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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목지》 잘 키운 물귀신, 열 히어로 안 부럽네

2026.04.26 09:00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뻔한 클리셰도 이긴 '체험의 힘'…《살목지》가 증명한 공포 장르의 부활

저예산으로 제작하는 공포영화는 한때 충무로에서 신인 감독과 배우의 등용문 내지는 실험의 장으로 통했다. 그러나 '한철 장사'를 노린 얕은 기획의 공포영화가 우후죽순 쏟아지면서 시장으로부터 외면받는 처지에 이르렀다. 그런 공포 장르가 오랜만에 활기를 보이고 있다. 활기를 전하는 주체는 김혜윤 주연의 《살목지》다. 4월8일 개봉한 영화는 개봉 7일째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더니, 입소문을 타고 150만 관객을 넘어섰다. 지금의 추세라면 조만간 200만 돌파는 기정사실. 무엇이 관객들을 《살목지》로 이끄는 것일까.

영화 《살목지》 포스터 ⓒ㈜쇼박스


공포영화는 왜 외면받았나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로 꼽히는 2003년은 공포영화의 해이기도 했다. 한국 공포영화 역대 최고 흥행작인 김지운 감독의 《장화홍련》이 나온 게 바로 이때다.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지만, 각자의 개성으로 중무장한 《거울속으로》 《4인용 식탁》 《쓰리 몬스터》 등이 같은 해에 출격해 공포영화의 내실을 보여줬다. 이후 공포영화는 《령》(2004), 《알포인트》(2004), 《분홍신》(2006) 등으로 이어지며 여름 시장에서 톡톡한 효자 노릇을 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공포영화의 존재감은 급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는데, 앞서 언급한 기획의 한계가 자충수로 작용했다. 공포영화의 주요 수요층인 10대 관객의 외면 속에서 '공포영화=여름'이라는 공식도 무너졌다. 그런 공포물 장르가 잠시 튀어오른 건 2017년으로, 실제 장소를 모티브로 한 영화 《곤지암》 덕분이었다. CNN이 선정한 세계 7대 기괴 장소인 경기도 광주의 '곤지암 남양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 《곤지암》은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우연히 습득한 영상'이라는 설정을 내세워 마치 실제 기록처럼 보이게 구성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의 일종) 형식을 도입해 전국 267만 관객을 극장에 불러모았다. 역대 공포물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이었다.

하나의 소재가 잘되면 이를 모방한 작품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건, 한국 영화의 고질 아닌 고질. 실제로 이후 《곤지암》처럼 실존 장소를 소재로 차용한 영화들이 나왔다. 1980년대 치악산에서 발견됐다는 토막살인 괴담을 다룬 영화 《치악산》(2023), 그리고 (곤지암 정신병원, 경북 영덕횟집과 함께) 대한민국 3대 흉가로 불리는 충북 제천의 늘봄가든을 소재로 한 《늘봄가든》(2024)이 그 주인공이다. 《곤지암》의 후광을 노린 두 영화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특히 《치악산》은 지역 이미지 훼손을 우려한 원주시가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치악산》은 영화가 실제 지명을 차용할 때 조심해야 할 윤리적 리스크에 대한 여러 질문을 남기며 빠르게 극장에서 퇴장했다.

실제 장소에 얽힌 괴담을 기반으로 한 《살목지》 역시 《곤지암》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영화다. 살목지는 충남 예산에 위치한 저수지로, 물가에서 여성의 형체를 봤다는 이상한 경험담이 떠돌며 주목받았다. 해당 괴담은 MBC 예능 《심야괴담회》를 통해 소개되며 실존 심령 스폿으로 각인됐다. 공포 체험 유튜버들의 성지 순례지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영화 《살목지》 스틸컷 ⓒ㈜쇼박스


흥행 루트 타게 된 비결은

그렇다면 《살목지》가 《치악산》이나 《늘봄가든》이 아닌, 《곤지암》의 흥행 루트를 가게 된 비결은 뭘까. 먼저 체험형 공포물에 방점을 찍은 것이 주효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등장으로 관객은 극장에서 볼 영화와 집에서 볼 영화를 엄격하게 나누기 시작했다. 이제 관객은 아무 때나 지갑을 열지 않는다. 집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차별화된 체험을 제공해줄 영화에 시간과 돈을 쓴다. 《살목지》는 이 부분을 영리하게 활용했다. 3면 스크린X 상영과 더불어 한국 극영화 최초로 4면 스크린X 포맷을 적용해 보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체험형 공포물을 목표로 기획 단계에서부터 스크린X 포맷 상영을 고려한 덕에 완성도가 꽤 높다.

《살목지》는 영화 밖에서뿐 아니라, 스크린 안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을 몰입시키기 위한 묘안을 짜냈다. 360도 파노라마 카메라, 무빙 디렉터, 고스트 박스 등 특수 장비를 캐릭터들 손에 쥐여줌으로써 공포 스펙터클을 확장시킨 게 그 예. '파운드 푸티지' 방식으로 공포감을 조성한 《곤지암》과도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10대 관객의 환심을 얻는 데 성공한 것도 흥행에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10대들은 또래 집단 내 트렌드 공유에 민감하다. 친구가 하는 걸 나만 모르면 안 된다는 심리가 강한데, 《살목지》가 그런 10대의 니즈를 충족시키며 그들을 삼삼오오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실제로 CGV 조사에 따르면, 《살목지》의 10대 관객 비율은 전체의 10.7%로 특히 3인 이상 친구 단위 관람이 두드러지며, 공포를 '함께 즐기는 체험'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 개봉 시기를 새 학기 초반으로 잡아 10대들이 또래와 친해질 시기에 함께 영화를 체험하도록 한 것도 전략적으로 탁월했다.

10대들이 영화에 관심을 보이고 이들이 SNS와 커뮤니티에 후기를 올리면서 그 흐름이 20~30대로도 옮겨붙은 분위기다. 촬영지인 살목지가 '핫플레이스'로 부상하면서 온라인상에는 살목지 방문 인증샷, 실시간 상황 등이 공유됐고, 살목지는 '살리단길'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자연발생적인 바이럴 마케팅이 관객을 극장으로 이끄는 선순환을 형성했다. 이로 인해 해당 지역에 민원도 끊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제작사 입장에선 무플보다 악플이 반가울 것으로 보인다.

《살목지》는 단점이 없는 영화는 아니다. "쟤 저러다 죽겠네" 싶은 인물은 여지없이 죽고, 캐릭터들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굳이 혼자 간다. 그러니까 클리셰가 곳곳에 매복해 있다. 그러나 장르 영화에서 클리셰는 단점만큼 이점도 있다. 효율적으로 잘만 쓰면 이보다 경제적으로 원하는 바(공포)를 전하는 데 용이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선재 업고 튀어》로 대중의 호감을 산 김혜윤이 중심을 잘 잡고 김준한과 같은 연기파 배우가 극을 잘 떠받치고 있는 것도 클리셰 상쇄에 적잖은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장르 영화에 대한 감독의 진심이 느껴지는 작품이란 점에서 반갑다. 종종 장르 영화를 만들면서, 해당 장르에 평소 관심이 없었다는 감독을 만나곤 한다. 자신감의 일환인지, 생각이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누워서 침 뱉는 꼴이다. 《살목지》는 다르다. 단편영화 《돌림총》(2021), 《함진아비》(2023) 등으로 다수의 단편영화제에 초청되며 주목받은 이상민 감독은 자타 공인 공포영화 마니아다. 그의 공포영화를 향한 애정이 《살목지》를 뻔하디뻔한 양산형 공포물에서 건져 올린다.

앞서 이야기했듯, 하나의 장르가 잘되면 비슷한 영화가 쏟아지는 게 영화계다. 《살목지》의 흥행으로 이와 비슷한 영화가 또 여러 편 제작될 것으로 보이는데, 자기만의 개성을 살린 영화들이길 기대해 본다. 한국 영화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예산을 졸라매는 제작사가 늘고 있는데, 그들에겐 가성비 좋은 공포영화가 매력적으로 다가갈 여지도 크다. 영화계 위기 상황을 공포 장르가 기회로 잘 활용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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