뒤가 아니라 실질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판단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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